네가 하나도 없는 뜨거운 여름
수상한 졸음이 별 대신 쏟아지는 밤이었다
나는 꼭 죽을 것만 같아 최후의 신음을 뱉었다
난제를 소상히 설명해주는 어떤 이의 배려 깊은 음성
내가 있는 한 네 숨이 멎을 일은 없을 거야
괜찮아
그 애가 내 어깨를 감싸 안아 야윈 목덜미에
맹독 같은 콧바람을 쉬쉬 뿜으며 말했다
몇 차례의 총성에도 뚫리지 않는 단단한 허파와
한시도 마른 적 없는 선홍빛 혀와 혀
거센 빗방울이 불리해진 이의 항의처럼 빗발치고
여름 향을 잔뜩 뿌린 바람이 창틈을 비집고 들어와도
그 애와 나는 정신을 잃기 직전에서 멈춰있었다
정말이지 내가 죽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거 봐 괜찮아
내가 있는 한 네 숨이 멎을 일은 없을 거야
가만히 있는 나를 세게 잡은 그 애가 이만큼
붉어진 눈으로 말했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이 계절을 어서 건너야 해,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미친 현실이 또 한 번 나를 뒤흔들어 깨우기 전에
이곳에서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살아야 한다고
식은땀이 이마 위로 흐르는 족족
그 애의 입속으로 부리나케 도망쳐 들어갔다
갈증을 느끼는 이파리의 목젖을 흠뻑 적셨다
나는 너를 거짓말처럼 사랑해
그러니 괜찮아
다시 한번 그 애가 나를 구석구석 핥으며 말했다
자기야 이건 꿈이 아닐까
그게 아니고서야 우리가 이렇게
고립된 숲의 초록색 바닥에
벌거벗은 몸으로 포개져 누워
서로의 존재를 더듬거림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걸까
동시에 그 애의 발바닥에 아스라이 돋아있는
썩은 뿌리를 목격했다 보기 흉할 만큼 문드러진
내가 건넨 수분이 한 움큼도 가닿지 않았다는 사실을
문득 알게 된 순간 이 꿈이 생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개미를 등쳐먹고 무당벌레의 편에 선 진딧물처럼
칼로 쏟는 집중호우의 습격을 옴 몸으로 받아 낸 마을처럼
그 애는 잘못이 없다
나를 거짓말처럼 사랑한다는 말은 틀린 적 없었다
비유는 예전에 죽었고 직설이 첫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밤새 타들어 간 목을 넉넉히 축이기 위해
물을 있는 대로 전부 삼키고서 그늘진 커튼을 걷었다
미안한 기색 하나 없이 나를 똑바로
쳐다보는 지금의 바깥은 처참하게 여기
버려진 이 삶을 비웃기라도 하듯 여
린 각막을 뚫어지라 볕으로 쏘아대며
꿈 같았던 지난날들을 모조리 앗아갔다
이곳의 바깥은 그러니까 네가 하나도 없는
여름의 뜨겁고 너무 잔혹한 한낮이다
<미쳐버린 꿈이여>, 하태완
2020. 6. 27 씀.
사진 @a__mong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