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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태완 Jun 25. 2020

이 여름에는 많은 삶이 운다

나 하나 오늘이 다 가도록 실컷 운다고 한들


이 여름에는 너무 많은 삶이 엉엉 운다

이외의 계절 내내 숨어 살던 매미들
이때다 싶어 철 지난 떨이 상품처럼
아쉬운 듯 쩌렁쩌렁 널리 울어대고

쏟는 장맛비에 온 깃 축축하게 젖은 산새들
구부러진 숲길 따라 조난 당한 사람처럼
젖먹던 힘을 다해 찌르는 소리로 울어댄다

인적이 드문 곳 몇 해나 얽매여있었는지 모를
낡은 정자의 처마에서는 길차게 뻗은 습기 타고 왔을
알 수 없는 이들의 슬픔이 크게 맺혔다 투박하게 떨어진다

구멍 뚫린 하늘이 닫힐 줄을 모른다는 쉬운 말
생애를 부술 아픔이 닥칠 줄을 몰랐다는 아픈 말

나는 둘 중 그 어디에도 편하게 섞인 적 없었다

타올랐던 기억은 한 번도 타오른 적 없었다는데
이 같은 비의 계절에서 바싹 마른 장작을 나는
어디서 어떻게 용케도 구해 쓸데없는 잿더미를 쌓아

그러니까 머리맡에 놓아둔 라디오의 굳은 입에선
가여운 것들이 벌레처럼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데
내가 아니어도 세상은 흐느끼는 운명을 잘도 구해
눅눅하고 퀴퀴하기 짝이 없는 밤을 잘도 빚어낸다

끝끝내 강해져야지 벌떡 일어나야지
이는 불쌍한 사람들을 더 불쌍하게 만드는
썩은 악마의 지독히도 사악한 주술

우는 것들이 이리도 많은 슬픈 계절에
나 하나 오늘이 다 가도록 실컷 운다고 한들
무너지는 마음이 있을 리 만무하다

진종일 울어대야지
몸 안에 차오른 모든 눈물을 쏟자
오늘 떠난 사람 이름 젖어 번지게
지난날들 전부 깜빡 잊을 만큼
이 슬픔이 한물간 이야기꾼의 진부한 입놀림이 될 때까지

한 시도 거르지 말고 눈을 세게 열어 엉엉 울자

<이 여름에는 많은 삶이 운다>, 하태완
2020. 6. 25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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