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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태완 Jun 28. 2020

2020. 6. 28

기록


  나는 늘 ‘비가 억수 같이 오는 날’을 좋아하는 사람과 ‘볕이 바삭하게 내리쬐는 날’을 좋아하는 사람의 경계에 모호하게 걸터앉아 있다. 그 탓에 몇몇 이들에게는 자신에게만 속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는다는 귀여운 오해를 사기도 했다. 이는 이곳에 가서는 맑은 날이 훨씬 더 좋다 말했으면서, 저곳에 가서는 금방 또 비 오는 날이 더 좋다는 말을 올려두고 오는 오랜 습관 때문이리라. 그렇지만 나는 그들에게 단 한 번도 시커먼 껍질로 두껍게 싸여있는 마음을 건넨 적이 없다. 지나치게 투명한 속내를 한 치의 부끄럼도 없이 꺼내 보인 거라면 또 모를까.
  실은 나조차도 아직 내가 어떤 하늘을 더욱이 애착을 가지는가에 대한 올곧은 정답을 알지 못한다. 때로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배려 깊은 음성으로 정답을 알려주었으면, 하고 깊숙이 바란 적도 있었다. 웬만하면 자기 자신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하는 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함께 얹어두었다. 그게 매번 헛된 기대로 전락해버린 패배의 바람이 되었다는 건, 나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말이다.

  그해 여름에는 예년에 비해 무거운 비가 쏟는 날이 잦았다. 우산도 없이 고개를 치켜들어 빗방울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꼭 내가 이 세상의 가장 외딴곳에 서 있고, 내가 발을 딛고 있는 곳에만 국지성 호우가 매몰차게 쏟아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그 계절의 형태는, 마치 길을 잃은 고양이가 앞을 알 수 없는 안개 속으로 겁도 없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고 있는 장면과 꽤 닮아있었다. 이제 와 어렴풋이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때 내가 머릿속으로 대강 그려냈던 안쓰러운 고양이와 그 고양이가 당연하단 듯 몸을 맡긴 희뿌연 안개는, 이제는 먼지가 잔뜩 쌓여 손대기조차 꺼려지는 그때의 나와 옛 애인의 모습이 몰래 투영된 것이었다.

  비 오는 날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사계절 중 비 소식이 가장 잦은 여름을 으뜸으로 여기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나와 그 사람은 비 오는 날만 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만남을 청했다. 물론 그 어느 쪽도 그 청을 거절한 적 없었고, 그때마다 우리는 반쯤 미쳐버린 사람들처럼 폭발적인 사랑을 나눴다. 서로의 살갗이 맞부딪히며 발생하는 굉음은 상상을 초월했고, 우리는 그 섬세한 음파 하나하나에 세상이 떠나갈 듯 열광했다.

  그때의 나는 가슴께에 세게 품은 상대방을 최대한 닮아가는 것을 진정한 사랑이라 여겼다. 좋아하는 음식, 즐겨 듣는 음악, 좋아하는 색, 자주 지어 보이는 표정, 사랑하는 계절, 하다못해 얼굴과 몸의 생김새까지 전부 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이 여름을 좋아하는 것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여름을 사랑하기 위해 애썼다.
  기존에 온몸을 채우고 있던 피가 바깥으로 모두 빠져나오고, 여린 심장으로부터 새로 뿜어져 나온 피가 온몸을 유람하기까지의 길고 고된 노력 끝에 그 임무를 성공으로 이끌었지만, 결과적으로 따지고 보면 이보다 더 큰 실패는 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큰 패배를 맛보게 된 것과 다름이 없다. 그 사람이 다 떠나고 하나도 없는 현재, 물 때가 잔뜩 낀 거울에 비친 나는 영락없이 사흘 밤낮을 굶주린 패잔병과 닮았다.

  지금도 비가 오는 날이면 그 사람 생각을 한다. 자발적으로 숨어 있던 기억을 끄집어낸다기보단, 아무도 모르게 샘솟는 지하수처럼 예상치 못한 순간 터져 나오는 거다. 요즘처럼 비가 단 하루도 거르지를 않고 끼니처럼 쏟는 장마철에는, 거의 날마다 진종일 그 사람 생각으로 채워내는 셈이다.
  그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겠다는 명목으로 여름 또한 사랑하게 되었으나, 이제 더는 내 삶 속에 실재하지 않는 존재를 그리워하는 데에 애꿎은 울음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 하에 여름을 미워해야만 한다. 여름을 미워한다는 건, 곧 비 오는 날에게서 등을 돌려야만 한다는 뜻이다.

  어제는 내게 어떤 하늘을 좋아하느냐고 물어오는 이에게, 당당히 오늘처럼 구름 한 점 없이 맑을 날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풀과 나무들이 선명하게 흔들리고, 꽉 막힌 속이 단숨에 뚫리는 듯한 하늘이 버젓이 버티고 있는 날을 좋아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말도 함께 덧붙였다. 그리고는 일기예보에서 쩌렁쩌렁 전해지는 또 한 번의 비 소식에, 속으로 크게 환호하고 있는 나의 모순적인 모습과 정면으로 마주하고야 말았다. 유난히도 사나울 그 비에 폭폭이 안기는 모습을 상상하고야 말았다.
  나는 또다시 ‘비가 억수 같이 오는 날’을 좋아하는 사람과 ‘볕이 바삭하게 내리쬐는 날’을 좋아하는 사람의 경계에 모호하게 걸터앉고야 말았다.
2020.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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