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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태완 Jul 17. 2020

짙은 열대야

그러니까 사랑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 그간 죽고 싶단 생각을 주식으로 여기는 생물 하나를 키워왔다. 이는 여름의 중심부에 놓인 낡은 다리 하나를 용케도 건너와 내게 포함됐다. 내가 사랑하는 이가 나의 행복을 바란다니 나는 그토록 간절하던 죽음을 잠깐 야윈 엉덩이 밑으로 숨겨둔다. 내 온몸을 전전하며 죽고 싶단 생각을 잘도 골라 먹던 아이는 더 이상 주린 배를 채울 것이 없어지자 스스로 발화하였다. 그 순간의 열기와 충격으로 나는 가슴팍과 얼굴을 잔뜩 붉혔다. 이를 보고서 내가 사랑하는 이는 나에게서 짙은 사랑을 발견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마주하게 되면 과연 어떤 느낌을 받게 되는 걸까. 지금껏 어쩌면 호흡보다도 가까이하던 생각 중 몸집이 가장 큰 문장이다. 그런데 막상 그런 사람을 우연히 마주하게 되니 덜컥 겁부터 난다. 놓는 일에는 지나치게 익숙하나 붙들고 있어야 하는 일에는 지나치게 무지하기에. 나의 모든 모습을 건네게 되면 그 사람이 진절머리를 치며 괴성과 함께 어디론가 윙윙 흩어질까 봐. 가끔은 사랑할 땐 사랑만 하기로 한다는 어떤 이의 유연한 혓바닥이 부럽다. 내게 사랑보다 중요한 건 없다만 사랑보다 무서운 건 어디에도 살고 있는 탓이다. 부디 그런 당신이 나를 아주 조금만 도와주기를. 제발 이 관계를 얕보지 않기를. 나를 불쌍히 여기진 않아도 퍽 애틋하다 생각해주기를. 내가 나의 글을 사랑하는 정도의 반만이라도 아껴주기를. 내가 건네는 사랑에 한 치의 의심도 품지 않기를. 잠깐 스치는 인연 따위의 이름을 아랫입술 위에 올리지도 말고 필연과 우연으로 땋은 색색들이 어여쁜 어떤 것으로 생각하기를. 무엇보다 나의 죽음을 조금 더, 조금만 더 뒤로 미뤄주기를. 당신과 무언가를 맞추고 있는 동안은 그 어떤 악한 생각도 내게 당도하지 못할 테니. 이 여름 내내 차가웁게 흩뿌려지는 것들이 우리가 주고받는 붉은 것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도 아닌 것이 되기를. 그러니까 지금은 그 사람과 배드민턴 함께 치고 싶은 여름밤. 점점 짙어지는 열대야.
2020.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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