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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태완 Jul 19. 2020

많이 좋아해요

2020. 7. 19


  당신 얼굴이니 웃음이니 체취니 하는 것들을 드문드문 떠올릴 때마다 왈칵 울음이 터질 듯하였습니다. 만약 행복이란 감정에 자격과 같은 것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하면, 이런 내가 감히 행복함에 몸부림을 쳐도 되는지, 내가 그만큼의 조건에 충족되는 사람이긴 한 건지 의문이었습니다.
  유독 추위를 많이 타는 당신의 차가운 코끝과 웃을 때 조금 찡그리는 미간과 나에게 입이 참 예쁘다 말해주는 훨씬 예쁜 그 입이 나는 너무 좋습니다. 진종일 그것들을 번갈아 가며 생각하고 그리느라 내 허술하던 하루에 틈이란 틈은 전부 꼼꼼하게 메꿔졌습니다.
  아직은 매일 드리우는 여름밤이 그리 덥지도 않습니다. 벌레를 몸서리치게 싫어하더라도 저 멀리서 은은하게 퍼지는 풀벌레 소리는 퍽 달갑습니다. 그러는 나는 당신과 어느 한적한 공터의 풀밭에 나란히 누워있고 싶습니다. 올려다보는 것이 무엇이든 당신만큼 화려하고 우아할까 싶지마는, 함께라면 그 의미는 배가 되고 맞잡은 손이 간지러워 도무지 견딜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당신 그림자 한 줌 밟지 않으려 조심할 만큼 당신을 살금살금 아끼지만, 겁도 없이 그 품을 와락 안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 건 정말이지 알 수 없는 인간의 본능입니다.
  당신은 꽃을 좋아합니까. 그렇다면 여름에 피는 꽃은 죄다 그 색이 선명하고 어여쁘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을까요.
  당신이 원한다면 그게 무엇이든 한 아름 엮어다 작은 품에 꼼꼼히 심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빛의 산란보다 많은 걸음으로 흩어져 이것저것 가져다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이글거리며 작열하는 팔월의 볕이라고 한들, 그 하나하나를 등에 업고 얻은 화상에는 조금도 개의치 않을 것입니다.
  나에게 이렇듯 미친 행복을 선사한 그대는 조금 편안한가요. 내가 나도 모르게 흘려낸 우울이 시큼해서 견딜 수 없지는 않은가요. 내 감정이 큰 소리로 여기저기 닿는 것만큼, 당신의 솔직하고 벌거벗은 감정 또한 많은 곳 중 나에게 닿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자세한 행복이 담겨 있기를. 부디 나 하나 덕분에 당신의 훨씬 예쁜 그 입에서 행복하다는 말이 축제의 폭죽처럼 넓게 터져 나오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내가 당신의 깊은 눈과 숨겨 둔 울음과 떨리는 두 다리와 가슴께에 깊게 박혀있을 슬픔과 여름밤에 걸맞은 삶의 습기를 사랑합니다. 많이 좋아해요. 우리가 서로에게 전할 말이 더 많이 생기는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일부터 다시 비가 쏟는다니 그때 이야기는 그때로 미루도록 하는 겁니다.

2020.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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