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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태완 Oct 29. 2020

울음을 터트리는 순간이 많아졌어.

2020. 10. 29


  울음을 터트리는 순간이 많아졌어. 별 잡다한 일에도, 지극히 사소한 일에도, 행복할 때도, 미칠 만큼 슬플 때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물이 흐르는 거야. 눈물이 느리게 지나간 자리에는 화상 자국처럼 값진 흉터가 남아. 얼룩이 진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면 평소와 같은 모습인데, 눈을 질끈 감고 손끝으로 그 자리를 문질러 보면 아주 쓰라린 거야.

  참 웃기지. 다 큰 남자의 몸뚱어리를 갖고서도 여전히 엄마를 찾아. 엄마, 나 요즘 자꾸 눈물이 흘러. 엄마는 이 나이, 이럴 때 어떻게 했었어? 맞지. 그냥 꾹 참아봐야 하는 거겠지. 그래서, 요즘 몸은 좀 어때. 조금 덜 아프고? 나는 꼭 예전처럼 건강해질래.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그게 엄마 유일한 소원일 테니까. 덜 외로워하고, 죽고 싶다는 생각은 저 산등성이 너머로 치워버리고, 너무 뜨거운 눈물은 흘리지 않을게. 어떤 품에 안기는 걸 무척 좋아하지만, 엄마에게 아무 거리낌 없이 안겼던 시절의 기억이 흐릿해서 아쉬워, 하고. 아이, 참. 또 눈물이 나네.

  매 순간이 결국엔 슬픔이 되어 속 깊은 곳에 응어리로 남아. 병일까. 병인가? 쓸데없는 고민이라는 걸 알면서도 문득 무서운 거 있지. 나조차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이렇듯 엉망진창이 된 상황에도 슬픈 음악을 들어. 꼭 나만 이런 건 아니구나, 하면서 위로를 받음과 동시에, 결국에는 이 세상에서 나 혼자 울어대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저기, 저기서 나를 어루만져 주려는 손이 순서도 없이 그냥 막 튀어나오는데, 조금 이상해. 많이 이상해. 시커멓게 타버린 손이라니까. 그러니까 나뭇잎이 몽땅 떨어져 버린 앙상한 나뭇가지 같아. 저걸 뭣도 모르고 잡아버리면, 나도 깊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건 아닐까. 나도 비쩍 말라버린 낙엽이 되는 건 아닐까.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울까.

  나는 멋진 친구일까. 멋진 애인일까. 멋진 아들일까. 멋진 동생일까. 이런 걸 하나하나 따져가면서 생각하다 보면, 뭐랄까, 정말이지 나는 하나도 멋지지 않은 것만 같아서 사무치도록 슬퍼.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단 한 번도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 적 없다는 사실이 나를 막 찔러. 온몸에서 피가 전부 빠져나왔는데도 계속 찔러. 피부가 거의 파도색에 가까워질 만큼 창백해졌는데도 찔러. 미안. 내가 또 너를 걱정시켰겠구나. 미안. 나는 그냥 울게.

  오늘은 낮부터 하늘이 엄청 화창했었거든. 그래서인지 해가 다 저문 지금도 별이 수도 없이 많아. 날을 새면 다 헤아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러기엔 내가 눈물이 너무 많으니까. 야속하다. 너 말고 나 말이야.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 알 수 있는 것도 없어.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추울 거래. 그거참 슬픈 사실이다. 그치?

  잠시만, 내가 오늘 무슨 꿈을 꾸고 싶었더라. 하늘은 분홍에 가까운 색에다가, 잔디가 무성한 들판에, 조금 앞에는 형형색색의 풀꽃들이 가득하고, 그 위에 행복에 겨워 무엇이든 사랑하고 싶어 하는 내가 우두커니 서 있는 꿈이었던가. 또 눈물이 흘러서 앞이 잘 보이지는 않지만, 저기 그보다 더 진한 어둠이 이리 오라고 손짓을 해. 이만 저곳으로 가 봐야겠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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