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태완 Feb 27. 2021

편지

당신은 무사히 안녕한가요


  우리가 죽도록 아프게 헤어지고서 흘러 버린 시간도 어느덧 2년 남짓입니다. 사계절은 진작 돌고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고, 당신이 그리도 애틋이 여기던 여름, 그러니까 올해 여름에는 여느 때보다도 비가 많이 쏟았었지요. 완전히 잊고 지낸 듯했던 당신에게 무슨 연유로 편지씩이나 ᅳ게 되었는지는 저조차도 모를 노릇입니다. 더는 대낮이라도 정수리가 햇볕에 뜨거워질 일이 없어서인지, 옷을 두세 겹이나 껴입어도 동이 트면 온몸을 웅크려야만 해서인지, 어느 곳을 걸어도 빛이 바랜 낙엽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려 오는 탓인지 도통 알 수가 없어 괜스레 속상한 마음ᄋᆸ니다.  돌이켜 보면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만남이었습니다. 그렇다 할 큰 다툼이 있었던 것도, 도저히 맞춰갈 수 없을 지경까지 성격이 정반대로 튕겨 나간 것도 아니었거든요. 오히려 하나의 마음이 정확하게 둘로 분리되어 ᆨ자 다른 성별과 외형만 갖게 된 건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오고 갈 정도로 닮은 구석만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어쩌면 하늘이 점쳐준 운명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여겼습니다. 이는 저만의 착각은 아니었다고 지금도 확신하ᅳᆫ데요. 그 당시에 놓인 당신과 나는, 결코 서로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도록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이에는 여느 연인들의 사소한 다툼보다도 잦은 이별이 있었고, 그럴 때마다 잃어버린 목숨에 뒤늦게 손을 뻗듯 서로를 미친 사람처럼 찾아댔습니다. 다시는 안 볼 것처럼 남이 되었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랑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ᅡ는 눈으로 서로의 표정을 관찰하고는 했습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은연중에 자각하고 있었으면서도, 그저 당신이라는 존재가 내게는 너무 애틋하게만 다가와서 그 모든 부정들을 훤히 보고도 못 본 척했었습니다.  리의 마지막에 당신이 내게 건넨 말은, 꽤 오랜 시간 내가 당신을 원망하게끔 했습니다. 나와의 헤어짐이 싫어서 이 관계를 지켜왔던 게 아니라, 그냥 ‘이별이라는 상황 자체에 놓이는 게 무서워서 애써 붙잡고 있었다는 그 말이 나는 너무도 아팠습ᅵ다. 당신이 새로이 사랑에 빠진 그 사람을 괜히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무작정 미워하는 일은 무척이나 고된 일이었습니다. 딱히 이유를 찾지 못한 거짓 원망이라, 금방 그 힘을 잃고서 시들하게 죽어버렸지만요.  하지만 이제는 나의 배신감이나 원망보다는, 당신이 느꼈을 허탈함과 그러한 마음에 닿기까지의 과정에서 부딪혀야 했을 둔중한 벽에 대해 더욱 깊숙이 생각합니다. 그 가여운 심정을 사탕처럼 곰곰이 녹이다 보면 걷잡을 수 없을 만큼의 죄책감이 몰려와서, 눈을 질끈 감고 미안하다는 말을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고는 합니다. 당신은 하루라도 빨리 나를 벗어나 지금 곁에 있는 그 사람을 만났어야 했다고, 그래, 너는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유로움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사람과 더욱 어울린다고, 참 좋은 사람 만난 것 같아 이제야 좀 안심이 된다고 편한 마음으로 인정했습니다. 누군가 내게 정말 하나도 아쉽지 않으냐고 물어온다면,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서로가 각자의 자리를 찾아간 것에 뭣 하러 불만을 품겠느냐고 대답할 수도 있겠습니다.  당신 덕에 오래도록 유지하고 있는 좋은 습관들도 있습니다. 너무 바쁘거나 피곤한 날이 아니라면 빼놓지 않고 일기를 씁니다. 길게는 아니더라도, 한두 줄 정도로 그날 하루를 간단하게 정리합니다. 귀찮은 일로만 여겼던 일기 쓰기가, 당신 덕에 오늘의 마무리를 아주 깔끔하게 다듬어 주는 가위 같은 것으로 감쪽같이 둔갑했습니다. 아무리 비참하게 끝난 관계인들, 사랑하는 동안에는 분명 서로에게 적지 않은 긍정을 자신도 모르게 선물처럼 건넸을 것입니다.  그러는 당신은 여전히 행복과 슬픔을 한데 모아 글로 기록하고는 하나요. 참, 그토록 좋아하던 검정치마의 음악은 여전히 즐겨 듣나요. 김사월의 음악과 잔나비의 음악은요? 술을 좋아하는 취향은 변함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제는 맥주보단 위스키를 즐겨 마시는 것 같더라고요. 내가 셀 수도 없이 많이 바뀐 만큼, 당신도 무척이나 달라졌을 거로 생각합니다. 이에 아주 조금은 씁쓸한 마음이 들면서도, 어느덧 시간이 이렇게나 흘러 보기 좋게 성장했다는 사실이 퍽 뿌듯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럼 이제 그간 미안한 마음이 앞서 차마 건네지 못했던 말을 마지막으로 이 편지를 끝마칠까요. 곧 지겹도록 많은 눈이 쏟을 이 겨울의 초입에 당신은 안녕한가요. 슬픔과 고통을 뒤로하고 간 그 삶에서는 무사히 안녕한가요.

작가의 이전글 울음을 터트리는 순간이 많아졌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