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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태완 Mar 06. 2021

당신에게 선물할 시

나랑 어디 놀러 가지 않을래요?


  당신을 사랑함으로써 변화하는 모든 것들이 마음에 들어요. 나는 내가 그 누구도 꺾지 못할 고집을 가ᄌ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 당당한 고집조차도 당신 앞에 놓고 보니 한낱 가벼운 투정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가끔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당신에게 선물할 시를 쓰기도 하거든요. 그에 당신은 사랑을 이토록 많은 단어로 다채롭게 표현하는 내가 부럽다고, 고ᄌ 사랑한다는 말 하나로 마음을 전할 수밖에 없는 자신이 초라해진다 했었지만, 사실 내가 삼킨 모든 문학을 토해낸다고 한들 당신의 그 하나뿐인 마음을 이길 단어를 찾아낼 수는 없었어요. 당신이 내 손을 잡는다거나, 눈과 입을 맞춘다거나, 동그랗게 뭉쳐져 입 밖으로 튕겨 나오는 사랑을 말할 때면 나는 늘 심한 감기를 앓고 있는 사람처럼 온몸을 우ᅳ린 채 전율하고는 해요.  원래는 지독하리만큼 여행을 싫어하는 나지만, 싫어한다기보다는 겁이 너무 많아 낯선 땅 위에 발끝을 놓아두는 일을 두려워하지만, 요즘은 당신과 이곳저곳을 거침없이 누비는 여행가가 되어도 좋겠단 생각을 자주 해요. 일단은 집과 가까운 호수공원에 나가 볼까요. 봄이 오면 담처럼 얼어버린 잔디들도 파릇하게 일어날 테니 그 위에다 파란 돗자리를 깔고 앉으면 될 거예요. 나는 김밥보다는 유부초밥을 좋아는데요. 조금 멀리서 아무 말도 없이 뛰노는 강아지도 참 귀여울 것 같아요. 음식 솜씨가 그리 좋지는 않지만, 이것저것 맛있는 거 잔뜩 넣은 도시락도 준비해 볼게요. 다 완성되면 그제야 당신에게 몇 번이고 썼다 지운 메시지 한 통 보내는 거예요. 도시락도 쌌는데, 때마침 날도 참 좋은데 나랑 어디 놀러  않을래요? 하고.  당신이 내 가슴팍에 강하게 찔러 넣은 무언가가 웬일인지 하나도 아프지 않아요. 아무래ᄃ 우리가 깊숙이 만나기 전에 생긴 일인 듯한데, 괜찮다면 그 흔한 틈 하나 없던 내 인생을 무슨 재주로 비집고 들어올 수 있었는지 이야기해 줄래요? 그 덕에 내가 한 번 더 따뜻할 수 있었고, 갑자기 쏟는 소나기를 조금 덜 맞을 수 있었고, 한겨울이 새벽 사이에 이 세계를 덮치기 전에 창문을 닫아놓을 수 있었고, 사랑을 하기에 목격할 수 있었던 어떤 가능성에 대해 골똘히 생각할 수 있게 되었어요. 고맙다는 말로는 다 전하지 못할 이 마음이 부디 여러 갈래로 찢어져 당신의 오감에 부드럽게 침투하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입니다.  이토록 미욱한 내가 어디 당신을 제대로 사랑할 수나 있겠느냐 사람들은 걱정 섞인 얼굴로 비아냥거리기도 하지만, 내가 그날 밤 그리도 서럽게 울었던 것은 사실 당신을 어떠한 방해에도 괘념치 않고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생겨버린 탓이었습니다.  아무런 걱정도 말아라, 감히 말할 수도 있어요. 필연적으로 지니게 된 각자의 결핍은 곧 우리의 결핍이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 웅덩이를 물 모양의 사랑으로 첨벙첨벙 채워내기로 하죠. 우리에겐 위기의 순간조차 애틋한 장면으로 바꿀 멋진 연출력이 있을 거예요. 잘만 한다면 하루에도 수만 번씩 가슴이 난동을 부리고, 그 영향 아래 우리는 영원이라도 포개어질 수 있거든요. 당신이 지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나는 내 손끝을 허공에다 요리조리 저어대고 휘파람 같은 것을 휘휘 불어서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계절로 우리를 훌쩍 떠나게 할 수도 있어요. 정말이라니까요.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이라도 해야 믿을 건가요.  이제는 추위가 두려워 세게 닫아두었던 창문을 열어도 좋겠어요. 창밖은 여전한 겨울일 테지만 당신과 내가 봄이거나 여름이니까 그런 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아요. 무언가 소복이 쌓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은데요.   세상에, 여길 좀 봐요. 언제부터 내렸을지 모르는 눈이 발자국도 하나 없이 깨끗하게 쌓여있잖아요. 그 위로는 이 세계의 모든 삶보다도 많은 첫눈이 발을 내디뎌요. 이대로 시간이 멈춰도 좋겠지만 창문을 잠시만 열어두고 따뜻한 차 한 잔씩 나눠 마실까요. 첫눈이 끝도 없이 칠해지는 바깥을 보며 당신에게 사랑한다 말하고 싶은 마음이 깊은 잠처럼 간절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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