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마음이 무너져 내릴 때, 나는 배운다

‘아이를 손님처럼’이라는 말

by 르은


아이를 손님처럼.


그 말이,

어느 날 문득 마음에 깊이 남았다.


생각해 보니

내 삶에는 두 번의 큰 변곡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결혼이었다.

든든한 내 편이 생기고,

그의 가족이라는 또 다른 관계가 생기며

세상과 나 사이의 구도가 바뀌었다.


두 번째는 출산이다.

출산 전과 후의 삶은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다.

나는 그 경계에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사실, 아이는 예정 없이 찾아왔다.

가족계획도 없던 시기,

갑작스러운 임신 소식은 당황스러웠지만

이상하게도 받아들이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루하루 불러오는 배는 낯설었고,

출산 후기를 읽으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혼자 가만히 묻는 날들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선배 엄마들은 말했다.

“지금이 제일 행복할 때야.

뱃속에 있을 때가 평화로운 거야.”


그 말의 의미는

출산 후 곧바로 알게 되었다.

수유와 잠 없는 밤들이 이어졌고,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그제야 매일 새로 배웠다.


‘이 시기만 지나면 괜찮겠지’ 했지만,

아이의 성장만큼

새로운 고민도 함께 자랐다.


아기였을 땐 돌봄이,

유치원 시절엔 또래 관계가,

초등학생이 되자

학습과 감정의 파도가

부모인 나에게도 밀려왔다.


아이도 힘들었겠지만

나는 그 아픔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무너질 것 같았다.


무엇보다 두려웠던 건,

결국 아이는

자기 인생을 스스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과하게 개입하지 않으려 애썼다.

지지하고, 응원하되,

지나치게 관여하지 않기.

그게 부모로서 내가 지킬 수 있는 거리라 믿었고

그 안에서 위안을 얻는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나 스스로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되지는 않았다.





나는 자주 아이와 나를 동일시했고

나처럼 하길 바랐다.

그것이 사랑이라 착각했던 날들도 있었다.


어느 날, 남편이 조용히 말했다.

“너랑 나는 좋아서 만났지만

아이는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난 게 아니잖아.

그러니 아이를 손님처럼 대해주자.

정성스럽게 맞이하고,

때가 되면 손님 배웅하듯 잘 보내주자.”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나는 아이를 ‘내 사람’,

‘내 방식대로 키워야 할 존재’로

자연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 마음이 부끄러웠다.


그날 이후,

나는 아이가 내 기대와 다르게 행동할 때

‘이 아이만의 선택’이라고 받아들이려 했다.

실수나 서툼도 성장의 한 조각이라 믿었다.


무엇보다,

아이 앞에서 조급해지거나

화를 내는 순간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지금도 나는 자주 되뇐다.

아이를 손님처럼.

존중하고, 배려하고,

잠시 머물다 가는 존재처럼.


아이를 존중한다는 건,

곁에 있으면서도

다른 존재로 인정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 아닐까.


부모가 된다는 건,

사랑하면서도 내려놓는 법을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배워가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 연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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