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 네모난 세상 속의 울퉁불퉁한 모서리

모양을 고쳐주지 않던 사람

by 리은

마트 냉동 코너에서 너비아니 한 봉지를 장바구니에 담았다.‘너비아니’라는 단어를 입속에서 조용히 굴려보는데, 어딘가 겉도는 이름처럼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언제 마지막으로 먹었더라. 그 이름을 따라가다 보니, 한때 살던 집의 주방이 떠올랐다.


어릴 적 엄마는 동네 슈퍼에서 파는 냉동식품을 보면 집으로 돌아와 직접 만들어 주곤 하셨다.

수많은 메뉴 중 내가 가장 기다렸던 건 언제나 너비아니였다. 준비가 시작되면 나와 동생은 약속이라도 한 듯 주방 근처를 맴돌았다. 냄새보다도, 고기를 다지고 반죽을 섞는 엄마의 손이 꼭 재미있는 소꿉놀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엄마는 반죽을 섞던 손을 잠시 멈추고, 주방을 어슬렁거리던 우리를 한 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말없이 바닥에 신문지를 넓게 펴고 우리를 불러 앉혔다. 스테인리스 볼에 담긴 찰진 반죽을 한 덩이씩 집어, 우리 손바닥 위에 얹어주고는, 꾹 눌러 모양을 만들어 보라고 했다. 반죽은 생각보다 말랑했고 손에 자꾸 달라붙었다. 처음에는 엄마가 앞에 놓아둔 네모반듯한 너비아니를 힐끗거리며 그대로 흉내 냈다. 각 잡힌 직선과 뾰족한 모서리를 만들려 애쓰던 손가락 끝은, 여느 아이가 그렇듯 시간이 지날수록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네모졌던 반죽은 어느새 둥글게 깎였다가 세모나게 뾰족해졌고, 결국에는 제 나름의 기준으로 만든 토끼나 자동차 같은 정체 모를 덩어리로 변해갔다. 그 울퉁불퉁한 모양새를 발견한 엄마가 우리를 쳐다보면, 나는 얼른 “이건 내가 먹을 거야”라며 당당하게 큰 소리로 말했다. 아마 이 놀이를 그만두라고 하실까 봐 미리 선수를 쳤던 것 같다.


엄마는 별말 없이 웃기다는 듯 미소를 짓더니, 내가 빚은 반죽을 그대로 팬 위에 올리셨다. 지글지글한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집 안에 퍼졌다. 모양이 제각각이라 어떤 것은 가장자리가 먼저 익고, 어떤 것은 지나치게 두꺼워 속이 더디게 익었을 텐데도, 엄마는 내 반죽에 손을 대어 모양을 다시 잡아 주지 않았다. 대신 그 흐트러진 모양이 무너지지 않게, 뒤집개를 쥔 손목에 힘을 빼고 조심스럽게 뒤집어 가며 구워주셨다. 불 앞에 서서 속까지 익기를 기다리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내가 만든 토끼가 꽤 그럴듯한 요리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엄마는 늘 그렇게 불 앞에 서 있던 사람이었다. 모양이 어설퍼도, 먼저 타는 가장자리가 있어도, 손대지 않고 지켜보는 쪽을 택하는 사람.


이런 엄마의 태도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얼마 전, 모처럼 엄마와 연희동으로 브런치를 먹으러 갔을 때의 일이다. 지도 앱을 켜고 자신만만하게 앞장섰던 나는 복잡한 골목 사이에서 길을 잃고, 결국 막다른 주택가 끝에 서게 됐다. 당황한 내가 “엄마 미안, 길을 잘못 들었어. 다시 돌아가야 해.” 하며 조급해하자, 엄마는 오히려 내 팔짱을 끼며 한 발 다가왔다.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우리 딸이랑 조금 더 걸으라는 뜻인가 보지 뭐. 덕분에 이 동네 집 구경도 실컷 하네. 저기, 저 집 옆에 있는 카페 건물 좀 특이하게 생겼다. 그치.”


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골목을 한 번 더 둘러보았다. 우리는 돌아가는 길에 주변을 살피며 천천히 걸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주방 바닥에서 내 울퉁불퉁한 너비아니를 말없이 뒤집어 주던 엄마의 뒷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서, 어떤 모양이든 괜히 당차게 “이건 내가 먹을 거야” 하고 소리치던 아이의 얼굴도 함께 떠올랐다.


앞사람이 계산대 위에 물건을 올리는 동안 장바구니 안을 내려다봤다. 포장지 너머로 네모반듯한 너비아니들이 겹쳐 있었다. 가장자리도, 두께도 일정해 보이는 모양들. 지금의 나는 눈앞의 이 반듯한 직사각형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어른이 되었다. 일정한 크기로 정렬된 모양을 보며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그런데 어쩌면 나는 저 직사각형의 규격에 나를 맞추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삐져나온 모서리를 들키기라도 할까 봐 괜히 한 번 더 내 모서리를 만지작거렸고, 길을 잘못 들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면 주변을 돌아볼 새도 없이 걸음을 재촉하며 스스로를 몰아세우면서 말이다.


바코드의 기계적인 신호음이 울리는 계산대 앞에서, 나는 비로소 그날 엄마의 뒷모습을 다시 떠올린다. 엄마가 지켜준 것은 제멋대로 생긴 고기 반죽이 아니라, 어떤 모양으로 빚어져도 결국엔 맛있는 요리가 될 거라는 내가 가진 철없는 믿음이었음을. 먼저 익는 가장자리가 있어도, 속이 더디게 따라와도, 그 시간을 하나의 과정으로 두고 서두르지 않던 태도였다는 것을.


계산을 마치고 마트 밖으로 나오자, 해가 어느새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봉투에 담긴 너비아니의 묵직한 무게가 손바닥에 전해졌다.


‘비뚤비뚤하면 좀 어떤가. 그 울퉁불퉁한 모서리 덕분에 더 바삭하고 고소하게 익어갈지 누가 알랴’


이 반듯한 네모를 들고서도, 그 안에 있던 울퉁불퉁한 시간을 함께 떠올려본다.



'엄마가 카페에서 전해 준 노란 꽃다발'

photo by. 리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