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기 힘든 신발을 신는 이유
봄에는 하늘거리는 셔츠, 가을에는 바스락거리는 트렌치코트.
계절마다 손이 가는 옷이 있지만, 내게 겨울은 롱부츠의 계절이다.
무릎 아래까지 지퍼를 단단히 채우고 나면, 나의 겨울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두 다리를 감싸는 가죽 부츠를 신고 거리를 걷다 보면,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평소보다 어깨가 조금 더 펴져 있고, 다리도 한결 곧아 보인다. 보폭은 넓어지고 땅을 딛는 발걸음에도 힘이 실린다.
찬 공기 속에서도 나를 주인공처럼 만들어 주는 든든한 장비를 하나 갖춘 기분이랄까. 이런 날에는 괜히 더 걷고 싶어진다.
그날도 그렇게 기분 좋게 발을 내디디며 친구들과의 저녁 약속을 향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식당 입구 앞에서 그 걸음이 맥없이 멈췄다.
저녁 약속 식당 문 옆에 붙은 정중한 팻말 하나.
“신발 벗고 들어오세요.”
그 글귀를 보는 순간, 나는 조용히 고독한 사투를 준비한다.
친구들은 가벼운 운동화나 로퍼를 툭툭 벗어 던지고 벌써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넘기고 있다. 나는 혼자 신발장 앞에 덩그러니 서서 허리를 굽힌다. 무릎에서 발목까지 길게 이어진 지퍼를 내리는 순간부터 예감이 좋지 않다. 이건 분명 쉽게 끝나지 않을 일이다. 나를 얌전히 보내주지 않겠다는 선전포고다.
지퍼만 내린다고 발이 쏙 빠지는 것도 아니다. 한쪽 발을 들고 균형을 잡으며 부츠를 있는 힘껏 잡아당긴다. 이게 신발을 벗는 건지, 내 다리를 뽑아내는 건지 분간이 안 간다. 친구들이 부르는 소리에 손길은 더 급해지고, 거리에서의 주인공은 이미 안중에도 없다.
간신히 발을 빼냈다고 해서 상황이 끝난 건 아니다. 부츠에서 해방된 양말은 이미 습기로 눅눅해져 있고, 얼마나 꽉 끼어 있었는지 발가락 모양이 그대로 남아 있다. 누가 봐도 ‘방금 부츠에서 탈출한 발’이다. 얼른 식탁 밑으로 발을 숨겨보지만, 밥을 먹으면서도 자꾸 신경이 쓰인다. 혹시 냄새라도 나진 않을지 괜히 발끝을 한 번 더 오므렸다 폈다 한다. 고개는 대화에 끄덕이고 있지만, 마음은 자꾸 테이블 아래로 내려간다.
집에 돌아와 현관에 부츠를 벗어 던지며 다짐했다.
“내일은 무조건 운동화야.”
그때만큼은 이 말이 꽤 진심이었다.
하지만 며칠 뒤, 다시 아침이 오면 상황은 달라진다. 코트 아래에 운동화를 대보면 어쩐지 영 태가 나지 않는다. 신발장 앞에서 잠시 서 있다가, 결국 손은 다시 롱부츠 쪽으로 향한다. 진심이었던 다짐은 금세 흐려진다. 오늘은 제발 신발 벗는 식당만 아니길 바라면서, 다시 그 좁고 긴 가죽 속으로 스스로 두 발을 밀어 넣는다.
사실 이 피곤한 사투는 매해 반복된다. 땀이 차고, 발이 저리고, 민망한 순간이 따라온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이 신발을 쉽게 내려놓지 않는다. 쇼윈도에 비친 모습을 보며 기분이 좋아 추운 거리 위에서도 괜히 한 번 더 발을 굴러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면, 그 정도 불편함쯤은 그냥 안고 가기로 한다.
낑낑거리며 부츠 지퍼를 올리다 보면 문득 궁금해진다. 시간이 더 흘러도 나는 여전히 이 좁고 답답한 가죽 통에 발을 밀어 넣고 있을까. 그때의 부츠는 지금보다 굽이 낮아졌을 수도 있고, 지퍼 하나 올리는 데 “에구구” 소리를 더 오래 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때의 나는 끝까지 신는 쪽을 택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식당 앞에서 잠깐 끙끙대고, 양말을 슬쩍 숨기는 일이 조금 번거롭더라도 말이다.
쇼윈도에 비친 나를 한 번 더 믿어보는 쪽으로,
조금 불편해도 나를 당당하게 만드는 선택을.
그때의 겨울도, 지금의 이 부츠처럼.
에구구 소리를 내면서라도, 끝까지 신어 내고 싶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도'
photo by. 리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