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미끄럼틀이 재밌을 나이

보내지 못한 답장 05

by 박탱커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박효아의 알림장>


2025년 12월 31일 수요일 / 맑음


햇살처럼 반짝이는 아침, 오늘도 행복반 하루가 시작되었어요!

오늘 행복반 친구들은 마지막 날을 맞아 에어바운스에서 신나게 놀이했답니다~

미끄럼틀 위에 씩씩하게 올라가 주변에서 기다리는 친구들도 한 번 바라보고는

“쌩~!” 하고 멋지게 내려왔어요~! >▽<


그중에서도 효아는 정말 최고로 신난 모습이었답니다.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어서 태워주세요!” 하는 듯이

아주 적극적으로 놀이에 참여했어요!


평소보다 훨씬 더 활기차게 노는 효아를 보며

선생님들도 “너무 귀엽다~” 하셨답니다.

아마 오늘이 효아가 놀이한 날 중 가장 열심히였던 하루였던 것 같아요!


오전·오후 간식 시간에는 맛있는지 어깨를 흔들흔들~ 리듬을 타며 냠냠~

점심에는 유부된장국, 치즈오믈렛, 백김치와 함께 밥을 아주 잘 먹었어요!

한 입 먹고는 반찬을 가리키고, 또 한 입 먹고 다시 가리키며 “이것 더 주세요!” 하는 것처럼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답니다!


조금씩 더 자라고 있는 효아는

오늘 놀이하는 모습에서도 부쩍 큰 모습을 보여주었어요.

낮잠도 금세 스르르 잠들어 푹 잘 자며 컨디션 최고인 하루를 보냈답니다~!


효아와 함께하는 여행에서도 좋은 추억 가득 쌓으시고 행복한 연휴 보내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오후간식 먹다 귤이 옷에 많이 묻어 갈아입혔어요.

티셔츠와 하의내의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다가오는 한해도 평안하시고 행복한 일만 가득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오늘도 정성스럽게 써주신 알림장을 흐뭇하게 잘 읽었습니다.

귀염둥이 효아의 치명적인 비밀 중 하나가 오늘에서야 밝혀지고 말았네요. 네. 요즘 효아는 미끄럼틀 삼매경에 빠져있습니다. 덕분에 집에서는 "한번 더, 한번 더"를 끝없이 반복되고, 제 허리는 남아나질 않습니다. 그 뿐인가요? 조그만 미끄럼틀에서도 까르르 웃는 효아를 본 장모님께서는 아예 장모님 댁 거실에 커다란 미끄럼틀을 설치해 주셨습니다. 처가에 갈 때마다 온갖 장난감들과 놀이기구로 가득 찬 거실은 거의 키즈카페를 방불케 합니다. 이렇게 가족들의 사랑으로 미끄럼틀에 대한 애정을 쌓아간 효아이기에, 오늘 에어바운스에서 얼마나 즐거웠을지 사진만 보아도 머릿속에 장면들이 그려집니다.


효아가 왜 이렇게 미끄럼틀을 좋아할까, 가끔 생각해 봅니다. 물론 그냥 미끄럼틀이 한창 재밌을 나이겠죠. 하지만 단순히 내려오는 순간의 속도감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낑낑대며 혼자 힘으로 올라가는 과정까지도 효아에게는 하나의 놀이처럼 보였거든요. 어렵게 올라가 놓고는 금세 내려와 버리는데도 웃음을 멈추지 않고 다시 또 올라가려는 모습이 참 신기했습니다.


사실 올 한 해는 효아와 함께하며 행복으로 가득했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고민이 깊었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프리랜서의 특성상 벌이의 파도가 큰 편인데, 아무래도 육아로 인해 시간의 분배가 자유롭지 못해 더더욱 그 편차가 커지게 되었거든요. 효아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생긴 오전 시간의 여유에 처음으로 동네의 알바 자리를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택배 분류 및 하역도우미.

흔히 말하는 까데기.


딱 원하는 시간대에,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한 알바 자리는 이게 유일했기에 용기내서 지원을 하게 되었죠. 몇 년 만에 새벽부터 땀흘려 일을 해본 것인지, 솔직히 겁부터 났습니다. 스무살 무렵, 치기에 어려 잠깐 찍먹한 건설 현장일을 할 때와는 다르게 저는 이제 불혹(아직 인정하긴 싫지만)의 나이가 되어 있었으니까요. '좋은 경험이 될거야'따위의 말로 포장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부족한 저의 벌이에 이미 선택지는 없었죠.


첫 날부터 누구보다 크게 인사했고, 실수를 하는 것에 두려워 하지 않았으며, 빨리 일을 배우기 위해 고개를 연신 숙이고 매번 뛰어 다니며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러너스하이. 장시간 달린 후 고통이 정점을 찍을 때 갑자기 찾아오는 짜릿한 쾌감이나 도취감을 뜻하죠. 첫 날부터 저는 굳이 말하자면, '까데기하이'를 느꼈습니다.


일이 익숙해지자 비로소 그들이 보였습니다.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만한 배우의 아버님부터, 은퇴 후 손자 용돈을 위해 이 곳에서 일하시는 분까지. 가장의 이름으로 새벽 공기를 폐 깊숙이 들이마시며 매일 같이 일하고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자판기 레쓰비로 충전되는 숨결, 난로 위에 구워먹는 고구마의 달콤함. 마치 시장에서 좌판을 펼친 할머니들 마냥 장난스레 티격태격하며 서로를 위로하는 정경들.


와이프의 복직이 가까워지며 그곳에서의 일은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함께 일하던 형님들은 아쉬워 하며 뜻밖의 스카우트 제안까지 해주셨죠. 너라면 탑차만 가지고 온다면 언제든지 자리를 내줄 수 있다면서요. 그 곳에서 저는 다시 한번 위로와 용기를 얻었습니다.


어쩌면 인생이란 미끄럼틀과 비슷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계단씩 낑낑대며 어렵게 올라가지만 때로는 슝~하고 내려오며 즐길 때도 있는거죠. 올라가고 내려오고, 다시 올라가는 이 모든 과정을 해맑게 웃으며 매 순간을 즐겨내는 것이야 말로 미끄럼틀이 주는 행복감이 아닌가 싶네요. 효아가 그랬던 것처럼, 저 역시 미끄럼틀이 한창 재밌을 나이인가 봅니다.


오늘 역시 이 답장은 보내지 않겠지만,

오늘 알림장을 읽으며 이 마음을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사진 속 효아가 미끄럼틀 앞에서 보여주는 해맑은 미소처럼,

지금의 저 역시 가족의 삶 앞에서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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