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준 높이기
성우로 살아온 십여 년,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많은 이들의 꿈일 텐데, 나는 그걸 이룬 것이다. 물론 '많이 번다'의 기준은 사람들 마다 다를 테지만, 돈과 관련해 유튜브에서 가장 인기 많은 '연 1억 벌기'를 넘어서는 소득은 평균적으로 사람들이 원하는 바와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근로 시간이 월등히 적은데도 그렇게 번다는 것이다. 친구들 마저 '다시 태어나면 너로 태어날 거야'라고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할 정도니, 나의 직업은 축복이라 생각했다.
물론, 성우가 그냥 된 것은 아니다.
20대에 가족에 등 떠밀려 시작한 사업은 내게 의욕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또래에 비해 2~3배의 월급을 벌기도 했지만, 늘 그랬던 것도 아니고 일은 재미없기만 했다. 그런 시간이 2년 정도 지날 즈음, 다행히(?) 사고가 한번 터지고, 내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에 (사실은 구두계약만 해놓은 내 잘못이 크다) 억울함으로 일주일을 앓았던 나는 '내가 진정 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어렸을 적 꿈이었던 '배우'가 되기 위해 대학로에 있는 극단을 찾아갔으나 현실에 부딪혔다. 연극배우들은 연봉 100만 원 (월급 아님) 남짓의 돈으로 살아가거나, 아예 돈을 못 버는 경우가 허다했고. 투잡 쓰리잡을 뛰며 그들의 꿈을 위해 도전하고 있었다. 직전까지 월 500만 원은 벌었는데, 연 100만 원은 당시의 내겐 어이가 없는 금액이었다. 그렇게 현실적 대안을 찾게 된 것이 성우다. 우연히 찾아가서 듣게 된 성우 수업은 내게 '천직이다!'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고, 그 길로 폐업신고를 한 후. 3년 3개월의 준비와 7전 8기 (정확히 7번 탈락하고 8번째에 합격했다)의 끈기 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렇게 성우로 연기를 하며, 온전히 몰입할 때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그렇게 제작진이나 클라이언트가 만족해하면 살아있음을 느꼈다.
https://youtu.be/e_ZjMoAV_1I?list=PLOyHtWBkBMYUhdurr-d-N2E0OhNgJA7QS
이 외에도 내가 좋아하는 작업물은 많지만, 업계에 나를 알리는데 큰 공헌을 한 2개의 작품만 링크했다.
지금은 엄청난 유튜브 채널이 되어버린 '슈카월드'의 초창기 구독자다. 이 채널을 구독자 만 명이 채 안될 때 구독했다. 나도 게임을 워낙 좋아하는지라, 게임과 경제 상식을 적절히 믹스한 그의 말들이 너무 재미있었고, 우연히 발견한 그 채널 덕에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재테크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생겼다. '부자들은 하나 같이 주식을 하는데, 왜 서민들은 주식을 하면 망한다고 할까?' 나이 40이 가까운 나이를 살면서, 태어나 처음 해본 돈과 사회에 대한 고민이었고 그렇게 '자본주의'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 이전까지 나는 정말 바보같이 살았다. 번 돈의 대부분을 별생각 없이 매년 소비하며 살았으니, 여태 버틴 게 용하다 싶다. 그렇게 코로나를 시대를 맞았고, 실시간으로 떨어지는 주가는 내게 기회로 보였다. 가진 돈은 적었지만 탈탈 털어 넣어 꽤 재미를 봤다. 그러나, 바보들은 이런 운을 실력이라 착각한다. 그 증거로, 러시아 전쟁을 대비해 자산배분을 제때 못해 번돈의 반을 날렸다. 이런 아픔을 겪고 나서야 제대로 실력을 쌓기 위해 내가 투자한 종목들을 자세히 검토하기 시작했다.
1년 전, 그렇게 AI의 습격이 오고 있음을 눈치챘다.
AI로 만들어진 목소리는 아직 완전히 자연스럽지 않으나, 이미 유튜브 콘텐츠의 절반은 AI로 생성된 내레이션으로 채워지고 있다. AI의 발전속도와 가능성은 어마어마해, 나는 3년 후쯤이면 성우라는 직업으로 할 수 있는 일의 90%는 사라질 거라 생각한다. 5년 후쯤이면 성우라는 직업은 아예 소멸될지도 모른다. 물론 개인적 의견이지만, 업계는 이미 일이 줄어들고 있음으로 불안해하는 동료가 늘고 있음으로 보아 실현될 확률이 높다 생각한다.
성우라는 직업은 나이가 80이 넘어 활동하시는 선생님도 계실 정도로, 평생 직업이라 여겨지는 축복 같은 일이었다. 직업 만족도 조사에 언제나 상위권을 차지하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일 말고 다른 일을 할 준비가 안돼있었다.
물론, 나는 아직 성우로써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간 쌓아온 필모그래피가 큰 역할을 해줘, 다행히 많은 곳에서 불러주심에 감사하며 성우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매 작업 최선을 다해 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하는 질문에는 '곧 끝난다'는 생각에 준비가 늦지 않으려 노력하는 중이다.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뭘 해야 할지 몰라, 100권 정도의 자기 계발서와 재테크 지침서를 읽고 실천하려 애쓰고 있다. 그리고 나를 믿기보다, 꾸준히 독서를 할 환경을 설정하기 위해 한 달 5개의 독서모임에 참여했다. 그렇게 얻은 지식 중 가장 큰 것.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내리지 못한다면, 그다음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4번 글을 써 봤지만, 더욱 뚜렷해질 때까지 계속 고민할 것이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하는 삶은, 행복할 수밖에 없다. 그 여정의 시작은 반드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고찰이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그런 의미였나 보다.
내가 진정 원하는 길을 가기 위해, 나는 끊임없이 노력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