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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희 Aug 10. 2020

3. 우리 집으로 가는 동상이몽

슬기로운 딸내미 생활

금요일 오후,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서 아이는 신나게 놀고 있다. 맛있는 것도 먹고, 거실에 대자로 누워 할머니의 쓰담쓰담에 낮잠을 자고, 딩동댕 유치원에서 뚝딱이를 만나고, 비닐 옷 입은 박진영 삼촌을 따라 노래도 흥얼거리고 춤도 추고, 안방에 들어가 겉은 차갑고 속은 따뜻한 솜이불 속에서 뒹굴 거리며 할아버지 옆에 앉아 6시 내 고향을 시청하기도 한다.


이렇듯 완벽한 하루를 보내고 있으면 아이는 종종 집에 가는 게 귀찮아진다. 아이는 집 부자다. 엄마 아빠와 사는 우리 집, 그리고 주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할머니 할아버지 집.


할머니가 저녁 준비를 하고 계실 때쯤 대문 앞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의자를 밟고 올라가 대신 인터폰을 받아 든 아이는 묻는다. "누구떼여!", "엄마~".


엄마다. 아이는 일에서 돌아온 엄마가 엄청 반가우면서도 떼를 쓰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생긴다. 엄마가 왔다는 건 오늘의 완벽한 하루를 정리하고 우리 집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놀고 싶은 마음 플러스 우리 집으로 가는 길에는 아이가 생각하고 싶지 않은 난코스가 있다. 노곤 노곤한 몸을 이끌고 짜리 몽땅한 다리로 가파른 언덕 위에 있는 우리 집으로 오르는 상상을 하면 아이에게는 없던 떼도 피어난다.


아이는 이번 주에 이미 한번 떼를 쓴 적이 있다. 엄마랑 아빠가 아이를 데리러 왔는데 하루 종일 신나게 논 후에 이미 피곤한 상태인 데다가 할머니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 자고 싶어서 안 간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엄마 아빠는 세상 쿨하게 인사하는 아이에게 서운함을 느끼며 돌아서야 했다. 그날 밤 엄마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이에게 직접 전하지 못한 서운함을 아이와 똑같이 생긴 아빠한테 대신 토로했다. "내 딸 맞아?!"


내일은 새벽부터 엄마 아빠를 깨워서 놀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아이는 오늘만큼은 엄마 손을 잡고 순순히 우리 집으로 가기로 결정한다. 잠시 후 마주할 난코스에 대해서도 아이에게는 다 계획이 있다.


하늘에 노을이 지는 가운데 엄마 손을 잡고 아이는 오늘 있었던 일을 재잘대며 걸어간다. 엄마도 오늘은 내일 아침에는 푹 늦잠을 잘 수 있는 주말인 데다가 아이가 엄마를 따라나서서 기분이 좋다. 엄마는 아이가 내일 새벽 6시부터 깨서 "엄마 일으나!"를 외치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알리가 없다.


엄마는 더더욱 몰랐다. 우리 집으로 가는 가파른 언덕길을 아이를 업고 올라가고 있을 줄이야. 아이의 계획은 통했다. 기다란 골목길이 하늘로 솟은 난코스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는 쭈그려 앉았다. 그리곤 짧게 외쳤다 "업어!"


쭈그린 아이를 보며 엄마는 생각했다. '역시 순순히 따라나서는 게 다 계획이 있었군. 그래도 오늘은 금요일이니까 좀 힘들어도 사랑하는 아이는 업어줘야지.'


엄마 등에 업힌 아이는 기분이 끝내주게 좋다. 난코스를 극복하며 우리 집에도 잘 왔고 내일 아침 일찍부터 엄마 아빠를 깨워서 신나게 놀 생각을 하니 행복하다.


30살이 된 아이는 아직도 엄마 아빠랑 보내는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지금도 새벽에 엄마 아빠를 깨운다. 아이의 굿나잇과 엄마 아빠의 굿모닝이 맞닿은 그런 시공간을 살아가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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