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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희 Aug 18. 2020

4. 첫 과외 선생님

동네 훈장님

아이는 오늘도 할머니 할아버지 집으로 출근을 했다. 할머니 볼에 쪽, 할아버지 볼에 쪽 아침 인사를 나누었다. 할아버지가 큰 방 책상에서 뭔가를 하시길래 따라 들어가 보았다. 책상 한 켠에는 전통 민화가 그려져 있는 새 공책이 묶음으로 놓여있다. 표지에는 학교, 학년, 반 그리고 이름도 쓸 수 있는 듯하고 궁금해서 펼쳐보니 네모난 칸들이 종이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아이는 아직 글은 모르지만 이 '깍두기공책'은 너무나 갖고 싶다. (할아버지는 늘 그 공책을 깍두기공책이라 하셨다.) 앞에 그려져 있는 그림도 예쁘고 그 옆에 놓인 예쁜 캐릭터 연필도 세트로 갖고 싶다. 늘 문방구에 쌓여있던 것을 본 적이 있어서 더더욱 이걸로 뭘 하실까 궁금해진다. 집 모양의 연필깎이로 정성스레 연필을 깎으시던 할아버지는 아이가 관심을 갖는 것을 보고 물어보신다. '너도 할래?'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는 일단 공책과 연필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으로 대답한다. '네!!' '그래 그럼 조금만 기다려~?'


그때 마침 마당으로 누군가 들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동네 친한 언니가 왔다. 언니는 종종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온다. 문 밖에서 '00야~ 노올자~' 하며 아이를 불러내서 돌로 나뭇잎을 짓이기며 소꿉놀이를 하러 오는 언니인데 오늘은 어쩐지 조용히 들어온다. '언니 왔떠?! 엄마 아빠 놀이하까?' '아니야, 오늘은 공부하러 왔어 같이 하자!' 아이는 영문을 모른 채 언니를 쫓아 할아버지가 계신 큰 방으로 들어간다.


이미 한글을 아는 언니에게 할아버지는 책장에 꽂혀있는 동화책을 하나 건네신다. 그리곤 그 동화책을 읽으며 공책에 같이 쓰라고 일러주신다. 깍두기공책과 연필을 쥐고 글씨를 써 내려가는 언니를 부럽게 보던 아이는 나도 꼭 저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기대에 차서 바라보는 아이에게 똑같은 공책과 몽땅 연필을 쥐어주신 할아버지는 초록색 합판 하나를 꺼내어 보여주신다. 그 합판에는 색색깔로 한글의 자음과 모음이 적혀있다.


그렇게 아이는 동네 훈장님이기도 한 할아버지와 한글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자, 한 자 따라 읽는 방법을 배웠고, 글을 읽을 줄 알게 되자 그때부터 쓰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공부시간이 돌아올 때면 할아버지는 깍두기공책 맨 윗줄에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아, 자, 차, 카, 타, 파, 하 / 가, 갸, 거, 겨, 고, 교, 구, 규, 그, 기... 를 써주셨고 아이는 예쁜 캐릭터 연필을 심지에 가깝게 쥐고 글자당 열 번씩 반복하며 한 획씩 그려나갔다. 물론 때가 되자 아이에게도 동화책 베껴쓰기가 시작되었다. 책장에 있던 콩쥐 팥쥐, 선녀와 나무꾼, 토끼와 거북이 등등의 동화책들을 깍두기공책에 옮기며 아이는 동화와 글을 동시에 익히게 되었다. 깍두기공책을 끝까지 채우고 새 공책을 펼칠 때, 그리고 쓰던 연필이 몽땅 연필이 되어 잉크가 닳은 볼펜의 몸통과 합체할 때 얼마나 뿌듯한지 아이는 나름 그 공부시간을 즐겁게 생각했다.


할아버지의 공부시간에는 한글뿐 아니라 산수도 있었다. 할아버지는 아이에게 숫자를 가르쳐주셨고 한글처럼 숫자를 쓰게도 하셨다. 더하기와 빼기는 물건을 가지고 책상에 놓았다 뺏다를 반복하며 알려주셨다. 숫자라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합판이 다시 등장했다. 이번에는 한글 대신 구구단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1단부터 9단까지 전부 적혀있었다. 아이가 곱하기의 원리를 깨우쳤는지는 의문이다. 다만 그날부터 할아버지는 나중에 학교에 갔을 때 도움이 될 테니 1단부터 9단까지 암기하라는 미션을 내리셨다. 할아버지가 알려주신 음과 리듬을 붙여가며 아이는 열심히 외웠다. '이칠에 십사, 이팔에 십육, 이구 십팔!' 9단까지 외워나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6단부터는 숫자의 열을 뒤집어서 생각하면 점점 쉬웠졌다. 그렇게 아이는 할아버지 덕에 5살에 한글과 구구단을 섭렵한 후 엄마 아빠 손을 잡고 한국을 잠시 떠났다.


30살이 된 아이는 생각한다. 그때 할아버지 덕에 한글과 산수를 일찍 깨우친 게 다행이라고. 할아버지 덕분에 미국에 있는 주말 한국학교를 가서 영어를 쏼라쏼라하는 언니 오빠들 사이에서 한글 우등생이었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초등학교에서 적응하기가 수월했다. 또한 이미 숫자에 대한 개념과 구구단이 머리에 박혀있었기에 '아시아 애들은 수학을 잘해'라고 하는 국제적인 편견을 깨지 않고 이어갈 수 있었고, 한국의 초등학교 2학년 수학에 나오는 곱셈만큼은 좋은 점수를 받았다.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초등학생이 된 아이와 할아버지의 별의별 과외는 지속되었다. 할아버지는 누가 뭐래도 아이에게 최고의, 최초의 과외선생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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