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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희 Sep 17. 2020

7. 영어 천재(?)

5살의 깡다구

일주일 후면 아이는 생애 5년 만에 처음으로 비행기를 탄다. 비행기를 타고 사람의 생김새도 다르고 쓰는 언어도 다른 미국이라는 곳에 간다. 아빠가 미국으로 발령이 났고 세 식구가 함께 가서 살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를 통해 들은 미국에 대한 이미지가 아이에게는 미국에 대한 정보의 전부이다. 한국과는 먼 다른 나라라는 것, 한국보다 잘 사는 나라라는 것, 가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어야 한다는 것, 할머니, 할아버지와는 이제 자주 못 볼 것이라는 것, 그래도 미키마우스, 미니마우스가 살고 있는 디즈니랜드의 나라라는 것이다. 신나 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기대에 부풀어 있어야 할지 모르겠는 일주일이었다. 다만 엄마, 아빠와 함께니 걱정할 게 없다는 생각만 있었다.


그렇게 출국을 일주일 앞둔 어느 날 손녀를 떠나보내기에 아쉬운 할머니는 손녀가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만들며 저녁을 준비 중이시다. 할머니 집 어항 앞에 엎드려 물고기를 구경하는 아이에게 할머니는 묻는다. 

'너는 이제 미국 가면 할머니, 할아버지 못 보는데 어떻게 하지?' 

'아빠가 전화할 수 있다고 했어요. 전화 자주 할게요.'

아직은 이별의 의미나 느낌을 모르는 아이는 담백하게 대답했지만 정확히 일주일 후 할머니와 얼싸안고 펑펑 울면서 택시를 탔다. 


저녁상이 차려진 후 온 가족이 둘러앉은 식탁에서 손녀에게 물을 따라주며 할머니는 또 묻는다.

'그럼 이제 미국 가면 영어 해야 하는데 할 수 있겠어?'

'(곰곰이 생각하더니) 저, 영어 잘해요!'

'그래? 그럼 그 물이 영어로 뭐야?

'이렇게 하면 돼요. (혀를 있는 힘껏 꼬부리며) 무우우우울'

'뭐? 확실해? 그럼 주전자는 뭐야?'

'쭈우우우우우울!'

'.......'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온 가족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아빠, 엄마,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들 모두 미국 갈 준비가 되었다며 웃겨서 웃는 건지 비웃음인지 모를 호탕한 웃음들을 뿜어냈다. 아이는 그저 뿌듯했다. 영어 뭐 어려운 것인가 혀만 꼬부라뜨리면 될 것을.


미국에 도착해서 아빠 차를 타고 새 집으로 가는 길 뒷좌석에 앉아서도 아이의 영어 실력 자랑은 계속되었다. 앞좌석 등받이에 매달려 아빠의 질문에 맞춰 혀만 굴리는 콩글리쉬를 뽐냈다.

'물을 영어로?' '무우우우우울!'

'주전자를 영어로?' ' 주우우우우울!, 나 잠자리도 알아'

'뭔데?' '좔암좔알위이이일'

낯선 미대륙에 도착해서 긴장감이 돌 법도 한 차 안은 아이의 천재적인(?) 영어 실력으로 웃음꽃이 피었다.


아이는 알파벳 a, b, c, d도 모르는 상태로 Pre-school, 한국으로 치면 어린이집을 들어갔다. 그때 비로소 아이는 영어가 한국어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선생님과 반 친구들의 말은 의미를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로 들렸다. 그저 눈치로 모든 수업을 따라갔다. 옆에 애가 나무를 그리면 아이도 나무를 그렸고, 점심을 먹는 시간이면 같이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잘 시간이면 같이 요를 펴고 낮잠을 잤다.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이 놀이터에 나가서 노는 틈에 아이도 함께 어울리려 노력했다. 


아이들에게 말을 걸고 싶을 때는 알 수 없는 말로 혀를 열심히 굴려서 외계어를 만들어 냈다. '아블뤠블레블롸ㅏ러재두릴아@$%^&%&%쭀$#' 나름 같이 놀고 싶다는 뜻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상한 말을 해대는 아이와 함께 놀려고 하는 친구는 없었다. 영어를 하지 못하는 아이는 자신이 한마디를 하면 표정이 굳어져 멀어져 버리는 친구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별로 상관하지 않고 그냥 놀았다. 서울 도심에서 살던 아이에게 넓은 놀이터가 있는 이 어린이집은 신기한 것 투성이었으니까. 그러다 보면 가끔 옆에 다가와 소꿉장난 정도는 같이 하는 친구는 있는 것에 만족하며 지냈다.


등원 길에 엄마는 아이를 들여보내며 담장 너머로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영어를 못하는 아이가 잘 적응을 하고는 있는지 궁금해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때 교실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있는 아이에게 갑자기 한 무리의 아이들이 '유재캣! 유재캣!' 하면서 소리치는 소리가 들린다. 영어가 서툰 엄마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가 놀림을 당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느낌이 온다. 그런 모습이 속상하지만 엄마도 지금으로선 도와줄 길이 없어서 지켜보고만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웃으면서 무덤덤히 등원을 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마음은 놓인다. 


같은 반 아이들은 'You are a Jackass' 라며 아이를 놀렸다. 멍청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문장이 들리지도 않고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아이는 그저 쟤네가 나한테 말을 걸고 싶은가보구나 정도 생각하고 오늘 하루도 어린이집에서의 눈치 싸움에 집중하며 하루를 보낸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이에게도 서서히 친구가 생기기 시작했고, 외계어를 함께 맞받아 쳐주면서 같이 놀아주는 몇몇 아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가 선생님의 말을 못 알아듣는 듯하면 손을 잡고 같이 가서 차근차근 알려주며 과제를 하였고 놀이터에서도 함께 미끄럼틀을 타며 놀기 시작했다.


그렇게 미국 생활에 적응해가기 시작한 어느 날 교실에 앉아있던 아이에게 놀랍게도 영어가 들리는 순간이 온다.

'Bring your brother or sister from the classroom next door (옆의 교실에서 자신의 형제나 자매를 데리고 오세요).'라고 하는 선생님의 설명이 귓가에 또렷이 들려왔다. 반 아이들이 일어나서 옆 반으로 이동할 때 아이는 그 자리에 앉아서 선생님을 쳐다보고 손을 저으며 말했다. '저는 언니나 오빠, 동생이 없어요.' 비록 한국말로 대답하긴 했지만 아이는 분명하게 선생님의 영어 지령을 알아들었다.


갑자기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대답을 하는 아이가 선생님은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그래도 아이의 손짓을 알아들은 선생님은 아이를 한 중국계 미국인 형제와 임의로 짝을 지어주었다. 덕분에 아이는 자신보다 조금 더 키가 큰 중국계 미국인 오빠의 손을 잡고 그날의 어린이집 활동을 마칠 수 있었다. 한번 귀와 말문이 트인 아이의 영어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향상됐다. 아침저녁으로는 'Sesame Street'과 'Barney'라고 하는 어린이 프로를 시청하며 자연스럽게 영어를 익혔고 디즈니 만화영화도 수도 없이 돌려보았다. 그렇게 아이는 낯선 미국 땅에서 언어 장벽으로 인해 기가 죽기는커녕 외계어도 마다하지 않고 부딪혀 씩씩하고 찬란한 유년기를 가족들과 보내게 된다.


30살이 된 아이는 이 유년시절의 경험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영어를 자연스럽게 익힌 덕분에 한국에 돌아온 후 모든 영어 수업은 대부분 프리패스였다. 영어로 하는 수업은 뭐든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그로 인해 고등학교도, 대학도 갔다. 심지어 한국어를 할 때도 'R'발음이 묻어 나와서 아이의 성대모사를 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넓어진 경험이었다. 한국 이 외의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찍이 알아 그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꾸준히 해외 경험을 쌓았고 지금도 영어 덕분에 밥 벌어먹고 있다. 무엇보다 어떤 낯선 환경에서도 들이 밀고 부딪혀보는 5살의 깡다구는 영원히 간직할 것이다.


영어 선생님이던 어린이 TV 쇼

이미지 출처: https://images.app.goo.gl/QLu2TY9bfjUrbfT1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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