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가방 메고 아들 메고

by 최정성

전업 주부라는 직업 외에 또 하나의 직업은 학생이었다. 육아를 시작하면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째, 나처럼 전업 주부가 되는 일이다. 단, 남자가 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나처럼 반강제가 아닌 이상. 전업 주부를 선택하는 순간 경력 단절은 불가피하다. 경력이 한번 단절되면 되돌리기가 무척 어렵다. 자신의 전문 분야로 다시 복귀하기가 무척 어렵다.


둘째, 육아를 전문 기간에 위탁하는 것이다. 경력 단절을 막을 수 있다. 또한 경제적 이득도 발생된다. 다만, 아이가 크는 모습들을 오롯하게 살필 순 없다.


이런 방법을 택하든 저런 방법을 택하든 그것은 각자의 선택이다. 또한 삶이란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한가? 각자의 가치와 상황 그리고 여건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나는 첫 번째 경우를 선택했다. 그러나 경력 단절이 주는 불이익을 최소화하고 싶었다. 경력을 유지할 순 없지만 다른 것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경력이 아닌 학력을 쌓는 것이다. 육아를 시작하면서 대학원 생활을 포기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런 선택은 경력+학력을 모두 날려 버리는 가장 최악의 선택이라 판단했다.


대학생과 달리 대학원은 출석일이 많지 않다. 전공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내 전공은 일주일에 하루만 가면 됐다. 단, 그 하루가 정말 힘들다. 09시부터 20시까지 논스톱 스트레이트 수업! 대학원 수업은 한 수업에 수강생이 많지 않다. 또 그분들이 같은 수업을 연속해서 듣다 보니 친분도 두텁다. 다행히 원우들은 아들이 수업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다. 당연히 지도 교수님도 허락을 해 주셨다. 그렇게 최연소 대학원 수업 청강생이 탄생되었다.


대학원 수업은 강의식 수업이 아니다. 보통은 세미나식 수업이다. 세미나식 수업이다 보니 때로는 열띤 토론으로 감정이 격해지기도 했다. 언성이 높아지는 일도 다반사다. 아들은 그런 수업 분위기의 멋진 중화제가 되어주었다. 언성이 높아지면 아들은 신나 했다.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아이라 그런지 어른들이 큰 소리를 내는 것을 그리 무서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놀이처럼 생각했던 모양이다. 아들은 까르륵 웃으며 소리 높이는 학우를 빤히 쳐다봤다. 흥분하던 원우는 아들을 의식해서 감정을 절제했다.


문제는 내가 발제할 때다. 아들이 유모차에 가만히 누워 있으면 다행이지만 어디 아이들이 가만히 있을 수 있는가? 아빠에게 안기고 싶어 버둥거리고 소리 지르며 울었다. 그럴 때면 다른 원우들이 아이를 앉고 달래 주었다. 공동체 육아 혹은 공동육아라는 사회적 개념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아이가 필요로 할 때, 양육자뿐 아니라 누구든 외면하지 않고 안아 주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우린 사소한 일이라도 생소한 일에 불안감을 느낀다. 나도 그렇다. 대학원 수업에 유아를 데리고 들어가는 일은 생소하고 불편한 일이다. 고민에 고민이 쌓여 결국 주저 않게 될 수도 있다. 만약 내가 ‘수업을 듣는 사람들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지도 교수님이 싫어하시면 어쩌지?’ ‘수업 중간에 아이가 소리 지르면 어쩌지?’라는 고민 때문에 휴학을 했다면 아마 지금의 나는 없을 것이다.


분명히 수업시간에 유아가 들어오는 것이 불편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수업 중간에 아이가 소리를 지르기도 수없이 했다. 그러나 그 문제들과 직면하고 돌파해나가야 할 때도 있다. 사실 이 부분을 글로 쓰는 것을 많이 고민했다.


목차를 만들 때, 이 부분을 넣었다 빼다를 반복했었다. 고민이 많았다. 타인의 삶에 참견하는 것 같기도 했고 육아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이 부분을 쓰는 것은 응원하고 싶은 사람들과 고마운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육아는 일정 부분 자기희생이 따른다. 자신의 경력을 희생해야 하고 소득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다. 나 역시 그렇다. 직업적인 부분은 포기를 해야 했다. 그러나 육아를 하면서 포기한 부분들을 만회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 나의 선택은 학위였지만 이 외에도 각자에 맞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도전은 생각보다 할 만하다. 생각보다 주변에서 호의적이다. 노키즈 존이나 육아자에게 맘충이라 부르는 혐오 분위기가 이 사회 전체의 분위기는 아니다. 때로는 내 주변의 사람들, 나의 공동체를 믿고 도전해 보자. 여전히 우리 사회는 착한 사람들이 더 많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약자를 보호하고자 한다. 여전히 우리 이웃은 당신을 사랑한다. 당신을 불편해 하는 사람들의 말 보다 당신을 사랑하는 더 많은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용기를 가지시길 바란다.


소소한 자격증 공부나 외국어 공부도 추천드린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아이가 주는 불편함을 그리 미워하지 않는다. 다만, 수강생이 적은 수업을 추천드린다. 사람이 많으면 아무래도 별난 사람을 만날 확률이 더 높다.


작은 팁이 있다면 수업 전에 사람들의 책상 위에 캔 음료수 하나씩을 올려놓자. 사람들은 이 작은 호의를 잊지 않는다. 그리고 이 작은 호의가 당신의 도전과 아이에 대한 호의적 태도로 돌아온다. 그들도 나를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으니 거기에 대해 최소한의 감사를 표현 하는 것이 좋다. 그들은 고마운 사람들이다.


육아로 인해 무언가를 포기한 당신이라면 포기한 그곳에 머물지 말고 한 번 용기를 내어 보시라. 생각보다 당신의 도전을 응원하고 이해하고 지지해 주는 이들을 많이 만나게 될 것이다. 나도 당신을 응원한다.


결국 무사히 석사 학위를 마쳤다. 그리고 지금은 박사학위를 수료한 상태다. 쉽지는 않다. 그러나 불가능은 아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아이에게도 좋은 경험이 된 듯하다. 6살 아들이 키에르케고르에 대해 묻기도 하고 답하기도 하는 것을 보면 분명 학습효과도 있는 것 같다.


아이를 온전히 사랑하자. 그러나 나 자신을 버리지 말자. 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내 인생을 사랑하자. 분명 아이도 엄마 아빠의 행복을 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