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두 마리 토끼를 잡아라

-나만의 방식으로 육아하기 2탄

by 최정성

막상 결정은 했는데 학업, 그것도 박사 학위 과정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이 양립 가능할까? 나의 선택은…….


바로 학업 그 자체를 육아에 적용하는 것이다. 응? 이게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지?라고 물음을 던질 것이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소리일 수 있다. 세 살 아이 양육에 박사 과정 교육을 적용한다니!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말이 안 될 것도 없었다.


어차피 아들의 지식은 백지다. 아들에게는 치킨이라는 말이나 존재라는 말이나 모두 처음 듣는 새로운 지식이다. 언어학적인 관점이나 교육학적인 관점에선 당연히 반론이 나올 것이다. 왜냐하면 치킨은 시각적 지시체가 있지만 존재는 추상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론을 모두 따질 여유가 없었다. 때론 걷기 전에 뛰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실험 정신도 필요한 법이다.


학기가 시작되자 읽어야 할 책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지도교수님이 요구하는 학습량은 석사 때의 그것과는 달랐다. 그러나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내가 처한 삶의 상황이다. 세 살이 된 아들은 아빠 껌딱지가 되어 떨어질 줄 모른다. 그래도 읽어야 했고 써야 했다. 상황이 이러니 해결 방법은 하나다. 껌딱지와 함께 읽는 것이다.


과제로 제시된 책들 중에서 아들과 같이 읽을 수 있는 것을 먼저 선별했다. 플라톤의 책들은 대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화의 형식이니 극화가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여기서 잠깐, 나는 아들과 라디오를 자주 들어왔다. 아들과 들었던 프로그램은 “와이파이 초한지”, “와이파이 삼국지”였다. “와이파이 초한지”와 “와이파이 삼국지”는 성우 분들이 책의 내용을 극화해서 현대적으로 표현한 프로그램이다. 아들은 극화에 익숙했다.


무턱대고 책을 읽는다면 아들이 적응했을까? 아마 3분 안에 난장판이 되었을 것이다. 아들을 위한 무대를 만들어야 했다.


더블 침대 하나, 책상 하나면 가득 차는 작은방을 무대로 만들었다. 작은방의 형광등을 껐다. 은은한 촛불 조명 하나만이 방안을 밝혔다. 아들은 조명을 참 좋아한다. 은은하게 퍼지는 조명이 신기한 듯 아들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휴대폰과 연결된 작은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아들과 나는 침대의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그리고 아빠표 낭독회가 시작되었다. 전문 성우는 아니지만 등장인물에 따라 목소리를 바꿔가며 열연을 했다. 그렇게 우린 플라톤의 국가를 함께 읽어 내려갔다.


“트라시마코스 선생, 어쩌면 그건 올바르지 못함이 서로 간에 대합과 증오 및 다툼을…….”


생각보다 낭독은 쉽지 않았다. 평소 소리 내서 읽는 것과 극화를 하는 것은 차이가 컸다. 그러나 아들의 반응은 나를 멈출 수 없게 했다.


내가 잠시 쉬기라도 하면 아들은 나를 보챘다.


“빨리빨리 읽어! 읽어!”


아들의 신나 하는 반응은 아빠를 춤추게 한다. 애드리브까지 시전 하며 아빠의 열연이 펼쳐졌다. 때로는 소크라테스가 되었다. 때로는 트라시마코스가 되었다. 스스로가 연기를 그렇게 잘하는지 몰랐다. 몰입감이 엄청났다. 아들은 내가 트라시마코스를 연기할 땐 “악당이다.”를 외치며 공격하기도 했다. 아들이 플라톤의 국가를 조금은 이해한 모양이다.


극화의 방식으로 연기하며 읽는 것은 아주 효과적인 학습법이었다. 지금도 플라톤의 국가의 내용들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물론 아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그렇게 한바탕 신나게 놀고 나면 아들은 곧 곯아떨어졌다. 아이가 잠들면 곧장 리포트를 썼다.


그렇다면 유아에게도 학습 효과가 있을까? 아들이 플라톤의 철학을 이해하고 책의 내용을 기억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학습 효과는 알 수 없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다. 학습 효과를 학습 내용을 기억하는 것에 국한해서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태교의 경우 영유아는 결국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태교를 하는 것은 영유아의 내적 세계에 영향을 준다. 유아 교육은 즉각적인 효과를 바라보면 안 된다. 효과를 바라지 않고 그저 즐겨야 한다.


아들이 플라톤을 기억하든 그렇지 않든 그것이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그 시간 아빠와 읽은 책이 너무 재미있었다는 것, 책이란 참 재미있는 것이란 사실만 각인시켜주어도 대만족이다. 이런 나의 기준으론 이 교육은 대성공이었다. 이후에도 아들과 나는 매일 저녁에 플라톤의 국가를 읽었다. 삼 년이 지난 지금도 아들은 책을 참 좋아한다. 여전히 자기 전에 두 권의 책을 읽어야만 잔다.


또 한 가지 효과는 어휘력과 논리적 사고의 상승이다. 동화책이 아닌 고전들을 함께 읽으면서 아들의 어휘력이 놀랍게 성장했다. 당연히 책을 많이 읽으면 어휘력이 상승한다. 그러나 논리력의 상승은 기대 이상이었다.


하온이는 가자미를 좋아한다. 네 살이 되었을 때, 함께 가자미를 먹으며 물었다. 가자미가 정말 맛있지 않냐고. 아들의 대답은 상당히 철학적이고 논리적이었다.


“사람은 살기 위해 잡아먹어야 해. 먹는 건 다 생명이야. 다른 생명들의 희생이 있어서 우리가 살 수 있는 거야. 그래서 난 가자미가 고마워. 그래서 맛있게 먹는 거야.”


학업과 육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불가능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양육자가 육아를 하면서 다른 일을 병행할 순 없을 것이다.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삶은 복잡하다. 그러니 “내가 했으니 당신도 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꿈을 포기하지 말자는 것이다.


육아를 하면서 만난 양육자들 중엔 아이 때문에 꿈을 포기하시는 분들이 참 많았다. 엄마로서의 나와 꿈을 이루고 싶은 내가 양립 불가능하고 생각한다.


이번 장을 쓰면서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아이와 함께 책을 읽자가 아닌 “나의 꿈을 포기하지 말자”이다. 정말 많은 엄마들이 포기한다. 그러나 포기하지 말자. 새로운 방법을 각자의 삶에서 찾아보자. 전업 육아를 하면서도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분명 있다.


또한 교육이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나의 삶을 아이에게 보여주자. 아이에게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는 삶을 아이와 함께 공유하자. 삶에 대한 태도와 노력을 아이가 배울 것이라 확신한다. 우린 행복할 자격이 충분하다! 모든 양육자들이여 꿈을 포기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