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믿고 기다리기

by 최정성

어느덧 아들은 세 살이 되었다. 이젠 제법 걷고, 말했다. 이때가 가장 예쁠 때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리고 사실이 그렇다.


세 살 전과 세 살 후의 차이는 분명하다. 소통의 영역이 세 살을 기점으로 확 늘어난다. 이것도 아이들마다의 차이가 있다. 말이 느린 아이들도 있고 더 빠른 아이들도 있다. 하온이는 일반론을 따른 편이다.


아이와 소통이 된다는 사실은 육아에 큰 기쁨이자 재미다. 그동안과는 달리 인격 대 인격의 소통이 가능해진다. 아들과 나는 이때 여행을 많이 했다. 여행이라고 해봐야 버스 여행 혹은 지하철 여행이 전부다. 그러나 이 시간은 정말 반짝반짝 빛나는 추억이 된다.


엄마를 출근 보낸 후 우린 안방에서 빈둥거리고 있었다. 막 잠에서 깬 아들 옆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것은 큰 행복이다.


막 잠에서 깨어난 아이들의 얼굴은 그야말로 천사다. 사랑스러움의 이데아라고나 할까? 잘 자고 일어나 뽀얀 얼굴로 생긋생긋 웃고 있는 아들에게 말을 걸었다.


“러블리, 잘 잤어?”


행복한 미소를 가득 담은 얼굴로 아들은 대답했다.


“응. 아빠는?”


“아빠도 잘 잤지. 아들 오늘은 무슨 꿈 꿨어?”


질문을 받은 아들은 팔을 크게 휘두르며 무언가를 표현했다.


“철컥 철컥 타고 할미 집 놀러 갔어.”


아들은 꿈나라에서 시골 할머니 집에 놀러 가는 꿈을 꾼 모양이었다. 아마도 철컥 철컥은 기차를 의미하는 것 같았다.


“기차 타고 갔었어?”


“기차? 아니, 우리 집 앞에 다니는 것 그것 타고 갔어.”


아들은 기차란 단어를 몰랐다. 아들은 지하철을 기차와 동일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여전히 온기가 가득한 이불속에서 기차와 지하철의 차이를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아들은 그 둘이 왜 다른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들, 오늘 기차 보러 갈래?”


“우와, 우리 여행가?”


“기차 보러 가는 여행이지. 얼른 일어나서 밥 먹고 바로 나가자.”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우린 기차를 보러 가기로 약속했다. 부랴부랴 아침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간단한 도시락을 준비했다. 준비를 마친 후 우린 의왕에 있는 철도 박물관으로 향했다.


아들이 세 살이 되면서 육아 가방이 한 결 가벼워졌다. 그전에는 챙겨야 할 것들이 참 많았다. 기저귀를 비롯해서 갈아 입혀야 할 옷들과 비상 간식들까지 큰 백팩이 가득 찼다. 그러나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면서 챙겨야 할 짐들이 줄어들었다.


때론 내가 챙겨야 할 짐들이 줄어드는 것이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했다. 짐이 줄어들수록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날수록 조금씩 나를 떠나는 중이라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커간다는 것은 부모의 돌봄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기에 지금 내 품에서 돌봄을 받는 아이와의 시간은 너무나 소중하다. 매일 소중한 추억을 선물해 주고 싶다.


아들과 나는 기차를 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의왕역에 내렸다. 성인에게는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이지만 세 살 된 아들에겐 무리라 생각해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탈 때면 대부분의 기사님들께서 하시는 말씀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기사님이 물었다.


“철도 박물관이라……. 아들이랑 놀러 가시나 보네.”


“네. 기차 보러 갑니다.”


“오늘 쉬는 날이신가 보네. 쉬는 날에 아기랑 놀러 가고. 좋은 아빠시네. 엄마는 어디 가고 둘이 가세요?”


아들과 둘이 택시를 타면 왜 이런 질문이 들어오는지. 일 년 전만 해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몰랐다. 구구절절 설명할 수도 없고, 무시하기도 그렇고, 아들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도 없다. 기사님은 악의 없이 말씀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겐 내 무능을 질책하는 소리로 들려 어떤 변명을 하려 했다. 삼 년 정도 지나니 이젠 그러려니 한다.


“쉬는 날이 아니라 제가 양육을 합니다. 아내는 직장 생활을 하고요.”


대답을 들으신 기사님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 무언가 큰 슬픈 이야기라도 들은 사람처럼 침통한 표정으로 침묵했다. 더 이상의 대화 없이 우린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들에게 철도 박물관은 천국이다. 입구를 통과하면 바로 기차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기차 구경도 식후경이다.


철도 박물관에는 기차 휴게실이 있다. 기차 안을 휴게 공간으로 꾸며놓은 곳이다. 우린 그곳에서 간식을 나눠먹었다. 기차 안에 식탁이 있는 것만으로 아들은 즐거워했다. 평일이라 사람이 없었다. 아들과 나는 기차를 전세 낸 듯 떠들며 놀았다.


아내의 육아 방법과 나의 육아 방법의 가장 큰 차이는 아들에 대한 통제의 정도 차이인 것 같다. 아내는 아들을 아이로 대했다. 반면, 나는 친구로 대했다. 나는 아들에게 진짜 친구가 되어주고 싶었다. 같이 호기심을 가지고, 같이 장난치고, 같이 노는 진짜 친구가 되어 주고 싶었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최소한의 예를 지켜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아이로 키워선 안 된다. 그러나 사람이 없을 땐 마치 세 살 아이 둘이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같이 웃고 떠들고 뛰기도 한다. 이때로부터 삼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지금은 여섯 살 두 명이 있는 셈이다. 여섯 살인 지금은 좀 컸다고 오히려 날 걱정해 준다.


“아빠, 공공장소에선 뛰면 안 돼요.”


“응? 그래? 몰랐네. 알았어. 조심할게. 알려줘서 고마워.”


다시 세 살로 돌아가자. 휴게실에서 열심히 놀고먹은 후 우린 본관으로 향했다. 본관은 1층과 2층으로 나뉜다. 우린 열심히 1층과 2층을 돌며 구경했다. 다만, 설명문들은 읽어 주지 않았다.


“아빠, 이건 뭐야?”


“나도 몰라. 우리 상상해보자. 하온이가 보기엔 뭔 것 같아?”


“이건 폭탄 기차!”


아들은 전시되어 있는 기차들 마다 자기만의 이름을 붙였다. 폭탄 기차, 악당 기차, 용사 기차 등등 자신만의 이름을 붙이며 나름대로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아들은 말끝에 “그렇지 않아?”라는 말을 잘 쓴다. 자신이 보고 느낀 것들을 상상력을 통해 설명하고 꼭 동의를 구한다. 만약 내가 정답을 미리 알려주고 지식 전달을 중요하게 여겼다면 아들의 상상력과 스토리텔링 능력은 성장하지 못했을 것 같다. 그리고 아이의 상상력에 정답을 알려주고 교정하려 한다면 아들은 더 이상 스스로 생각하려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스스로 생각하고 답을 찾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아이가 그 과정을 밟아 가는 것을 기다리는 것은 쉽지가 않다. 내가 겪은 육아에서 가장 힘든 부분이 바로 이 기다리는 부분이다. 기다려줘야 한다. 그런데 언제까지 기다려줘야 할까? 많은 부모님들이 이 고민을 공감하실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 철도 박물관 여행에서 답을 찾았었다. 그것은 간단했다. 답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 기다림은 아이에 대한 신뢰가 바탕되어야 한다. 스스로 기차들의 특징을 살피고 관찰하고 분석하고 이름을 붙여보고 스토리를 만들며 답을 찾기를 기다린다. 왜냐면 우리 아이가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이들은 답을 찾아낸다. 전시장에는 오래된 기차에서부터 최근의 기차까지 시간 순서에 따라 전시되어 있다. 처음에는 시간 순서와 관계없이 기차를 관찰하고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점점 시간 순서라는 것을 스스로 발견했다. 그리고 점점 기차가 뾰족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실 별 것도 아닌 발견이다. 그러나 부모 된 입장에서는 스스로 기차 모양의 변화를 발견하고 나름대로 설명하려 하는 모습이 좋았다. 사실 학문을 하는 기본자세가 이와 비슷하다.


현상을 관찰하고 나름대로 분석하고 변화를 감지하고 의미를 부여하면 하나의 이론이 탄생된다. 우리는 이론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과정이 아닌 결과물을 직접적으로 주입시켜 주면 아이는 스스로 사고하지 않는다. 아이나 어른이나 오답으로 빠지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쉽게 정답에 도달하는 방법을 알아 버리면 어려운 길로는 가지 않는다.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조금만 기다려 주자. 그것이 오답이라 할지라도 스스로 오답까지 사고하는 과정을 지켜봐 주자. 그리고 정답을 향해 스스로 갈 수 있다고 믿어 주자. 그러면 아이들은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내 아이를 내가 믿어주지 않으면 누가 믿어 주겠는가? 우리 아이들의 가능성을 믿고 기다리는 것도 육아의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아이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 아이가 스스로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 이것은 양육자만이 누릴 수 있는 아이가 주는 큰 선물이다. 이 선물을 누리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