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잠든 밤, 모처럼 아내와 둘이서 대화를 나눴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아내의 직장 생활 이야기 등 바빠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금요일 저녁엔 나누곤 했다.
“아참, 내일 나 학회 참석해야 하는 것 알지?”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온이한테 말했어? 학회 가면 뭐해? 꼭 가야 돼?”
“말했지. 그리고 그냥 앉아 있다 오는 거야. 얼굴 도장 찍으러 가는 거지. 꼭 가야 되는 건 아닌데, 그동안 너무 빠져서, 또 어르신들이 얼굴 좀 보자 하시는데 안 가기가 그렇네. 주말에 자기도 쉬어야 되는데. 미안해. 하온이 좀 부탁할게.”
아내는 애써 태연한 척을 했다. 엄마가 아들과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뭐가 미안한 일이냐며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런 아내의 마음이 고마웠다.
다음날 학회를 참석했다. 오랜만에 참여한 학회이다 보니 조금은 긴장됐다. 자리에 앉아 가방을 열었다.
‘응? 이게 왜 들어있지?’
가방 안에는 필통과 수첩 그리고 아들의 공룡 로봇이 들어있었다. 아들 녀석이 실수로 가방에 넣어 버린 모양이었다. 하온이가 분명 장난감을 찾을 텐데 잃어버린 줄 알고 슬퍼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아내에게 문자를 남겼다.
모든 발제가 끝난 후 뒤풀이를 위해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학회마다 다르겠지만 인문학의 학회는 그리 사람이 많이 모이지 않는다. 학회 하면 어렵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학회는 일종의 동호회의 오프모임과 비슷하다. 관심 분야가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자기가 연구한 것들을 이야기하고 나눈다. 또 같이 밥을 먹으면서 친목을 도모한다.
“최 선생, 얼굴 보기가 힘드네. 많이 바빠? 요즘 무슨 일 해?”
선생님들의 질문에 당당하게 답했다.
“육아합니다.”
“아 그래? 요즘 육아 휴직하고 애 보는 남자들이 있더구먼.”
“아니요. 직장 생활은 안 하고 육아만 합니다.”
“그동안 애 본다고 못 나왔구먼. 그걸 전업주부라고 해야 되나? 뭐라고 표현하나? 그리고 애는 엄마가 봐야 잘 크지 않아? 남자가 그게 되나?”
그러자 주변에서도 너도 나도 한 마디씩 거들었다.
“남자가 일을 해야지.”
“아기한테 안 좋은 것 아니야?”
나는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목소리로 답했다.
“아빠도 부모잖아요. 그리고 그냥 아빠라고 하시면 되지 않을까요? 전업주부 같은 표현 말고요.”
1초의 침묵이 흐른 후 다들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아마도 그들이 생각하는 아빠와 내가 생각하는 아빠는 다른 개념인 모양이다.
사실 남자의 육아를 한 단어로 표현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육아 맘이라는 표현은 익숙해도 육아 대디라는 표현은 어색하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여성의 경우 워킹 맘이라는 단어가 있다. 워킹 맘이라는 단어 자체가 여성이 사회 활동 혹은 경제 활동을 하는 것은 설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엄마들이 많아짐으로 워킹 맘이라는 단어는 익숙해졌다. 반대로 워킹 대디라는 단어는 사용조차 하지 않는다. 이유는 아빠가 경제 활동을 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리라. 육아 대디라는 표현이 없는 것도 같은 경우라 생각한다. 그러나 아빠도 부모다. 부모 중 한 사람이 육아를 전담하는 것에 꼭 수식어가 필요할까? 엄마가 직장을 가는 것이 특수한 일이 아닌 듯 아빠가 육아를 전담하는 것도 특수한 일이 아닌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난 육아 대디가 아니라 저스트 대디이길 원한다.
뒤풀이가 끝난 후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들과 둘만의 시간을 잘 보냈는지 궁금했다. 다행히 아내와 아들은 그럭저럭 잘 지낸 모양이었다.
“그런데 남편, 하온이가 공룡 로봇 자기가 아빠 가방에 넣어 준거래.”
“공룡 로봇을 왜?”
“잠시만, 하온이가 바꿔달래.”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언제 와요?”
“이제 출발해요.”
“그래요? 아빠, 스피노 내가 넣었어. 스피노가 젤 쎄! 다 이겨. 아빠 지켜 했어. 빨리 와. 보고 싶어.”
고마웠다. 아들은 나의 감정들을 읽고 있었다. 오랜만에 학회를 나가는 마음, 사람들이 물어볼 근황 등 불편한 나의 마음을 아들이 공유하고 있었다. 나만이 아들을 지켜주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들도 나를 돌봐주고 지켜주고 있었다.
내가 아빠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양육을 전담한다는 것은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가장 멋진 일이고 행복한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천사와 하루 종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 중의 축복이다. 그래서 난 아빠인 것이 너무 좋다.
“응. 고마워. 하온이 덕분에 잘 있었어. 아빠 금방 갈게. 보고 싶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