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전담 의료진이 코로나 검사받은 이야기
코로나 전담 병동의 전담 의료진으로 일한 지 두 달이 조금 넘은 어느 날, 밤 당직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콧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워낙에 만성 알레르기 비염과 만성 부비동염 환자인 터라, 환절기 코감기 정도는 늘 있는 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었다. 지난 두 달간 콧물이 흐르거나, 목이 칼칼하거나, 두통을 동반한 몸살감기 증상이 몇 번 있었지만, 하루 이틀 사이에 괜찮아지곤 했었다. 오히려 마스크와 손 위생 덕분인지, 매년 한 번은 겪는 심한 감기 없이 봄을 지나쳐 가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나서 몸이 슬슬 아프고, 살짝 오한이 나고, 목이 부은 듯이 아프기 시작한다. 체온을 재 보니 36.2도로 괜찮은데, 집에 있는 체온계를 도통 믿을 수가 없다. 아내는 출근했지만, 오늘 내일 오프인 나는 온라인 개학 중인 아들과 함께 있다. 집에 있는 약을 먹었는데, 근육통이 오히려 심해치는 것 같다. 예전에 앓았던 인플루엔자와 증상이 비슷하다.
코로나-19의 처음 증상은 다양하다. 아무 증상이 없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기침, 인후통과 같은 호흡기 증상이나, 두통, 근육통과 같은 전신 증상이 있다. 그중 일부는 냄새가 나지 않거나, 맛이 느껴지지 않는 증상을 함께 호소한다.
일단 집에서 수건과 물컵을 격리했다. 나만 쓰는 수건은 높은 선반에 걸어두고, 하나만 있는 크리스털 컵을 독점해서 쓰기로 했다. 온라인 학습을 마친 아들에게 점심을 챙겨주고(이걸 안 할 수는 없다) 차를 몰고 병원으로 갔다. 보통은 지하주차장에서 바로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데, 오늘은 일하러 온 것이 아니라서, 실외로 나가는 계단을 이용해서, 정문 밖에 있는 호흡기안심진료소로 갔다. 진료하시는 과장님은 왜 왔냐며 놀라지만, 늘 일하는 간호사와 방사선사는 직원들 많이 검사받으러 오는데 다 괜찮았다며 나를 안심시킨다.
만약 내가 코로나-19로 확진이 되면, 우리 병원 전담 의료진(감염관리실장을 포함해서 감염내과 전문의 3인이 모두 다 최근 밀접접촉자였다) 전체가 자가격리에 들어가던지, 아니면 병원을 폐쇄하고 코호트 격리를 해야 한다. 실제로 최근 몇몇 대형 병원들이 이렇게 폐쇄가 됐었다. 그런데, 우리 병원은 서울시에서 가장 많은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만약 내가 걸렸다면 어디서 걸렸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전염될 만한 곳이 없다. 병원에서 일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오고, 보통은 저녁때 산책 정도를 하거나, 사람 많은 곳은 잘 가지를 않는다. 사람들은 코로나-19 병동이 위험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불특정 다수와 접촉하는 게 더 위험해 보였다. 동네 빵집에 들렀다가, 사람이 많아서 바로 나오기도 했고, 카페에서는 항상 take out을 했다.
코로나-19 병동을 출입하는 절차는 매우 복잡하다. 먼저 N95 마스크와 고글을 포함한 level D 옷차림을 한다. 터미널 역할을 하는 7층에서 엘리베이터 요청을 하면 전용 엘리베이터를 열어준다. 각 병동에 있는 음압격리병실에서 볼 일을 마치면 다시 엘리베이터 요청을 해서 다른 엘리베이터로 내려온다. 내려오면 별도의 음압 처리가 된 탈의실에 들어가서 특별한 방법으로 옷을 벗는다. 감염관리실에서는 정확한 방법으로 옷(개인보호용구, PPE)을 벗는지 CCTV로 확인하고 있다. 마스크와 고글을 벗고, 손과 신발을 소독하고 다음 방으로 건너가면 샤워실이 있다. 샤워실에서 수술복을 벗고, 비누로 손과 얼굴을 먼저 씻고, 샤워를 마친 다음에 새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나와서 다른 문을 지나면 상황실에 다시 도착한다. 상황실에서 새 마스크를 받아서 착용하면 이 복잡한 과정이 끝난다.
가장 최근에 병동에 다녀왔을 때 절차 위반은 없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바로 직전 근무 때는 병동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병동 출입은 다른 동료 의사가 하고, 나는 상황실에서 처방과 전화 상담을 주로 했었다.
인플루엔자 검사(항원-항체 검사로 30분이면 검사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와 흉부 엑스선 검사(코로나 관련한 엑스선 검사는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최우선으로 판독을 해준다) 결과를 보고,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코로나-19에 대한 PCR 검사는 다음날 결과를 확인할 수 있고 문자메시지로 결과를 보내준다.
인플루엔자 검사는 음성, 흉부 엑스선 검사 결과는 기관지염 소견이다. 보통은 좋은 결과다. 폐렴도 아니고 독감도 아니니까. 그런데 코로나-19 상황에서는 좀 다르다. 많은 코로나-19 환자들이 흉부 엑스선 검사에서 보통 기관지염 소견을 보이고, 전신 근육통이 있는데 독감이 아니라니, 코로나-19 가능성이 그만큼 더 올라간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 아내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다짜고짜 짜증를 낸다. 만약 양성이 나오면 우리 병원뿐만 아니라, 아내도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어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아내 직장도 마비가 된다고 한다. (아내는 직장에서 코로나-19 방역 담당자이다) 초등학생 아들은 코를 찔러서 하는 검사를 받을까 봐서 걱정을 한다.(비인두강 비말 검사-nasopharyngeal swab) 그날 밤은 집에서 자가격리를 당했고, 다음날이 왔다.
이 날은 토요일이어서 검사 결과가 오후에 나온다고 한다. 선별진료소에서 환자에게 교육한 대로, 결과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돌아다니지 않고 집에만 있기로 했는데, 걱정도 되고 좀이 쑤신다. 옆에서 아내는 목이 아프기 시작한다고 약을 찾는다. 나는 약발이 좀 듣는지, 오한은 사라지고, 아픈 것도 조금은 덜하다. 다들 바쁜 줄 알지만, 진단검사의학과 과장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빨리 좀 알려달라고. 하지만 생쌀을 불려 먹는다고 밥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반가운 메시지가 왔다. 진단검사의학과 과장이 친히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약이 듣는 것인지, 마음의 병이 동반되었던 건지, 이제 몸도 덜 아프다. 아내는 아이 옷 사러 나가자고 한다. 편안한 마음으로 감염관리실장에게 "음성" 이렇게 두 글자 메시지를 보냈더니 바로 전화가 온다. 내심 걱정스러우셨을 게다. 걱정 마시라고, 내일 정상 출근하겠다고 이렇게 이야기를 마치고 새로 산 공적 마스크를 착용하고 밖으로 나갔다.
이번 코로나 검사는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3월 2일 아침에 받았었다. 2월 마지막 주에 외국을 다녀와서 첫 외래 진료 전에 검사를 받으라고 권고를 받고, 음성 결과를 확인하고 정상적으로 진료를 했었다. 그때는 코로나-19 전담 의료진도 아니었고, 딱히 접촉력도 없었고, 한국에서는 "대구"와 "신천지"만 문제라고 생각했던 터라 그리 큰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두 달 넘도록 코로나-19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이 병이 얼마나 개인의 삶을 변화시키는지 목격하고, 간접 체험하면서 두려움이 커졌다. 병원들이 하나 둘 폐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겪었고, 이중에는 우리 병원과 아주 가까운 곳, 한국에서 가장 큰 병원 중 한 곳도 있었다. 어찌 보면 아직까지 우리 병원 직원들이 안전하고, 나와 내 가족이 안전했던 것은 운이 좋아서였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