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근 갔다 돌아오던 길
지하철 역사로 들어가는데
엄마와 딸의 다툼 소리가 들린다.
10대로 보이는 딸이
날 선 말들을 쏟아낸다.
‘해결됐지 않냐’, ‘그럼 됐지 않냐’는 엄마의 말에도
딸의 날 선 말들은 멈추지 않는다.
스무 살 때, 첫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에서
정장을 입어야 했다.
생각해 보면, 유니폼을 왜 지급하지 않고
각자 준비해 오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첫 경제활동을 하는 딸이 기특했는지
엄마는 검정 바지와 재킷을 사주겠다며
옷집으로 향했다.
몇 곳의 옷집엘 들어갔고
마침에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했다.
검정 바지에 하얀 블라우스
점원은 검은 재킷과 벨트도 권했다.
감수성 풍부한 엄마는
이제 갓 학교를 졸업한 딸의 정장 입은 모습을 보며
‘기분이 이상하다’며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런데 그 감동도 잠시,
가격표를 확인하던 엄마의 표정이 굳어갔다.
‘재킷은 얼마예요?’ ‘벨트는 얼마예요?’ ‘이건 좀 비싸네’ ‘좀 깎아주면 안 되나?’
그때 알았다. 이 옷들을 다 살 수 없겠구나.
비싼 가격에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던 엄마는
계산대에서 벨트를 빼더니, 재킷도 뺐다.
친절했던 점원의 태도도 엄마가 물건을 하나, 둘 뺄 때마다 싸늘해졌다.
나는 그 상황이 너무 불편하고 자존심이 상했다.
내 손엔 바지와 블라우스가 든 쇼핑백이 들렸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입이 어디까지 나와 짜증을 내는 나를 본 엄마는
‘그냥 저거 다 할래?’ ‘다시 가자’며 달랬지만
나는 여전히 툴툴거리며 엄마보다 앞서 걸었다.
그날, 지하철 역사에서 20여 년도 더 넘은 그날의 일이 떠올랐다.
엄마 속이 얼마나 상했을까.
그 옷이 뭐라고, 그거 안 사준다고
못 사주는 엄마 속을 그리도 긁어댔을까.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그때 미안했다고. 너무 철딱서니가 없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마저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자식이 뭐라고 그 엄마는, 그리고 나의 엄마는
잘못한 것 하나 없이 쭈글이가 돼야 했을까.
오늘은 엄마에게 말해야겠다.
그때의 그 일을 기억하느냐고 물어봐야겠다.
그리고 철딱서니 없이 굴어 미안했다고.
꼭 사과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