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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침잠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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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항녀 Jul 05. 2024

생리(生理)

생물체의 생물학적 기능과 작용. 또는 그 원리.

출퇴근길 매일 보던 국밥집이 있다. 국밥을 좋아하지만 어째선지 쉽사리 들어가지지 않는다. 가끔 배가

정말 고플 때 잠깐 고민은 하지만 집이 코 앞인지라 집 밥을 먹으면 된다는 생각에 참으며 지나친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지나친다.


몇 개월이 흐르자 인식이 안될 정도의 길거리 풍경이 되어 있었다. 항상 퇴근길을 밝혀주는 당연한 가로등처럼.


어느 날, 풍경에 이질감이 들어 자세히 보니 국밥집이 간판이 사라져 있었다. 캄캄한 식당 안을 보니 집기류들도 다 꺼져있었다. 그리고 국밥냄새도 풍기지 않았다.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국밥냄새를 맡지 않고 집을 들어가자 허기도 덜했다.


어두워진 한쪽 풍경이 며칠이 지나자 새 간판을 달고 불이 켜져 있었다. 생선구이 백반집.


아직 영업 시작을 안 했는지 생선 비린내는 나지 않았고 안에서 사장님과 아내로 보이는 사람들이 식탁을 닦고 카운터 앞을 정돈하고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그 둘이서 의논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내용은 들리지 않았다.


‘이번 식당은 꼭 가서 먹어보자!’하고 다짐을 했다. 괜히 맛 한번 보지 못하고 냄새 동냥만 했던 국밥집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나 보다.


며칠이 지나자 퇴근길에 생선구이 백반집에 손님 몇 명이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집 가던 길을 잘라먹고 식당으로 들어가 11,000원짜리 백반을 주문했다. 고등어구이와 어묵무침, 김치, 콩나물 국 등. 흔히 알고 있는 생선구이 백반이었다. 맛있었다.


“잘 먹었습니다.”

“다음에 또 오세요.”


상투적인 인사를 주고받으며 식당을 나서 집으로 향했다. 다시 국밥집이 떠올랐다. 국밥집과 다르게 이 식당에서 매일 저녁을 먹는다면 영원히 이 자리에 있어줄까?


나조차도 영원하지 못하는데 식당을 걱정하고 있다니. 웃음이 났다.


익숙하다 사라지니 풍경일 뿐이었던 식당조차도 아쉽다. 풍경이 아닌 내 삶에 들어온 사람들도 언젠가 보낼 때가 올 텐데 조금 두렵기도 하고.


영원한 무언가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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