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물 틀어놓은 싱크대 위에 얹어진 도마 위의 자르기 직전 애호박 같은 기분이다.
언젠지 된장찌개를 끓이기 위해 저런 상태로 애호박을 도마 위에 둔 적이 있다. 잠깐이었는데 애호박이 도마와 함께 싱크대로 빠지거나 도마 위에서 굴러 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느낌이 들었다.
왜인지 오늘 책을 읽다 내가 그런 상태라고 느껴졌다.
어느 한쪽을 칼로 날려버리면 구를 일이 없을 텐데 그 직전.
요즘 나는 단기적인 미래만 생각하며 살고 있는데 며칠 전부터 계속 장기적인 미래를 생각하게 된다.
아무래도 그래서 그런 것 같다.
다시 제자리에 선 기분.
많이 이겨냈다고 생각했는데 어쩜 처음 시작보다도 다시 시작하는 게 더 두려운 것 같은 때.
무언가를 시작했을 때 고통을 알기에 어쩌면 이번 시작에는 다를 수도 있지만 그 고통일 것이라 믿고 두려워하는 순간.
그 순간이다.
애호박이 곧 잘릴 예정이니 칼을 씻는 그 잠시만 견디면 된다.
오호 글을 쓰다 보니 깨달았다.
그래! 칼을 얼른 씻자. 그리고 어느 방향이든, 가로든 세로든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썰어버리자.
+ 요즘 싱숭생숭을 숭생싱숭으로 계속 말하고 싶다.
저는 숭생싱숭합니다.
+표지 그림을 위해 고생해 주신 김*현 님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