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챙기쇼
어릴 때 티비에서 봤던 트루먼쇼.
그걸 본 게 중학교 1학년이었던가..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 나지만 한참 자아가 발달하고 이성에 관심도 생각하고 죽음에 대해 고뇌하던 시기였다.
지금도 온갖 몽상, 망상(피해망상은 없음), 쓸데없는 호기심이 많은데 그 당시는 뭣도 모르는 나이였기에 더 했다.
지금이라고 뭣을 아냐 하실 수도 있지만 그래도 조금 더 알겠지. 나이를 두배로 먹었는디.
아무튼 우연찮게 본 트루먼쇼 영화가 나에게 큰 고통을 주었다.
혹시나 트루먼쇼를 안 보신 분들을 위해 내용을 정말 간단히 설명드리자면, 트루먼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모든 것은 갇힌 세상 속 조작된 환경에서 살아가며 일상생활이 방송으로 송출된다.
그래서 어떤 관계의 사람이든 상황이든 방송사의 의지대로 흘러간다.
이런 내용인데 중학교 때 이걸 내가 봤으니..
아침에 거울을 보면서 거울 뒤에 카메라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부터 세수, 양치를 하고 거울을 보는 것이 너무 불편했다. 그래서 눈을 깔았다. (역시 삥 뜯길만 하다.)
그리고 친구들과 한참 화장품에 관심이 갈 때라 서로 화장품을 자랑하고는 했는데 PPL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당시에 PPL이라는 단어는 몰랐다. 그냥 선전)
엘리베이터를 혼자 타면 카메라에 말하듯이 말을 하곤 했다.
“나, 다 안다고. 나오라고. 찍지 말라고. ”
그때 우리 집이 25층이었는데 고속엘리베이터가 아니었기에 꽤 오랜 시간 혼자 거울과 싸운 것 같다.
층이 좀 더 낮았다면 그럴 시간에 공부를 더 했으려나.
잘 때도 불안했다. 어떻게 자야 하지.
내가 좋아하는 그 남자애가 코 고는 장면을 보고 실망하면 어쩌지.
나는 비염이 심했기 때문에 더 걱정이 됐다.
그러던 어느 날 매일매일 카메라를 의식하던 나는 결국 지쳐버리고 말았다.
어린 나이에 ‘리얼일상프로그램‘을 찍혀야 하는데 힘들지 않을 리가..
그래서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결국 울고 말았다.
그리고 찍을 테면 찍어봐라 마음으로 바뀌었고 그 후로 점차 카메라에 익숙해져 갔다. (사실 잊어갔다.)
나는 사실 지금도 지인이 어떤 물건을 소개해줄 때 혹시 피피엘이냐며, 트루먼쇼냐고 얘길 하곤 한다.
농담이지만 혹시 모르니 내가 눈치를 챘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
편의점에 있는 ‘당근당근’ 쭈쭈바를 보며 또 트루먼쇼가 아닐까, 아니 반항녀쇼?라는 생각이 들어 글을 써본다.
”어떻게 내가 당근을 좋아하는 걸 알고 또 당근 쭈쭈바를 만들었대ㅡㅡ“ 하며 일어나자마자 출근 전 아침 7시부터 당근당근을 먹었다.
혹시 내 이름으로 된 쇼라면 지금의 나는 그걸 왕창 이용해 먹어야겠다.
너무 좋은데? 나는 관종이거든.
그 대신 출연료는 좀 줘라.
통장 잔고도 확인가능하잖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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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챘는가?
사실은 내 경험이 아니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에게 힌트를 주고 있다.
내가 다음 주에 연재를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감독님한테 끌려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