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온 것과 가지고 온 것

by 반항녀

2주간의 네덜란드 여행이 끝났다.


오기 전의 걱정과 달리 무서울 것도 없었고, 힘든 일도 없었던 행복한 여행이었다.

그래서인지, 남겨두고 가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올 때 내가 가져왔던 건 뭐였을까.

오징어젓갈, 명란젓… 지우가 주문한 물건들…


그런 것들을 먼 타국에 두고 홀로 돌아가려니 괜히 마음이 아프다.


…는 장난이고.


크흠. 큼. 다시 진지하게.


지우와 나는 서로의 감정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자주 나눈다.

서로 힘들던 시절,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부터

어떻게 이겨낼지, 우리가 서로에게 어떻게 보이는지까지.

(아, 또 지우 얘긴가…)


그래서일까.

전 세계에서 어쩌면 지우를 두세 번째쯤으로 잘 아는 사람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나와 비슷한 사람.

공허함을 느낄 줄 아는 사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하지.

지우의 일상에 잠시 발을 들였다가 빠져나오는 게,

무엇보다 마음이 아팠다.


이틀쯤 괜히 네덜란드에 온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자의식 과잉일까 싶지만, 나와 닮은 성정을 지닌 사람이라 더 오바해본다.


그래서일까.

괜히 빈자리를 남겨두고 가는 기분이 들어 마음이 아프다.


오늘 아침, 지우가 ‘Emptiness’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왠지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수많은 책을 읽으며 배운 것.

슬퍼하기보다 감사하라, 행복하라.

그래서 내 빈자리를 아쉬워해줄 친구가 있음에 감사하고, 그 사실에 행복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런 친구 있다고 너무 자랑했나?)


그리고 잔잔하게 정든 로테르담 시내와 알렉산더.

정확한 동네 이름은 모르겠지만 뭐 어떤가.

혼자서도, 지우와 함께서도 걸었던 그 거리들을 남겨두고 온 기분이다.


출발 전, 내 삶이 트루먼쇼가 아닌가 하며

비행기라 불리는 통 속에 14시간 동안 갇혀 흔들리고,

밥과 음료를 받아 먹고 나면 다시 세상에 내려놓이는 게 아닌가 농담처럼 말했는데,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트루먼쇼인 걸 알아챘지만, 연기는 계속해줄 테니 왔다 갔다 하는 시간만 조금 줄여달라고 말하고 싶다.


“애니 바디 데얼?” (하늘을 보며 말한다.)

쉽게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기에, 언젠가 네덜란드 거리의 냄새가 그리워질 때면 빨리 다녀오려고.


이거 혹시 유럽병인가.


뭔 2주 동안 여행 갔다 왔다고 주책이냐 할 수 있겠지만, 그만큼 정이 쉽게 드는 사람이라 안타깝게 봐주길 바란다.


프랭크, 찬이, 라쎄, 쎕쎕이•••

제일 많이 들렀던 알버트하인(체인 슈퍼마켓).

하나같이 좋았고,

중간중간 만난 친절한 네덜란드 사람들도 다 기억에 남는다.


여행 첫날, 기분 좋은 시작을 도와주셨던 기차 승무원분까지.


다시 생각해보니 정만 잔뜩 두고 온 것 같다.

역시 나는 한국인이 맞나 보다.


두고 온 만큼 배운 것도 많다.


혼자 로테르담에서 두 시간 떨어진 볼렌담에

‘치즈 아줌마’ 사진을 찍으러 다녀오기도 하고,

자잘하게 시내를 혼자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사 먹으며 느낀 자신감.


네덜란드의 치안이 좋아서 가능했을지도 모르지만,

첫 경험이 중요하다고들 하지 않나.

이젠 유럽 어디를 가도 자신 있게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프랑스는 조금 어렵겠지만.)


그리고 친구에게 신세를 지는 법.

지우 덕분인지 이렇게 편하게 신세를 진 적은 처음이었다.

많이 받으면서도 감사한 마음을 온전히 느꼈고,

그걸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

그래,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인종차별 한 번 안 당했고, 소매치기도 없었고,

잃어버리거나 빼먹은 물건 하나 없이 무사히 여행을 마쳤다.


아무튼, 이 모든 걸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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