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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항녀 May 24. 2024

첫 재판과 그의 부모

5.23.(금)

오늘 첫 재판이 있었다.


이로써 이제 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시작해보려고 한다.


기-승-전-결에서 ‘승’부터 시작하는 느낌이랄까.


좋으신 변호사님과 여성센터에서 나의 불안정할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와주신 상담사님과 함께 재판장으로 들어갔다.


101호 재판장.


재판장 앞에서 일행을 기다리며 행여 가해자를 마주칠까 너무 두려워 재판장 앞에 근무하시는 분께 가해자의 출입통로를 물어보았다.


다행히 가해자는 법정의 뒷문으로 출입한다고 한다.


긴장이 되어 신경안정제를 물도 없이 3알을 먹었다.


일행 분들이 오시고 사건에 대한 첫 재판이 시작되기 직전이라 입장을 했다.


재판장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수많은 범죄 사건에 대해 마치 경매를 하듯이 속전속결로 검찰과 피고인의 의견을 간단히 나누고 사건들이 넘어갔다.


내 사건의 차례가 왔다.


그가 들어오기 직전 나는 신경안정제 몇 알을 더 삼켰다.


물 없이 약을 삼키는 것에 이제 익숙해져 속이 쓰릴 틈도 없었다.


근 1년간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던 가해자.

그리고 내 과거 직장 상사.


그는 갈색 죄수복을 입고 있었다.


그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 괴로웠다.


그가 그 옷을 입고 있는 것의 근본적인 이유는 그의 범죄사실 때문이지만 내가 신고를 했기 때문에 그가 그 옷을 입게 되었으니.


타인의 삶에 결국 나는 개입을 하게 되었다.


물론 그가 내 삶을 망쳐놓았기에 나는 어찌할 도리가 없이 나와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한 선택이었다.


검사님께서 그의 범죄사실을 읊으셨다.


그리고 가해자 측 변호사는 불인정하는 기소사안에 대해 읊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상황이라 다행히 큰 충격은 없었다.


빠르게 첫 재판이 종료되었다.  


그리고 변호사님과 재판장 문을 나서서 그 앞에서 오늘 재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그 가해자의 부모가 뒤따라 나왔다.


웃고 있는 가해자의 변호사와 나를 보고도 일말의 사과조차 않는 가해자의 부모.


어찌 어느 자식의 부모 된 도리로서 다른 자식의 고통을 외면하고 도의적인 사과조차 하지 않을까 싶더라.


오히려 고마웠다.


사과조차 않고 뻣뻣히 고개를 들고 변호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그 모습에 싸울 힘을 얻었다고나 할까.


그래 고맙다. 아들자식 범죄자로 키워놓고 반성조차 안 하는 그들, 나에게 싸울 힘을 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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