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중입니다.
좀 아픈 9월이었습니다. 시간의 무게에 짓눌려 납작해진 상태로 누워 있는 날이 많았습니다. 나이에 비해 건강을 위한 노력이 너무 미비해서 자연스레 저질체력이 되고 만 것이죠. 그나마 몸에 큰 이상은 없다는 검사 결과가 다행이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덧 9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올해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왠지 오싹해지네요. 무심한 표정으로 지나가는 시간의 뒷모습이 서늘하고 날카롭게 느껴집니다.
죽음의 자리에서 태어난 한 소녀가 있습니다. 숲의 소녀는 아직 알지 못하는 어떤 것들을 궁금해하며 낮이 밤으로 변해가는 풍경을 바라봅니다. 이끼 숲에 찾아오는 세 번의 밤을 보낸 소녀는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합니다.
크나큰 나무들의 숲을 지나고 꽃길을 걸으며 길의 끝에서 비를 만난 소녀는 흩어지고 스며들어 사라집니다. 그런데 소녀는 아직 거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묘한 말을 남깁니다.
"먼저 가서 기다릴게."
그림책 '버섯 소녀'는 사라짐의 신비와 경이를 고요하면서도 몽환적으로 그려냅니다. 사라짐을 삶과의 단절이 아닌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으로 묘사하며 그 세계에 색채를 입히고 풍경을 그리며 이야기를 지속시켜 갑니다. 두려움이 아닌 아늑함을 불러일으키는 사라짐이 낯설고 모호하면서도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사라짐은 자연의 이치입니다.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과정이죠. 그럼에도 우리들 대부분은 이 사라짐을 외면하거나 사라지지 않으려 저항합니다. 마치 영원히 존재할 것처럼요.
1. 너 혼자 올 수 있겠니
2. 너 혼자 올라올 수 있겠니
3. 너 혼자 여기까지 올 수 있겠니
......
나는 삼십 센티미터의 눈금을 들고, 또 나는 사십 센티미터의 눈금을 들고, 또 나는 줄자를 들고 홀로 오는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
_ 너 혼자, 박상순
버섯 소녀가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습니다. 혼자 올 수 있는지 혼자여도 괜찮은지.
나의 사라짐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버섯 소녀 덕분에 조금은 편안하고 친근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나와 함께 사라져 가는 이들이 있어 많이 외롭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나를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에게 닿을 때까지 매일의 사라짐을 잘 살아내야겠습니다.
"나 혼자 아니야. 잘 갈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