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만화를 좋아했다. 동화책을 읽는 것보다 TV로 만화 보는 것을 더 좋아했다. 아침잠이 많았지만 일요일 아침만 되면 꼭 일어나 '디즈니 만화 동산'을 봤다. 지금 부모님 세대들이 '미스터 트롯'에 열광하는 것처럼 당시 아이들은 이 프로그램에 열광했다. 여기에 많은 캐릭터들이 나온다. 그중 피터팬은 나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해 준 만화였다. 어른이 되기보단 죽을 때까지 아이로 남고 싶었다. 평생 만화만 보면서 시간이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때는 가능할 줄 알았다. 나이를 먹다 보니 그렇게 된다는 것은 "절대 이뤄질 수 없는 이상향"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국의 임상 심리학자 댄 카일리(DanKiley, 1983)는 몸은 어른이지만 어른의 세계에 끼지 못하는 ‘어른 아이’가 늘어나는 사회 현상을 반영해 ‘피터팬 증후군(PeterPansyndrome)’이라 말했다.
피터팬은 몸은 다 컸지만 마음은 유약하고 덜 성숙했으며 순진하고 현실도피적인 캐릭터이다. 책임감이 없고 타인이 자신에게 거는 기대의 무게를 견뎌내지 못했다.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결코 하지 않은 캐릭터다. 카일리는 1970년대 후반부터 여권 신장과 경기 침체로 인해 상대적으로 남성들의 사회ㆍ정치적 힘이 약해지면서 여성들에게 의존적인 모습을 보이는 남성들이 증가하자 "피터팬 신드롬(증후군)"을 이야기했다. 오늘날 이 개념은 성별에 상관없이 지나치게 타인에게 의존적인 사람의 모습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1997년 말 우리나라는'IMF 외환위기 사태'를 겪게 된다. 당시 20대에 속한 사람들 중어른이 되었지만 경제적인 부분을 부모들에게 의존하는 사람이 많았다. 대학교를 졸업해 사회에 나가야 했지만 휴학, 유학, 대학원 진학 등을 이유로 등록금과 용돈을 받으면서 생활했다. 사회 진출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함께 사는 자녀들이 많이 생겼다.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캥거루족"이라부른다.이땐 중학생이었고내게 있어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캥거루족은 성인이 되어도 경제적인 여유가 되지 않아 부모님과 여전히 동거하는 청년들을 일컫는 말이다. 현재까지도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취업하여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이후 분가를 하거나 결혼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취업에 성공하지 못한 청년들은 여전히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캥거루족'이 된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비유하는 용어만 다를 뿐 가까운 일본, 중국을 포함하여, 미국, 영국 등 유럽 등에서도 비슷한 말이 존재한다. 일본은 돈이 급할 때만 임시로 취업을 할 뿐 정규 취업을 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프리터(freeter), 중국은 빈둥거리며 부모를 등쳐 먹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컨라오족', 미국은 대학 졸업 후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해 결혼도 미룬 채 부모 집에 얹혀사는 세대를 이도 저도 아닌, 중간에 낀 세대라 하여 트윅스터(twixter), 영국은 부모의 퇴직 연금을 축낸다고 하여 키퍼스(kippers), 독일은 네스트호커(Nesthocker), 프랑스는 탕기(Tanguy), 이탈리아는 맘모네(mammone)라고 부른다.타인에게 의존적인 ‘어른 아이’를 가리키는 용어들은 경기 침체와 높은 실업률에 영향을 받는다.
10년 후 대학교를 졸업했고 취직하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캥거루족이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졸업 후 스펙이 별로 없어 2년 동안 취직이 되지 않았다. 공부를 하면서 틈틈이 부모님 일을 도와드렸고, 그 사이 부모님에게 의존하기 시작했다.2년간 스포츠 자격시험을 준비했고 두 번(일 년에 한 번 치는 국가고시임) 다 떨어졌다. "눈치가 너무 보였고 아무 곳이라도 들어가자는 심정"으로 일을 구했다. 이때부터 계약직 인생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직장은 공항 화물 검색팀(계약직)
열심히 하였지만 답답했다. 업무가 단순해 일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스포츠 분야에 취직하는 것을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해 그만두었다. 자격증 시험을 마지막으로 쳐보고 안되면 정말 포기하려고 했다. 다행히 시험에 붙었고 스포츠 분야에 일자리를 알아봤다. 운 좋게 다음 해 취직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직장은 스포츠 매니지먼트 회사(계약직)
부산을 떠나 서울에서 생활했고 처음으로 타향살이를 경험했다. 부모님으로부터 해방되어 몇 달은 좋았다. 학교에서 배운 것은 회사 업무에 아무 런 도움이 못됐다. 축구와 관련된 업무를 할 줄 알았다. 전혀 다른 쪽 일을 했다. 그렇지만 새롭게 배우며 적응했다.
잘 적응할 줄 알았지만 우울한 감정과 업무 스트레스 때문에 의지력이 약해졌다. 엎치고 덮친 격으로 또다시 업무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내가 하고자 했던 일을 배우지 못했고 감정도 제어하지 못했다.
그래도 맡은 일을 열심히 잘해 계약이 끝날 때쯤 정직원이 될 수 있었다.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정직원이 될 수 있었지만그러지 못하고 집에 돌아왔다. 그땐 의지력과 자립심이 많이 약했다. 조금 후회되는 선택을 했다. 부산에 내려와 다시 축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축구 구단에 지원했지만 나이와 경험이 부족해 일을 구하지 못했다. 축구 분야에 취직하는 것이 어려워 포기했다.
세 번째 직장은 항만 보안팀(계약직)
주ㆍ야간으로 일했지만 일한 만큼 월급을 받지 못했다. 여기서 짧게 일을 하다 돈과 시간적인 면이 조금 더 괜찮은 곳으로 옮겼다.
네 번째 직장은 버스를 생산하는 회사(계약직)
대형 버스를 만드는 라인에서 일을 했다. 연장 다루는 게 서툴렀고 스피드 있게 일을 끝내야 했기 때문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초반 3개월은 욕을 먹어가며 일했다. 그만두고 싶을 만큼 일을 배우는 게 짜증이 났다. 옛날 사람들이라 일을 서툴게 하면인격모독을 많이 했다.
돈과 시간적인 면에선 그전에 다녔던 회사보다 나았기 때문에 꿋꿋하게 버텼고 1년 11개월 20일 동안 일했다.
2년이 되면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된다. 회사가 비정규직 법안을 악용해 그전에 잘랐다. 경기가 좋지 않아 정규직을 뽑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믿지 않았다.
역시나 부모님을 도와드렸고 2년 가까이 일자리를 구했지만 일을 쉽게 구할 수 없었다.
다섯 번째 직장은 농수산물 유통센터(일용직)
계약직 전환을 해준다고 해 들어간 곳이다. 1년 조금 넘게 일용직으로 일을 했다. 정말 뼈를 깎는 고통을 참으면서 일했지만 끝내 계약직 전환이 안되었다. 일을 하다 발을 다쳐 치료를 받기 위해 그만두었다. 뭐하나 얻지 못하고 몸과 시간만 허비했다.
서울에서 일을 한 것 빼고는 대부분 캥거루족에 속했다. 그럴 의도가 없었지만, "첫 번째 단추"를 잘못 끼워 계약직만 5번 하게 되었다.
나는 피터팬 증후군에 빠진 거라고 생각 안 했다. 하지만스스로가 무능했고, 유약했고(어리고 약하다), 방만(맺고 끊는 데가 없이 제멋대로 풀어져 있다)했다. 현실 도피를 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론 그랬을 수 있다. 요즘 코로나 19와 맞물려 일자리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아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을 하면서 지금도 부모 밑에서 지내고 있다. 부모님께는 미안한 마음뿐이다. 하루빨리 일을 찾아 독립할 것이다.
지금은 예전과 같지 않다. 목표가 생겼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세상을 탓하기 전 나를 한 번 돌아보게 되었다. 아직 부족한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서 성장해 나간다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와 같은 불경기 속에서도 취직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든 취준생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다들 좋은 성과가 있길 바라며 함께 파이팅 하자!! 일단 그냥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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