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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컨리 Jun 20. 2020

TV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까?

견뎌내자

TV는 정말 위험하다.


나는 TV 보는 것을 좋아한다. 공부할 때 집중력보다 TV 볼 때 집중력이 더 높다. 아마 TV 보는 집중력으로 공부를 했으면 "SKY"는 갔을 것이다. 그만큼 집중력이 최상이다. TV에 빠지면 기본 3시간 이상은 보고 부모님이 간섭을 안 하시면 잘 때까지 볼 때도 있다. 

우리 집은 조부모님과 부모님 방, 거실에 "총 3대의 TV"가 있다. 가족 모두가 TV 보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은 각자마다 개성이 있다. TV를 볼 때도 개성을 반영한다. 아버지는 채널을 막 바꾸신다. 바꾸시다 관심이 가는 채널에 꽂혀 보신다. 어머니는 트로트가 나오는 방송을 보신다. 할머니는 불교방송을 위주로 보신다. 동생은 아버지를 닮아 비슷한 성향을 보인다. 나는 주로 만화, 드라마, 음악, 영화 프로그램을 보는데 시간대마다 보는 게 정해져 있다.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주로 KBS 채널 위주로 보셨고 특히 뉴스를 잘 봤다.


아버지는 농사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시면 무조건 TV부터 트신다. 부모님 방의 리모컨은 아버지 손에 들려져 있다. TV가 집에 비치된 순간부터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리모컨을 장악했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보고 싶은 게 있어도 볼 수 없었다. 거실에 TV가 있지만 유선 방송을 신청 안 해 채널이 몇 개 없고, 동생과 내가 차지했기 때문에 두 분은 거의 볼 수 없었다. 다만 일일 드라마, 주말 드라마를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봤기 때문에 볼 수 있었다. 또한 일요일은 할머니와 어머니의 최애 프로그램인 "전국 노래자랑"이 하기 때문에 양보했다. 그 외 시간에는 리모컨을 차지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항상 불만이 많으셨다. 가끔 두 분이 각자의 남편들과 다툰 적도 많았다. 다퉈도 참정권을 가지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할머니는 노인정에 자주 가셨다. 거기서 TV를 실컷 보시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어머니도 동네 친구분 댁에 가셔서 놀다 오셨다. 지금은 거실 TV를 어머니가 장악하셨다. 


나랑, 동생도 어릴 적 TV를 보기 위해 무진장 애 섰다. 거실에는 정규 방송만 나와 볼만 한 게 없었다. 우리는 주로 할아버지 방을 공략했다. 부모님 방은 아버지가 독식을 하셔서 도저히 볼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뉴스를 좋아하셨기 때문에 그 시간만 잘 피하면 볼 수 있었다. 혹시 뉴스 시간에 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장손의 역량"으로 생떼를 써 본적은 몇 번 있었지만 되도록이면 그 시간을 피해야 볼 수 있었다.

나는 TV를 보면 초집중을 한다. 그 모습이 흡사 "자라가 먹이를 먹기 위해 고개를 쭉 뻗는 자세"와 같고, TV와 간격이 50cm 정도로 딱 달라붙어서 본다고 할머니가 이야기해주셨다. 오죽했으면 "TV에 들어가서 봐라"라고 말할 정도였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동생과 내가 TV 보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셨다. 공부를 해야 될 시기에 TV만 봐서 그랬다. 특히 만화를 봐서 더 싫어하셨다. 만화는 공부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계셨다. 우리는 TV 볼 때도 눈치를 보면서 봤다. 부모님과 할머니는 우리가 TV 보고 있으면 그만 보고 공부하라는 말만 많이 하셨다. 그 바람과 달리 학생 때는 공부하는 것보다 TV 보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 말들이 그냥 잔소리로만 들릴 수밖에 없었다.




TV 보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TV 보는 것을 자제할 수 있을까? 고민했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보지 않는다. 우연한 계기로 독서와 글쓰기를 하면서 내 인생을 180도 바꿀 수 있었다. 이런 변화를 좋게 생각한다. 이런 기회를 꽉 잡아서 삶이 윤택해질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할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은 휴식 시간에 잠깐 TV에 몰입해 소중한 시간을 까먹었다. 동생이 보고 있던 TV 방송을 잠깐만 본다는 게 그만 1시간을 봐버렸다. 그 순간 초집중을 해버렸다. 그래도 "아차 싶어" 그만보고 글을 쓴다.

집에 있으면 "TV의 유혹"에 넘어갈 때도 종종 있지만 그래도 꿋꿋이 내 갈길을 가기 위해 뿌리치고 있다. 현재는 TV보다 중요한 것을 찾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혹시 오늘과 같은 날이 또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방심하진 않겠다. "초집중"을 TV가 아닌 내 삶에 하겠다. 이제는 허투루 시간 낭비하지 않겠다고 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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