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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컨리 Jun 21. 2020

4대 강 사업은 망했지만 내가 흥할 뻔한 이유

농부의 아들은 괴로워

부모님은 김해평야가 위치한 곳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김해평야는 원래 경상남도 김해에 속해 있었다. 1980년도에 대부분 지역이 부산에 편입되었다. 그래서 나는 "부산 사람"이다.

살고 있는 동네를 이야기하면 대부분이 김해에 사는 것 아니냐고 할 정도로 '김해평야의 네임밸류'가 상당히 컸다.

아무튼 할아버지 때부터 대략 70년 동안 농사를 지었다. 1930년대에 대저 제방이 축조되었고 그때부터 김해평야가 본격적으로 개발되었다. 그전에는 갈대가 무성하게 자랐던 곳이다.

할아버지는 종종 젊었을 때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어릴 적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갔고, 1945년 일본이 항복을 하고 지금 살고 있는 동네로 와서 농사를 지었다고 말했다. 집 주변이 거의 갈대밭이었고, 그곳을 경작해 농사를 지었다고 말해 주었다.

원래 우리 집도 땅이 꽤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동생분이 공장에서 일을 하다 다쳤고, 회사를 상대로 싸워야 했기 때문에 변호사를 고용했다. 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땅을 팔았지만 이기지도 못했다.

그 이후 땅을 빌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함께 농사를 지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8살 때 일에서 손을 떼셨다.




한때는 "농사꾼"이 돼볼까? 고민도 해봤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농사꾼'이었고, 환경도 무시 못하기 때문에 잠깐 생각한 적 있다. 지금도 지인분들을 만나면 똑같은 말을 종종 듣는다. '느그집은 땅도 있고, 아버지는 농사 기술도 있는데 그냥 "영농 후계자"나 해라. 요즘 농작물만 잘 키워도 돈이 되던데...'라고 말한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일단 우리 집 소유의 땅이 없다. 땅이 있어도 잘 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몇 년을 고생해 노하우를 쌓아야 농사를 잘 짓을 수 있다.


농사일은 자영업이다. 자영업을 해보신 분들은 아실 테지만 자기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경제적인 차이가 생긴다. 농사일도 그렇다. 농작물을 잘 길러야지 돈이 된다. 농사를 짓는 분들의 20%만이 돈을 잘 벌고 나머지는 먹고 살 정도 거나 그러지 못하는 분들도 있다.(여기서도 파레토의 법칙이 성립된다.)

다른 일에 비해 기본적으로 쉬는 날이 없다. 하루 종일 할 때도, 몇 시간만 할 때도 있지만 거진 "365"일 일을 한다고 보면 된다. 농사일은 끝이 없다.

보통 과수원과 하우스 안에 농작물을 재배한다. 재배를 하면 농작물마다 한 때만 수확이 가능하다. 1년 내내 수확할 수 없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의아해할 것이다. 그러면 365일 일을 하는 게 아닌데 왜 그런 말을 했지?라고 말할 수 있다. 농작물 수확이 끝나면 다시 재배 준비를 위해 정리를 해야 한다. 준비 과정이 길고 생각보다 할 일이 많다. 과거에 비해 기계화가 되었지만, 일손도 부족하기 때문에 오래 걸린다. 그래서 농사꾼 집에서 태어나면 어쩔 수 없이 일을 도와줄 수밖에 없다.

농촌에서는 일손 부족 현상이 항상 있다. 난 어릴 적부터(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부모님을 도와 드렸다. 정말이지 농사일을 돕는 게 싫었다. 하고 많은 일 중에 하필 농사를 지으셔야 했냐고 속으로 원망했다. 그만큼 농사일이 힘들고 짜증 나는 일이다.

아버지는 두 곳에 다가 농작물을 키웠다. 집 바로 옆과 낙동강 근처 땅을 빌려 재배했다. 우리가 집에 있으면 불러 일을 시키곤 했다. 모든 가족이 달라붙어도 끝이 나지 않은 농사가 무진장 싫었다. 그냥 도 도림 표와 같았다. 이날 이때까지 가족을 먹여 살린 것은 인정하지만 싫었다.




10년 전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정부가 4대 강 사업을 진행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이명박(전 대통령)이 미친 짓을 했고 밀어붙였다. 4대 강 유역 근처에서 수십 년간 농사를 짓고 있던 농민들에게는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한마디로 잘 다니는 직장에서 명예퇴직을 권고받은 것이다. 4대 강 유역 근처는 대부분이 국유지(나라의 소유로 되어 있는 토지.)였기 때문에 보상을 많이 받지 못했다. 우리 집도 보상을 받고 철거를 했다.

아버지는 많이 속상해했다. 낙동강 쪽에 있는 땅이 작물을 재배하기엔 좋은 땅이었다고 말한다. 아버지에게 미안하지만 "나와 동생의 속마음은 일이 줄겠구나" 생각해 쾌재(일 따위가 마음먹은 대로 잘되어 만족스럽게 여김. 또는 그럴 때 나는 소리.)를 불렀다. 그것도 잠시 아버지는 보상받은 돈으로 집 근처 땅에 하우스를 좀 더 늘렸다. 단지 이동 시간을 단축한 것 말고는 하는 일은 비슷해졌다.


농사를 짓고 있는 집 근처 땅은 땅 주인이 3명이다. 그중 한 명이 몇 년 전에 본인이 농사를 짓겠다고 이야기했고 그 구역의 하우스를 철거해야 한다. 그게 이번 연도였다. 그래서 어제부터 하우스를 철거하고 있다. 기존에 농사를 짓고 있던 크기에서 3분의 1 정도가 없어진다. 농작물의 수확량이 줄어들 것이다. 또 아버지는 아쉬워하시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가는 세월에 장사 없다고 아버지도 힘들어 보였다. 언제까지 일을 하실지 모르지만 더 욕심부리지 말고 했으면 한다.




농사꾼이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고 짜증 나는 일이다. 무슨 일이든지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힘들다. 365일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다. 농사도 초기 비용이 꽤 들어간다. 농사를 바로 짓는다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다. 몇 년간 실패를 하면서 경험을 쌓고 해야 농작물을 잘 키우는 법을 알게 되고, 그다음부터 잘 키우면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제일 중요한 사항이 또 있다. 자연환경에도 많은 영향을 받는다.(태풍, 병충해, 가뭄, 장마 등.) 많은 상황을 극복해야만이 "진정한 농사꾼"이 되는 것이다.

나는 할아버지, 아버지를 지켜봐서 알게 된 것이다. 이런 것들과 노하우를 알아도 농사꾼이 될 생각이 없다. 나만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뭐든지 해보지 않고 쉽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어찌 보면 난 농사로부터 겸손함을 배웠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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