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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컨리 Jul 09. 2020

공포영화 꼭 극장에서 봐야 하는 이유

혼자 말고 이성과 함께


나는 어릴 적 겁이 많은 아이였다. 키가 작아서 그런지 심장이 콩만 했던 것 같다. 키와는 상관없지만 그렇게 느꼈다. 공포물을 보는 것을 정말 싫어했다.

여름이 되면 항상 납량특집으로 tv에서 무서운 영상물을 보여줬다. 토요일 저녁 '토요명화'에서 드라큘라, 좀비물 등을 보여줬다. 드라마도 그 시즌에 맞게 무서운 것을 방영했다. 제일 기억이 남는 드라마는 '전설의 고향'과 'M'이다.


학교에서 남자 친구들끼리 공포물을 끝까지 다 봤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끝까지 다 본 친구는 '자신은 겁이 없다'라고 과시를 하는 문화가 있었다. 어릴 때는 이렇게 유치하게 놀았다.

그땐 '전설의 고향', 'M'을 보지 않으면 이야기에 낄 수 없었다. 공포물을 싫어했지만 친구들 이야기에 끼고 싶어 용기 내어봤다. 절대 혼자서는 볼 수 없어 꼭 할아버지, 할머니 사이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봤다.

tv를 어느 정도 보고 있으면 두 분은 먼저 잠을 다. 난 끝까지 봐야 내용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잘 수가 없었다. 다 보고 바로 눈을 감지 않았다. 무서운 장면이 생각날까 봐... 조금 있다 잠을 잤다. 그래도 학교에 가면 겁이 없는 아이들의 무리에 낄 수 있었다.




'M'은 낙태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컸던 드라마다. 주인공이 초록 눈동자로 변하면 초능력을 쓰고, 에볼라 바이러스를 감염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자신을 낙태시키려고 했던 사람들을 찾아 복수하는 드라마다. 결말은 새드 앤딩으로 끝이 난다.


<  "M"의 심은하 / 구글 검색 >


'전설의 고향'은 한반도 지역에 걸쳐 전해지는 전설, 민간 설화 등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다. 전설의 고향은 여름에 더위를 쫓는 무서운 내용을 담고 있지만 권선징악의 내용으로 교훈도 줬다. 난 '전설의 고향'에서 "내 다리 내놔" 편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남편이 병에 걸려 오랫동안 자리에 몸져누워 아내가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그 집을 지나가던 도사가 여인에게 장례를 치른 지 3일이 지나지 않은 시체의 다리를 잘라서 푹 고아 먹으면 남편이 나을 것이라고 알려준다. 그 말을 듣고 한밤중 묘지로 찾아간다.
시체의 다리를 낫으로 잘랐고, 그 순간 시체가 벌떡 일어나 "내 다리 내놔!"라고 외치면서 한쪽 발로 깡충깡충 뛰면서 여인을 쫓아온다. 밤새도록 도망쳐 집으로 돌아왔고, 시체는 문 앞까지 따라와 "내 다리 내놔!"라고 외친다. 아궁이에서 끓고 있는 솥 안에 다리를 집어넣자 시체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여인도 정신을 잃는다.
다음 날 보니 시체는 산삼이었고, 시체의 다리는 산삼의 뿌리였다. 그 다리가 산삼 뿌리임을 본 여인이 의아해 다시 묘지로 가보니 밤새도록 쫒아온 시체는 없고, 뿌리 한쪽이 잘린 산삼만 있었다. 결국 산삼 뿌리로 달인 물을 먹고 남편은 병을 고쳤고, 남은 산삼을 팔아 큰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로 끝이 난다.

< 나무 위키 / "내다리 내놔" 줄거리 >




영화도 무서운 것이 많다. 드라큘라, 좀비, 강시, 사탄의 인형 등이 있다. 동시대에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어릴 적 드라큘라, 강시와 좀비를 따라 하면서 친구들이랑 놀았다. 놀 땐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막상 영상을 보면 무서웠다. 마찬가지로 혼자서는 보지 못했다.


희한한 경험도 했다. 밤에 드라큘라 영상을 보고 자면 목이 아팠다. 드라큘라에게 물린 것처럼 목이 한쪽으로 고정이 되어 움직일 때 아팠다. 다음 날 그 상태로 학교를 가면 친구들이 왜 그렇게 됐냐고 물어본다.

'밤에 드라큘라 영화만 봤을 뿐인데'라고 말해도 친구들은 믿어주지 않았다. 다른 무서운 영화를 보면 그렇지 않은데 꼭 드라큘라 영화만 보면 목이 아팠다. 한 번만 겪으면 억울하지도 않겠지만 몇 번 그랬다. 그런데도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기 위해 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드라큘라"를 볼 때 몸에 힘이 굉장히 많이 들어간다. 옆으로 누워 목을 꺾어서 봤는데 그 상태로 1시간 이상 있으면 아플 수밖에....!!


"꼭 드라큘라에게 목을 내어줘 피를 뽑힌 듯한 고통을 느꼈다."


< pixabay.com >


어릴 적이니 무서운 것을 못 볼 수 있지만, 성인이 되어도 무서운 것을 보는 것은 겁이 났다.

군 복무를 경기도 광명시에서 했다. 1박 2일 외박을 받아 나갈 수 있었다. 외박은 지하철이 운행하는 곳만 갈 수 있어 서울ㆍ경기도 지역에서 지내야 했다. 부산이 연고지라 아는 친척, 지인이 없었다.

어떻게 찜질방에 가서 지내야 하나?라고 고민했다. 그때 동네 동생이 생각이 났다. 동네 동생이 축구선수였다. 서울 기숙사에서 생활한다고 말한 게 기억이나 동생에게 연락을 하였다. 다행히 동생이 시간이 돼 나와 함께 있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1박 2일 동안 맛있는 것도 먹고 정말 재미있게 놀았다.


하나의 흠이 있다면 그건 외박 첫날 동네 동생과 충무로에 위치한 대한극장에서 영화를 한편 본 것이다. 낮에 시간이 남아 영화가 보고 싶어 남자 둘이서 영화를 보러 갔다.

(난 원래 남자끼리 영화를 보러 가지 않는 불문율이 있었는데 그 날 깨버렸다.)

그 시간에 상영하는 영화가 "령"이란 공포물 밖에 없었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보게 되었다. 매표소에 있는 여직원이 "그렇게 무섭진 않을 거예요." 이 한 문장의 말만 믿고 봤다.

동생은 공포물을 조금 본다고 했지만 난 조금 걱정이 되었다.

군인 정신으로 무장하고 들어갔다. 영화를 낮 시간에 보는 거라 관객이 거의 없었다. 우리 두 명과 왼쪽 대각선 앞에 앉은 여성 3명밖에 없었다.(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영화가 시작되고 극장 안의 불이 꺼졌다. 처음 몇 분은 견딜만했다. "김하늘"이 주인공이라 이뻐서 봤는데 "와우"사운드가 정말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하필 우리가 앉은 곳은 맨 뒤쪽 스피커와 가까운 곳에 앉았다. 그래서일까? 오금이 저리면서 더 무서웠다. 동생은 그래도 잘 보는 것 같았다.

20분쯤 지났을까... 앞에 있던 여성 3명은 보다가 나가 버렸다. 내가 봤을 땐 "깜짝깜짝" 놀라고 한 걸 보면 무서워서 나갔다.

극장 안은 둘 밖에 없었다. 이게 더 무서웠다. 30분쯤 지나자 내 몸이 의자 밑으로 자꾸 내려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또 언젠가부터 귀와 눈을 감고 있었다.


사운드가 와~사람 환장하게 만들더라... 심장이 쪼그라 들 정도로 무서웠다.


< "령"의 김하늘 / 구글 검색 >


동생 보고 무서운 장면 안 나올 때만 말해달라고 해 그때만 보고 무서운 장면은 볼 수 없었다.

영화가 끝나고 동생과 밖으로 나왔는데 이건 뭐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이 된 것 마냥 공포감으로부터 해방감을 느꼈다.

끝나고 동생한테 무섭지 않았냐고 물어보니 무섭긴 했는데, 나를 보고 조금 웃겨서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얼마나 찌질해 보였으면 그랬을까?


그때는 찌질해 보여도 상관없었다. 정말이지 무서웠다. 매표소 여직원의 말만 믿고 본 내 잘못이 컸고, "21살에 처음으로 공포영화를 극장에서 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와~와~사운드에서 그냥 심장은 이미 정신을 잃어버렸다. 내가 본 영화가 공포영화가 맞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날이 내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영화관에서 본 공포영화였다."


그 후 다시는 공포영화를 영화관에서 보지 않았다. 어떠한 "감언이설"로 나를 꼬드겨도 보지 않았다.

요즘에도 극장에 가 공포 영화를 보지 않고 있다. 아니 볼 수가 없다. 영상도 영상이지만 사운드 때문에 무섭다. 오죽했으면 소개팅이나 미팅에서 여자분들을 만나면 "혹시 공포영화 좋아하세요?"라고 물어볼 정도였다.

공포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난 당당하게 "공포영화 빼고 다 볼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암튼 극장에서 공포영화는 상상하기도 싫다. 아마 죽을 때까지 보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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