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 안녕
어느덧 28주차에 접어든 임신기간.
비교적 안정적이고 편안하다는 중기가 지나가고 드디어 본격적인 임신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확실히 배 부르는 속도가 빨라지고 그에 맞춰서 크고 작은 변화들이 생기고 있다.
식사를 조금 과하게 했다 싶을 때 숨쉬기가 어려워지는 경험을 하기도했고
감은 머리를 말리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가 들었을 때 눈 주변에 빛이 반짝이는 '비문증'을 느껴보기도했다.
임신 초기에 요가를 시작했다가 잠깐 아팠던 꼬리뼈통증이 임신 후기에 들어서자 만성이 되어 돌아왔고
변비 증세가 조금씩 사라짐과 동시에 원래 가지고 있었던 내 고질병인 '치질'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사진 속에 턱살이 2개인 내 모습은 덤.
'아, 이제 작은 행동 하나하나도 조심해야되는구나.'
아직 완벽하게 준비된 것은 아니지만 집안 정리도 얼추 되었고 아이물품도 많이 구비해두었다.
하루가 다르게 불러오는 배를 내 눈으로 확인하고 빠르게 지나가는 날짜들을 카운팅하며 이제 정말 '출산'이 두달 정도 앞으로 다가왔다는 것이 실감나기 시작한다.
최근에 유튜브로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과정'을 장면을 촬영한 EBS 다큐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초록 애벌레가 열심히 기어다니며 푸른 잎들을 먹고 자리를 잡은 뒤에 번데기가 되며 결국 그 안에서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나비로 변신해 날아오르는 장면.
그런데 그 뒤에 나오는 장면이 충격적이었다. 성충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또 다른 애벌레에게 기생벌이라는 유기체가 달라 붙어 그 안에 알을 낳고 결국 애벌레는 죽고 그 애벌레의 영양을 먹고 자란 기생벌의 새끼들이 에벌레를 뚫고 나오는 장면이었다.
나는 왜 이 장면이 그렇게도 인상 깊었던 걸까. 그 장면 자체가 시각적으로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나도 모르게 '출산'과 비교하게 되어서 그랬던 것 같다. 물론 아기를 그 기생충에 비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또 다른 생명체에게 영양과 에너지를 제공하고 사라지거나 이전과 달라지는 기존의 생명체와 그로 인해 성장하는 새로운 생명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흔히 임신과 출산은 숭고하다고 한다. 엄마를 희생하여 아기를 만드는 것이라고들 여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해보면 나나 애벌레나 다를 바 없이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고 가려는 시스템의 하나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거기에는 '선'도 '악'도 없다. 특히 선택이라는 걸 할 수 있는 인간에게는 '낳거나' 혹은 '낳지 않을' '의지'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출산이 다가오니 자꾸만 유튜브 알고리즘이 나를 '산모 출산 사고'쪽 이슈로 몰고가고 있다.
사실 겁이 많이 난다.
그렇지만 결국 내가 선택한 길이다. 변화도 아픔도 희생도 내가 결정한 것이다.
조금 더 담담히 마음을 먹자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보는 중이다.
* 이미지 출처: EBS 다큐멘터리 유튜브 ‘골라듄다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