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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armony Nov 07. 2015

15. 부모노릇

어느 학부모의 눈물

한달 전 쯤

초등학교 2학년 자녀에 대한 고민을

나와 상담하고싶으시다는 한 학부모님이 계셨다. 해당 학생의 담임교사는 나에게 학무모와의 유선상담을 요청했다.


솔직히 두려웠다.

나보다 경험도, 나이도 많은 학부모가 하는 이야기에 나는 어떻게 답해줄 수 있을까..

나의 부족함이 티가 많이 나면 어쩌나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두려울수록 더 많이 만나보고 겪어봐야한단 생각, 내가 이 곳에 머물러있는 이유가 바로 이런 상황 때문이라는 생각, 어떤 어려움이 있으시기에(물론 나의 직함이 사회복지사 이기는 하지만)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사람에게 요청할 것이 있다고 용기와 관심을 내비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수화기를 들었다.


일을 하시는 어머님이셔서 오후 6시 이후에 전화를 드렸었는데 초반 2번 모두 불통, 3번짼 아직 업무중이셔서 상담 불가, 다음날 아침에야 어머님이 짬을 내셔서 전화를 주셨다.


학부모의 고민은 이러하였다.


1. 삼형제를 기르고 있는데 첫째인 아이(초2)가 엄마와 대화를 잘 안한다. (두명의

동생들은 각각 조금씩의 신체적 어려움이 있음) 동생들을 챙기느라 혹은 일이 바빠서 평일에는 이야기할 시간도 없다. 어쩌다 몇가지 물어도 아이의 대답은 단답형이고 최근 "재미없다"고 말하는 횟수가 늘어서 걱정이다. 학교에서는 수업시간을 방해하는 행동을 하고 자기 주장이 강하다. 친구들보다는 힘이 센 형들을 더 따르는 것 같다. 엇나갈까 걱정이다.

2. 아이의 아빠되는 사람이 유독 그 아이에게 화를 자주 내고 좋지 않은 모습(바람직하지 않은 어휘나 행동 사용)을 보여 부정적인 본보기가 되고 있다. 아이가 아빠의 그런 모습을 따라한다.

3. 많지 않은 수입에 세 자녀를 키우는데 빠듯한 경제상황으로... 아이가 스스로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실제로도 부족한 경향이 있다. 그 부분을 충족시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이야기를 전개할수록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고 때로 격양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세번째 주제를 꺼내기 시작하면서 목소리를 떨기 시작하셨다.


이야기를 듣는 내 손은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원래 누군가와 장시간 통화를 할 경우 꼭 손에 펜을 쥐고 종이에 무언가를 끄적이는 버릇이 있는데, 어머님이 하시는 말씀을간단히 메모하기위해 들었던 펜은 시간이 갈수록 의미 없는 동그라미와 별표를

반복해서 그리고 있었다. 동시에 코끝이 찡해짐을 느꼈다. 어머님께 들키지 않기 위해 무진 애를 썼던 것 같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어머니 그런 걱정이 있으셨군요. 그동안 여러가지로 마음이 무거우셨겠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머님께서 아이에게 많이 마음쓰고 계시고 지금도 아이를 위해 조금이라도 잘해보고자하는 어머님의 마음이 저에게 느껴져요. 이런 어머니가 계시기에 00이에게는 그래도 어머니가 큰 힘이 되겠네요. 어머님의 그 마음과 관심만으로도 00이는 긍정적으로 자랄 수 있는 가능성이 무한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힘내세요."


어머님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으며 '어떻게하면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내용들은 뒷전으로 밀어내고 나도 모르게 속사포같이 말을 쏟아냈다. 즉각적인 진심의 표현이었다. 어머니가 죄책감을 느끼시는 것같아 마음 아팠다.

수화기 너머 어머니께서는 결국 흐느끼시기 시작했다. 나는 또 눈이 뜨거워졌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 뒤에 실질적으로 어머니가 원하시는 부분, 내가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커다란 해결책은 없었다. 아이의 아버님의 완고한 고집으로 아버지에 대한 상담이나 기타 개입은 거부되었고 경제적인 도움을 바라시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아이의 마음을 알고싶다고 하셨다.

아이가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기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나는 학교에서 아이와 자주 만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갖겠다고 하였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다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정에서 부모님이 아이와 최소한의 시간을 가지고 함께 하는 것이 가장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어머님은 연신 "감사하다"고 말씀하시며 전화를 끊으셨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다보면

자연스럽게 그들의 부모님을 그려보곤 한다. 대부분 나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사연과 이유들이 있겠지만 어느정도 예상되는 부분들도 있다.

아이들의 말투, 사용하는 단어, 표정, 태도를 통해서.

아이들은 정말 부모의 거울이다.


좋은 부모란 어떤 부모일까?

무엇을 어떻게 해야 부모노릇을 잘 했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과연 어떤 부모가 될까?


어머님들과 대화하다보면 정말 훌륭하게 아이들을 교육하고 바르게 키우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여러사지 사정으로 인해

부모역할을 버거워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아이들은 가족안에서 자라난다.


부모역할의 중요성과 어느정도의 행동지침 ,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의미, 아이들의 심리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그 역할의 책임감과 숭고함에 대해서 좀 더 공부하고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많으면 얼마나 얼마나 좋을까.

나를 포함하여 부모가 될, 된 모든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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