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87'
예상치못한 시간의 공백으로 동생과 함께 영화 1987을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 6월 민주항쟁, 직선제를 일구어낸 바로 그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임을 사전에 알고 있었고
작년에 한국사를 공부하며 강의로도 듣고 열심히 암기했던 내용들이기에 크게 기대하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았던 영화였다.
영화초반에 동생과 나는 말도 안되는 권력의 횡포 대한 묘사를 보며 가만히 "허!" "참~" 탄식을 했고
후반부에는 조용히 울었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눈물을 훔쳤던 나는 동생에게 "그만 울어. 언니 이한열 친구야?ㅋㅋㅋ"이라는 놀림을 받기까지 했다. 나는 왜 그렇게 울었던걸까?
우리나라에는 나라를 위해 목숨과 열의를 바친 인물들이 참 많았다.
우리는 그들 중 눈에 띄는 업적을 남긴 일부를 역사책을 통해 배우고 익히며 우리나라가 지나온 날들을 공부한다.
그런데 영화에서 민주화운동이 일어날 수 있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그냥 일반 '국민', '우리' 그 자체였다. 교도소에서 일하는 공무원, 그들의 가족, 의사, 검사, 수많은 학생, 직장인, 국민.......
잠시 눈을 감고 귀를 닫으면 당장의 이익까지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진실을 외면하지 않았던 사람들.
영화를 보면서 재작년 겨울이 떠올랐다.
한창 공부중이던 나는 외부와의 연결을 완전히 끊었었고 선생님들을 통해 전해들었던 탄핵과 촛불시위에 관한 이야기들을 마치 라디오 드라마 듣듯 흥미롭게 여기고만 있었다.
그리고 모든 공부를 마친 뒤 나 홀로라도 나가보았던 촛불시위의 현장.
사실 커다랗고 뜨거운 의지라던가 어떤 대단한 마음가짐으로 그곳에 간 것은 아니었다.
단지... 역사가 될 현재의 이 엄청난 현장을 직접 느껴보고 싶었고
후에 나의 자녀가 내게 '엄마 그때 어땠어요?'라고 묻는다면
'엄마도 그곳에서 독재타도를 외쳤다'고 말할 수 있는 당당함을 갖고 싶었다.
그렇게 짧고도 단순한 생각으로 나갔던 광장에서 느꼈던 벅참은,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했고 또 기쁘게 했다.
영화 속에서 김태리가 강동원에게 울면서 말한다.
왜 그렇게 이기적이냐고. 그렇게 살면 남은 가족 생각은 안하냐고. 당신이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지냐고.
맞다. 내가 그 때 그 시절 대학생이었다면 나는 김태리와 비슷한 태도를 가지고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유달리 겁이 많은 나는 이미 한 번 겪어 본 포탄의 위력과 폭력적인 그들의 몸짓에 몸서리를 쳤을 것이다. 시위에 참여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 거다. 나 하나로 인해 세상이 바뀔거다? 택도없는 이상적인 생각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누군가가 이기적이라고 말한대도 고개는 숙일망정 행동을 바꾸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2018년, 여전히 이기적인 나는 앞으로 그런일이 또 일어난다면 그 시위현장에 몇번이고 나갈 것 같다.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나라에서 살아갈 나를 위해, 내 친구, 내 가족, 혹은 내 자녀를 위해.
그게 곧 내 나라를 위한길이라는 생각으로.
뭐 엄청난 애국심과 투지를 가지고서가 아니라 온전히 나와 관련된 것들을 위해 내가 쓰일 수 있다면 기꺼이 그 일에 동참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나와 내 가족을 위해 세상이 변해야만 하니까 하는거라고, 내가 아무리 약하고 작아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거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30년전보다 진일보했다. 분명히 그렇다고 생각한다.
6월항쟁 이후 우리는 또 다시 동일한 광장에 나왔지만 그 과정에서 30년전과 다르게 국가 권력에 의해 많은이들이 피흘리며 죽거나 다치지 않았고 시민들 역시 폭발물을 만들어 던지지 않았다.
대다수는 그 대신 촛불을 들고 노래를 불렀다. 남녀노소 할 것없이 광장을 찾았다.
하지만 제2,제3의 시위가 또 일어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민주주의는, 우리나라는 아직 여전히 나아가고있다.
영화 후반부 이한열의 죽음을 보며 내가 눈물을 그렇게나 흘렸던 이유는
그 대학생이 언젠가 친구가 될수도, 후배나 선배, 혹은 가족이, 아니면 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다.
눈앞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지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보이지 않는 협박과 강압속에 죽음과 다름 없는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지금도, 미래에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스에서는 매일 매일 세상을 놀라게 하는 이슈가 끊이질 않는다.
이게 나라냐, 이게 민주국가냐, 검찰 경찰 심지어 사법부까지 권력의 노예냐
완벽한 민주주의 완전한 국가라는게 존재할 수 있을까?
분명한건 예나 지금이나 나와 내 가족과친구가 사는 이 나라에 대한 관심과 애정, 감시와 비판은 항상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6월항쟁 당시 대학생으로서 시위를 이끌고 참여했던 '우현'이라는 배우분이 이 영화에서는 정반대의 악역으로 등장했다. 그가 원망하고 분노했을 그 사람을 연기하면서까지 영화에 출현한 것은 현재의 우리에게 30년전의 그 사건을 잊지말아달라는 의미의 출현이 아니었을까.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오롯이 '팬'이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학창시절 너무나 좋아했기에 아빠가 내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수사진이 달린 엽서를 선물해주셨던 가수의 노래,
가사가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 테이프를 듣고 또 들었던
그 노래가 생각나는 영화였다.
'촛불하나'
하지만 그러면 안돼 주저 앉으면
안돼 세상이 주는대로 그저 주어진대로
이렇게 불공평한세상이 주는대로 그저
받기만 하면 모든것은 그대로 싸울텐가
포기할 텐가 주어진 운명에 굴복하고 말텐가
세상앞에 고개숙이지마라 기죽지마라 그리고 우릴봐라.
너무 어두워 길이보이지 않아
내게있는건 성냥하나와 촛불 하나 이 작은
촛불하나 가지고 무얼하나
촛불하나 켠다고 어둠이 달아나나
저멀리보이는 화려한 불빛 어둠속에서
발버둥치는 나의 이몸짓 불빛을 향해서
저 빛을향해서 날고 싶어도 날
수 없는 나의 날개짓
하지만 그렇지 않아 작은 촛불하나
켜보면 달라지는게 너무나도 많아
아무것도 없다고 믿었던 내 주위엔 또
다른초 하나가 놓여져 있었기에 불을 밝히니
촛불이 두개가 되고 그 불빛으로
다른 초를 또 찾고 세개가 되고 네개가
되고 어둠은 사라져가고.
지치고 힘들땐 내게 기대 언제나
니곁에 서 있을께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내가 너의 손 잡아줄께.
갑작스럽게 등장한 강동원(의 미모) 때문에 영화를 보던 나의 집중력이 흐트러진건 안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