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Harmony Mar 23. 2018

33. 그들에게

수험서를 정리하며

수학아

10여년 전에 너는
나와는 참 맞지않는,

만날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대였지.

2년전에 너를 오랜만에 만났을때는 말그대로 '오랜만'이어서 순간적으로 반가웠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너를 여전히 버거워하는 나를 알 수 있었어.

하지만 나이를 조금 더 먹어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네가 가지고있는 대쪽같은 명확함과 철옹성같은 고집이 이제는 매력적으로 느껴지더라.  가끔은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 나를 혼란스럽게 하기도 했지만 그안에 숨겨진 너의 진실된 모습은 항상 그대로 변하지 않더라고.

2년간 너를 더 많이 알고 친해지려고 가장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했더니 너는 결국 내게 그만큼 다가와 주더라. 나를 알아줘서 고마워. 그리고 너처럼 차갑고 까칠해보이는 애랑도 친해질 수 있다는 용기를 준것도 고맙다. 나 앞으로 너와 비슷한 친구를 만나도 이제는 겁먹지 않을 것 같아.


영어야

우린 그동안 얇지만 길고 꾸준히 만나왔지.

지금까지 의도치 않아도 가볍게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반복했던 우리였기에
너와의 만남이 어색하거나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

그래도 나는 너를 어느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서 조금 더 가까워지는게 어려운일이 아닐거라 생각했었는데 그건 내 오만이었어.

사실 너는 다른 누구보다도 내 가까이에 있었는데
나는 너를 제대로 알고있는게 아니더라.

너를 알기 위해 제대로 시도해본적도 없으면서 너를 알고 있다고, 금방 알 수 있다고 착각했었어.

너와 진실로 친해지기 위해서는 너를 구성하는 하나하나를 파악하고 너의 속성을 기억하고 무엇보다도 너와 만나는걸 즐기고 좋아했어야 했는데.. 사실은 널 좋아했지만 너를 알아가는 내 방식이 잘못되었었나봐. 지난번까진 우리 서로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사무적으로 만났었지만 이제부턴 너와 함께 즐기고 성장하며 만나고 싶어.

앞으로도 나와 자주 만나줄거지?


국어야

지금 너를 떠올리는 내 마음이 많이 아프다.

사실 나는 지금 너에게 배신을 당한 기분이야...

내가 평소에 너를 얼마나 좋아했는데!!

너도 매번 내가 좋다고 했었잖아.

우리 만날때마다 서로 참 잘 맞아서 너와의 관계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었는데

가장 중요한 순간에 어쩜 그렇게 내게 등 돌릴 수 있니? 이렇게 뒷통수 맞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내가 너를 친하다고 여긴 나머지 조금 소홀한 부분이 있었던거 인정해. 미안해. 내가 자만했었어.  

다 내가 자초한 일이라고 한다면 할말은 없어.

속상하고 서운하지만... 가장 가까이두고 사랑하는 것일지라도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걸 이제 알았어. 세상에 당연하게 내 것인 것은 없더라고. 니가 내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바보같이 그래도  난 여전히 니가 제일 좋긴하다.. 앞으로는 너에게도 세심하게 신경쓸게


한국사야

다른 이들에겐 부담없는 존재 혹은 천덕꾸러기같은 존재였을지 몰라도 나에게 너는 단연 베프였다.

너를 보며 나는 지금의 나와 내가 살고 있는 현대를 돌아보게 되었어. 너를 알아가며 부끄러워서, 자랑스러워서, 고마워서, 속상해서 흘린 눈물들이 나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주었다고 확신해.

앞으로도 나는 너를 절대 잊지 않을거야.


사회탐구

그거 아니? 너는 내게 휴식과도 같은 존재였어.

국어가 지겨워지고

수학이 까탈스럽게굴고

영어가 딱딱하게 굴어 지칠때면

난 언제나 너를 찾았던 것 같아.

너는 내가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내게 말을 걸어줬고 덕분에 나는 너에게 다가가기 수월했거든. 또 너는 다른애들보다 일상생활에 훨씬 유익하고 흥미로운 정보들을 제공해주었어. 나는 너를 만날때마다 진실로 지성인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니까? 너를 반복해서 보고 또 봐도 지겹지 않았던 것 같아. 너를 만난만큼 난 너에 대해 더 알고싶어졌고 네가 좋아졌어. 너를 통해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알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까지 얻을 수 있었던 건 나의 행운이야. 고마워.


갑작스럽게 만나 2년이란 시간을 함께 보내온
너희들.
지난 시간동안 나와 함께 해준

너희를 정리하는게 이렇게나 아쉬울줄이야.
막연히 홀가분할거라 생각했었는데
내가 생각보다 너희를 더 많이 사랑했었나보다.

하지만 이제는 놓아줄게

그동안 고마웠어.

작가의 이전글 32. 기억해줘서 고마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