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 헌내기의 새내기인 척(3)
우리학교 1학년 필수교양과목 중에는 '글쓰기'가 있다.
지난 주 글쓰기 과제는 '주어진 사진 중 몇가지를 골라 조합하여 A4용지 한장 분량의 이야기 만들기' 였다.
주어진 사진은 총 12장으로 서로 아무런 연관이 없었고 교수님께서 고르신 것이었다.
조별로 글에 대한 주제를 하나 정하고 집에서 각자 글을 써오기로 하였다.
조원 모두가 사범대 학생이어서 그런지 우리는 '왕따'를 주제로 글을 쓰기로 했다.
집에 돌아와 글을 쓰자니 처음엔 막막했다.
왕따와는 크게 관련이 없어보이는 사진들을 가지고 어떤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
창작의 고통(?)을 몸소 느끼며 활용할 사진들을 이것저것 골라보고 이리저리 스토리를 구상해보았다.
'왕따'라는 소재는 그대로 활용했지만 그것을 떠올렸을 때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다름','장애','외로움','이해의 부재' 등의 단어들을 생각하며 글을 썼다. 글을 다 쓰고보니 평소 '판타지'를 좋아하고 '터무니없는 상상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었던 나의 취향이 그대로 녹아든 '비현실적' 이야기가 완성되어 있었다.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 할지 몰라 결국 '오글거리는' 결론으로 마무리 짓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다음 수업에 임하였다.
교수님께서는 조별로 각자 적어온 이야기를 돌려보고 코멘트를 달아준 뒤, 가장 잘 쓴 글을 하나 골라 제출하게 하셨고 운 좋게도 나의 글이 선택되었다. 각 조에서 선정된 글은 다른 조의 조원들이 모두 볼 수 있게 복사되었고 그 중에서 가장 잘 쓰여진 글을 선정하는 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모든 조의 순위매김이 끝나고 교수님께서 가장 많은 사람이 선택한 글을 발표해주셨는데
오마이갓! 내가 쓴 글이었다..! 대학에 입학하고나서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그렇다.. 나는 지금.. 어디엔가, 누구에게든지 자랑을 하고 싶어 이 글을 적는것이다^^하하
솔직히 잘 쓰여진 글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진 않는다. 전문가에게 보인다면 여러군데 책잡힐 글일지도 모른다. 내가 한번 더 읽어봐도 유치하고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이다.
또 나는 20대 후반이고 동기들은 대부분 20대 초반이기에 글을 비교하는데에 연륜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그들보다 보고 듣고 읽고 쓴 것이 훨씬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좋았던 부분은 누군가가 내 글을 '편하게' 읽었다는 것이고 '재미있다'고 느꼈다는 사실이었다.
다 완성된 글을 다시 읽고나서 보니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라는 신경숙 작가의 책 제목이 떠오르기도하고(책을 읽진 않았지만 조금은 비슷한 내용이지 않을까?),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피드백도 있었을만큼 어설픈 마무리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래저래 부족한 부분이 많은 글이었지만 나름대로 나의 전공과 연결시켜, 또 진심을 담아 전하고 싶은 주제를 선정해두고 글을 썼기에 좀 더 수월하게 글을 쓸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아주 짧은 시간, 단 하나의 수업에서 얻은 칭찬과 인정이 나를 며칠 더 행복하게 해줄 것 같다.
항상 느끼는 사실이지만, 글을 쓸 수 있어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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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찾는 전화벨소리
“따르르릉, 따르르릉”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길거리 공중전화박스에서 전화벨이 울린다. 공중전화에서 벨이 울리는 것은 좀처럼 겪어본 적 없는 일이었다. 공중전화를 지나치는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벨소리에 고개를 한번쯤 돌리기는 하지만 그 누구도 멈춰서서 전화를 받지는 않는다. 나 역시 그냥 지나치려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5미터쯤 지나서였을까? 이상하게도 벨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만 같았다. 제발 좀 받아달라고 내게 애원하는 소리인 것만 같았다. 결국 뒤돌아 공중전화박스에 들어가 수화기를 들어버렸다. “여보세요?” “아! 전화를 받다니! 여보세요? 누구시죠? 아니, 제 이야기를 들어주실 수 있나요? 아... 죄송해요. 그냥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어서요.” 공중전화에 전화를 걸어놓고 다짜고짜 상대편에게 누구냐니? 오히려 이쪽에서 물어야 할 질문이 아닌가? 또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니? 황당했지만 믿을 수 없을 만큼 친숙한 목소리와 간절한 듯 하면서도 예의를 잃지 않은 그녀의 말투가 나도 모르게 “네, 듣고 있어요. 말씀하세요.”라고 대답하게 만들어버렸다.
전화기 너머 그녀는 천천히 본인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음 그동안의 저는 마치.. 유리병에 갇힌 사람 같았어요. 오직 저 혼자만이 유리병 속에 있고 아무도 유리병 안에 들어오지 않았죠. 사실.. 저에게는 ‘감정이 이미지로 생생하게 보이는’ 특별한 능력이 있거든요. 그냥... 간단한 이미지가 아니라 마치 정말, 정말 내 앞에 그런 상황이 실제로 나타난 것 만 같은 느낌이 드는 그런 능력이요. 그 순간이 귀로 들리기도 하고 느껴지기도 해요. 답답함을 느낄 때 ‘하늘에 희뿌연 구름이 가득한 것 같아. 아, 너무 답답하다’라고 말하며 손을 휘저을 때도 있고, 너무나도 허하고 외로움을 느낄 때 ‘쩍쩍 걸라진 땅을 걷는데 물줄기마저 나를 피하네.’하며 물줄기를 만지려 손을 뻗어보기도 했어요. 아마 상상이 안 되실거에요. 이해해요. 그런 사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면 모두들 절 이상하게 생각하거든요. 아마 제가 정신이상자 같아 보였을거에요. 저는 조금 다른 것일 뿐이었는데, 그저 남들보다 좀 더 과장되게 상황을 받아들일 뿐이었는데, 그들은 이해해보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어요.” 미세하게 떨리던 목소리, 침을 꿀꺽 넘기는 소리가 명확히 들릴 만큼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던 그녀의 어조는 시간이 지날수록 차분해졌다. “그래서요, 저는 결국 자살을 하기로 했어요. 나는 다가가려 노력했지만 내게 다가와주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어요. 바꿀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아무도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삶은 살아갈 이유가 없었어요. 그런데 신기한건요, 죽기위해 물에 몸을 던졌던 바로 그 때 제 머릿속을 지나치는 하나의 이미지가 있었어요. 그건 아주 어릴 적 친했던 친구와 물가에서 놀던 이미지였어요. 이미지라기 보단 기억에 가까웠던 것도 같아요. 그 때 그 친구와 매일 함께 가던 강가가 있었거든요. 고맙고 신기하게도 그는 나를 있는 그대로 믿어줬고 존중해줬지요. 마치 형제처럼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어요. 내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구나 싶은 마음에 우습게도 잠시 안도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렇게 그 이미지에 대해 잠깐 생각을 하고 정신을 잃으려는 찰나 누군가 나를 구하러 물에 뛰어든 것을 보았어요. 얼마 후 눈을 떠 보니 나는 물 밖으로 나와 목숨을 건진 상태였고, 나를 구해준 사람이 근처를 지나던 두 명의 사진기사라는 것을 알았어요. 날은 어두워졌고 두 사람은 서로 잠깐 이야기를 나누더니 내게 와서 이렇게 말을 해주었어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섣불리 목숨을 버리려고 하지 마라. 너와 함께 할 사람은 반드시 있다.’ 의미심장한 그의 말을 듣고 나는 한 번 더 용기를 내보기로 했어요. 주변을 둘러보고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 플랫폼에 들어갔어요. 실내에 들어서자마자 내 눈에 첫 번째로 띄는 기둥 옆에 서서 내 앞을 지나가는 사람의 수를 세고 그 수를 조합해서 전화번호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무작정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이렇게 결국 당신과 통화를 하게 된 거에요....” 숨죽이고 그의 말을 듣던 나는 한마디 질문을 던졌다. “...혹시 자살시도 후에 보았던 이미지 속의 강이 A강 아닌가요?” “!”
순간 자살시도를 했다던 그녀의 눈 앞에 커다란 이미지가 펼쳐졌다. 이제 막 해가 지려고할 때, 해가 지상에 가장 가까이 내려온 그 순간 느낄 수 있는 갈색빛 따뜻함이 온몸을 감싸고 주변에는 기분 좋게 산들거리는 바람이 분다. 이토록 오래 간직하고 싶은 이미지를 본 적이 언제인가? 생각이 들 때쯤 수화기 너머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린다.
“어디야? 보고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