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 헌내기의 새내기인 척(4)
기독교와 관련된 필수교양수업을 듣고 있다.
종교에 대해 배우거나 혹은 특정종교를 강요하는 수업일거라 생각했던 학기 초 학생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담당 교수님께서는 학생들에게 '꿈과 현대사회에 대해 한학기동안 고민하는 학생들이 되길 바란다'고 하시며 2권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라는 과제를 내주셨다.
그 중 한 권의 책이 '9번째 지능' 이었다.
그동안 지능이라 하면 IQ(지적지능) 혹은 EQ(감성지능)정도만을 떠올릴 수 있었는데..
지능의 종류가 9가지나 있단 말인가?
9가지 지능은 '하워드 가드너'라는 하버드대학 교육대학원 교수가 발견해 낸 것으로 이를 다룬 이론을 '다중지능이론'이라 부른다. 사실 이 중 실제로 8가지 지능만이 이론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었는데 그 지능은 언어지능, 논리수학지능, 공간지능, 음악지능, 신체지능, 인간친화지능, 자연친화지능, 그리고 자기성찰지능이다. 이러한 이론은 가드너가 뇌의 손상부위에 따라 해당 능력이 손상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여 타당한 이론으로 검증되었다.
하지만 책에서는 다른 8가지 지능보다 가장 최근에 발견된 9번째 지능, 여러가지 증거보완문제로 아직 학계의 인정을 받지 못해 8과 1/2지능이라 불리는 지능, 즉 영성지능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다.
이 지능은 인류의 존재 의미, 타인과 나에 대한 성찰 등 존재와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을 말한다. 이 지능이 높은 이들은 자연스레 공존과 봉사, 헌신에 대해 자주 생각하며 이를 실현하고자 노력한다. 한마디로 '연대능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지능.
책 속에서는 세계적인 문호 '괴테'와 나치즘을 선동자 '괴벨스'를 예시로 소개하며 9번째 지능이 다른 8가지 능력이 올바르게 발전하는데에 도움을 준다고 설명하였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언어지능이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9번째 지능이 뛰어난 괴테와 그렇지 않은 괴벨스의 행보는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완전히 인정받지 못한 지능이라 할지라도 책에 등장했던 9번째 지능이 높은 3명의 현존인물과 역사적으로 타인을 돕는데 열과 성을 다한 많은 인물들에게는 특별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타인과 공동체에 대해 고민하고 가치를 찾아 행동하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그들을 따르고 본받고싶게 하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책을 읽기 전, 수업시간에 간이테스트지로 다중지능검사를 해보았는데
내가 높은 점수를 얻은 부분은 '언어지능, 인간친화지능, 영성지능'이었다.
평소 내 흥미와 성향이 잘 드러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게 내 지능이라고? 흥미와 능력은 엄연히 다르기에 내가 이런부분에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능력이 좀 부족하면 어떤가, 적어도 내게는 다른 지능보다 더 수월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 지능이 이 3가지라는 뜻 아닐까?
다른 지능 점수도 높으면 좋겠지만 내 결과지에 나온 3가지 지능이 다른 여타 지능들의 이름보다 마음에 드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순 없을지 몰라도 이 검사는 나에게 '지금 내가 어떠한 부분에 관심이 있고 이것을 어떻게 활용하고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며 또 무엇이 조금은 부족한지'를 알려주는 소중한 지표이자 작은 응원이 되어주었다.
나 뿐만이 아니라 함께 검사를 하고 결과를 확인한 동기들의 표정이 밝아졌던 걸 보면 우리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이러한 검사를 중고등학생 때 해보았더라면 어땠을까?
자칫 결과지에 나온 특정지능에만 몰두하여 다른 분야들에 대해 소홀하게 생각하게 되는 학생들이 있을 수 있고 본인이 원하는 부분의 지능점수가 높게 나와 높은 자신감을 장착하는 학생들이 있을 수도 있다.
혹은 낮은 점수가 나온 지능에 집중하고 실망하여 되려 자신감을 잃는 학생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과거 초등학교에서 만난, 공부에는 흥미가 없던, 복지실에 놀러오던 5학년 여학생들이
좋아하고 또 잘한다는 뜨개질활동, 아이돌 댄스, 애니메이션 감상 등을 열심히 하다가도
"선생님, 그래도 수능은 잘 봐야 하는거잖아요. 학원을 안가면 인생 망하잖아요." 하며 고개를 푹 숙이며 교실밖을 나가던 그 모습들이 떠오른다.
수능과 내신이라는 검사를 통해 언어능력과 논리수학능력만으로 평가받는 현재 대부분의 학생들이 좀 더 다양한 분야에 대한 자신의 흥미와 능력을 알게되고 그 능력을 가꿔 타인들과 함께 나눌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회. 너무 이상적인가?
해석하기 나름인 이 지능검사를 적절하게 활용하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제공하는 도우미(부모, 교사와 같은 성인)만 있다면 아이들의 발전과 진로에 큰 힘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그런 멋진 어른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사회가 되어가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아 수업 첫날 교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다시 생각났다.
'꿈과 현대사회에 대해 한학기동안 고민하는 학생들이 되길 바란다'는 그 말씀..
크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