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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armony Jun 27. 2018

40. 소명

누군가가 내게 '소명'이 무어냐고 물었다.

또 누군가는 내가 소명의식을 갖기를 요청하기도 했다.  


소명? 그 전까진 생각해보지 않았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지 않는 단어이기도 하거니와 내가 쓰기에는 너무나 거창한 의미를 가진, 약간은 종교적인 늬앙스를 풍기는 단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한 번 그 단어를 듣고나서는 의문이 들었다.

과연 내게 주어진 소명이 있을까?    

그건 내가 만드는걸까 아니면 환경이 만들어주는 걸까?

나는 왜 이 공부를 하고 이 일을 하려고 하는걸까? 나도 모르게 그걸 내 소명이라 여기는 걸까?

그저 마음이 하라는 대로 하면서 흘러온 지금 내 위치와 나의 마음가짐에 대해 제대로 정리해본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어릴적부터 내 관심사는 항상 '아직은 성숙하지 못하고 완전하지 못한' 대상이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했다. 그게 어린아이 일수도 장애인일 수도 있지만 단순히  대다수로부터 소외받는 사람, 무언가에 대해 잘 모르고 서툰사람인 적도 많았다.  심지어 영화, 책, 게임 속 인물들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게 되는 캐릭터는 대부분 불완전한, 악역이더라도 이상하게  그 악행이 이해가 되는 그런 인물들이었다.  

실제 삶 속에서 내가 보기에 보통 그런 사람들은 긍적적인 부분도 가지고 있고 발전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지만 무언가 약하거나 부족하기 때문에 변화가 필요하고 위로가 필요하고 안내가 필요하고 특히 사랑이 필요했다.

모든 상황에서 내가 그들에게 특별한 도움을 줄 수는 없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최선을 다해 관심을 주고 그들에게 개입해서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나면 기뻤다. 아니 사실 그 이상으로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음이 신기하고 뿌듯했다. 하지만 나는 최근까지도 이런 내 감정을 부끄럽게 여겼다.  타인을 도움으로써 얻는 긍정적 감정은 곧 낮은 자존감을 비춰주는 거울 같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는 빛나기 힘들기 때문에 타인을 이용해 나를 빛내고자 하는, 내 마음 속 깊은 곳의 욕심아닐까?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의미있는 사람임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게 해서라도 내가 우월함을 느끼려는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사람들이 내게 이타적인 사람 같다고 말해줄 때도 나는 오히려 그런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에 부끄럽기도했다.


나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행동을, 일을, 말을 하고 있었던걸까?

그저 단순하게 '누군가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 어려움의 종류나 무게에 관계없이 그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  소외되고 뒤쳐지고 아쉬움이 많은 이들과 함께갈 수 있는 사람.' 이라는 형용구가 나를 '소명'이라는 단단함을 갖게 할 수 있을까? 이걸 소명이라 할 수 있나? 아니 소명을 가져야 하나? 내가 쓸데없이 진지한가?


방학을 했는데, 더 잘 수 있는데,

왜 학기 중보다, 시험기간보다, 더 조금 자고
더 혼란스러운 밤들을 보내는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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