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글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아니 아직 가르친다고 할만한 것을 하진 못했지만
함께 의미있는 시간을 만들어가려고 노력하는(?) 멘토링활동을 하고있다.
아이와 친해지기 위해 아이와 만날때마다
원래 내 목소리보다 크고 높은 '솔'톤을 유지하고
원래 내 몸짓보다 큰 바디랭귀지들을 등장시킨다.
지난번에는 아이와 함께 배드민턴을 쳤다.
며칠 전 부터 계속 하고 싶다고 하기에 '어디 얼마나 잘하는지 한번 보자. 너의 성취감을 위해 내가 살살 쳐줄게' 기세등등하게 학교 운동장으로 나갔는데
작은 키와 체구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오는지..
오히려 아이가 눈을 찡긋하며 나를 배려해준 덕에 1:2로 패배하고 말았더랬다.
승리 기념으로 편의점에서 먹고싶은 걸 하나 고르라고했더니
아이가 망설임없이 고른 것은 '바나나우유'였다.
편의점 앞에서 아이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바나나우유와 빨대를 수도 없이 집어들었던 나의 지난 시간들이 떠올랐다.
집에서 약 2시간정도 거리의 장소에서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나는 아침 먹을 시간이 없었다.
너무 오래 걸리는 출퇴근 시간 때문에 남들보다 부지런해야만했고
항상 조기출근이 아니면 엄청난 지각을 하게되기 일쑤였다.
출근길에 매번 지나가던 편의점에서 아침 겸 또 잠을 깰 겸 바나나우유를 자주 사다마셨다.
그 달달함이 좋아서 한 땐 제일 좋아하는 색이 파랑색이었다가 노랑색으로 바뀐적도 있었고 페이스북에서 공모하는 바나나우유로 삼행시 짓기에 응모하기도했었는데.. (물론 노잼이었지만)
그리고 그 때의 치열했던 나를 되돌아본다.
버스 한 대만 놓쳐도, 지하철 하나만 지나가버려도 왕지각을 하게 됨을 알기에 아침에 눈을 뜨면 부랴부랴 씻고 옷을 입은 뒤 버스정류장부터 뛰어갔었던 날들.
톨게이트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살았기 때문에 버스를 타면 대부분 운전기사 아저씨가 잘 보이는 자리에서 서서 가야 했던 날들. 기사 아저씨의 선글라스 낀 옆라인, 현란한 운전 스킬, 이따금씩의 험악한 욕설. 버스가 사람을 가득 싣고 급커브를 하거나 전속력으로 달릴 때마다 순간적으로 버스가 넘어질까봐 두근. 그리고 안 넘어졌다는 사실에 두근. 결국 승객들을 안전하게 출근하게 해주신 기사아저씨의 놀라운 운전실력에 또 두근.
'이 버스는 용케도 넘어지지 않는구나. 만약 넘어졌다면 오늘 회사는 출근하지 않아도 되겠지. 아니 이 많은 사람들 아래 뭉개지고 싶지 않아. 버스가 넘어지면 난 빠르게 밖으로 탈출할 수 있지 않을까?'와 같은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던 며칠.
버스에 운좋게 자리가 있으면 앉자마자 잠들어버리고 버스에서 도착지를 안내하는 방송이 나올때쯤 나도 모르게 무섭게 떠졌던 눈. 매일 아침 들르는 지하철 어느 역 화장실 거울앞에서 빠르게 화장을 하고 나올때마다 나를 힘들게 했던 계단들.
사무실 출입문 쪽에 앉아 사람을 맞이하고 걸려오는 전화는 죄다 당겨 받았던 초년시절, 전화받고 울고 ,욕먹고 울고, 일은 일대로 잘 못해서 야근은 야근대로 하고.. 저녁 식대 지출의 일등공신이 된 것 같아 눈치가 보였던(그렇지만 많이 먹었던) 기억들.
아침에는 설탕맛 나는 바나나우유, 저녁에는 기름진 배달음식으로 하루하루 지내왔음에도 그 때 살이 특별히 더 찌지 않았던건 그만큼 정신없이 돌아다녔기 때문이겠지.
그러다 한 번은 영화 속 주인공처럼 지하철 안에서 기절하는 경험을 하고 나서야
문득 버스 안에서 앉아서든 서서든 그토록 조용하게 눈을 감고 있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릴 여유가 생기고 나서야
몇 십년째 빠짐없이, 투정없이 그 출퇴근길을 반복시는 아버지가 떠올랐었다.
당신은 오늘도 여전히 출근을 하셨고 퇴근을 하실 것이다.
내가 구구절절 이렇게 나의 힘들고 어려웠던 이야기를 한다면 당신은 가만히 들어주시겠지.
당신이 내게 직접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내가 굳이 물어 듣지 않아도
아주 많이 감사하고
진심으로 존경하고
조금은 죄송하고
솔직히 안쓰러운 당신께
오늘도 나는 그저 퉁명스러운 딸일 뿐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