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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armony Jul 24. 2018

42. 지렁이의 죽음

의미있는 위기, 의미를 부여하는 위기

지독하다. 지독하게 덥다.

가만히 있어도 나를 괴롭게 하는 햇볕이 얄미워 결코 눈길주지 않고

오직 바닥만을 보며 걷는게 일상적인 요즘,

내 눈에 자주 띄는 것은 '말라 죽어버린 지렁이'들이다.


뜨거운 열기가 올라오는 아스팔트 위에서 뻣뻣하고 납작하게 말라 죽어있는 지렁이.

시간이 지나 그 주변을 개미들이 에워싸는 모습을 보노라면

'윽 징그러' 에서 '아 불쌍해'로 나도 모르게 연민이 느껴진다.

 

지렁이에게 감정이입을 해보았다.

조금만 더 빠르게 움직였다면 퍽퍽하고 건조한 시멘트 바닥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물기가 있는 흙길에 다다를 수 있었을텐데. 그러면 지렁이는 죽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텐데. 아쉽다.

많이 뜨거웠겠지? 얼마나 발버둥을 치다가 죽었을까?

그러다 결국 몸이 말라 죽는 치명적인 위기를 피하지 못했구나. 흙 표면 위로 올라와 길을 나섰을 때 자신의 죽음을 예상이나 했을까? 이렇게나 더운데 그냥 땅 속에 있지, 비가 올 때를 기다리지, 굳이 왜 올라와 죽음을 자초했을까?

그런데, 그래도 넌 죽은 뒤에도 개미와 같은 다른 곤충의 일용할 양식이 되어주는구나.

아주 의미없는 죽음은 아닐지도 모르겠구나.


사람에게도, 누구에게나 예상치 못한 위기가 닥쳐온다.

무언가를 조금만 더 혹은 조금은 덜했더라면 그 위기를 피해갈 수 있었을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그걸 컨트롤 할 수 없는 것 같다.

마치 지렁이가 갑작스럽게 길바닥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처럼.   

아쉽고 속상해도 이미 직면해버린 위기나 아픔 앞에 속수무책으로 흔들리고 말라버리는 사람들이 많겠지.

혹은 다 알면서도, 다른 무언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그 위기속에 뛰어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위기를 겪고 나서 지렁이처럼 타자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니 타자에게까지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스스로가 더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죽더라도, 넘어지더라도, 흔들리더라도, 그것으로 마무리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든 그 다음의 어떤 것, 누군가의 양식으로 다시 이용되고, 또 다른 의미로 살아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지렁이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해본다.

지렁이한테도 배울 점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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