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여름
시외버스터미널 대합실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실내에 설치된 커다란 에어컨과 최대한 가까운 의자를 골라 앉아 휴대폰을 꺼내들었는데
어깨 넘어로 살살살 뜨듯한 바람이 불어왔다.
뒷자석에 나와 같은 등받이를 하고 계시는 아주머니께서 작은 손부채로 부채질 하시는 바람이 나에게로까지 와닿아 주었던 것이다.
아주머니께서는 순간 뒤를 도시더니 내 옆 할머니께로 말을 걸었다.
"아이고~ 아지매 와 이리 늙었대요... 예전에 그르~케 곱더만. 할머니 다 되셨네."
흰 아니 회색 빛의 머리를 하고 계시던 할머니께서는 옅은 미소를 지으시며 "다 늙었지 뭐~ 내 나이가 몇인데." 하셨다.
원래 아시던 사이었나보다. 하며 휴대폰에 집중하려는데 커다란 두 분의 목소리에 의도치 않게 두 분의 대화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
조금 더 젊은 아주머니께서 역시 먼저 말을 시작하셨다.
"요즘 날이 참 덥지요. 여기 왜 왔는기요?"
"집에만 있기가 심심해서. 여기 오니까 사람 사는 것 같네. 시원도 하고. 그래서 여기 앉아있는거여. 누가 나가라고 하기나 하나?"
"그렇지요. 여기서 실컷 놀다가세요. 한 7시까지 계시다가 가~"
"그러는 자네는 여기서 뭐했는가?"
"내는 우리 손자내미가 맛있는걸 사준다고 해서 먹고 여기 들어와서 잠깐 쉬는거야. 우리 손자 키가 얼~마나 큰지...대학도 졸업했고 장가도 갔지요...(중략) 그리고 이 할머니 맛있는거 사주겠다고...(중략)"
손자 자랑을 실컷 하시더니 옆에 앉은 초등학생 쯤 되보이는 남자아이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셨다.
"얘, 너 정말 이쁘다. 응? 이뻐. 아이고~ 요즘 얘들은 다 이뻐. 다 우리 손녀같애."
"응 그렇네. 이쁘네. 참 이뻐."
"몇 살이니? 옆에 앉은 사람이 너네 아빠야? 응?"
아이는 모르는 사람이 걸어오는 대화에 어색한지 대답을 잘 하지 못했고 괜시리 들고있던 휴대폰만 만지작 거렸다.
"여기 앉아서 보면 애들이 정말 이뻐. 그런데 요즘은 다들 이 쪼그만거 보느라고 정신을 못차려. 응? 이게 또 뭐 싸기나해? 엄청 비싸더만. 이거 파는 놈들은 부자 됐을거여...
그런데.... 다들 어디들 가는거여. 놀러가나.."
순간 아이가 들고있는 휴대폰에서 내가 들고있던 휴대폰으로 시선이 옮겨졌다.
최근, 어르신들이 더위를 피해 에어컨이 상시 켜져있는 카페나 지하철, 버스 대합실, 공항로비 등 공공시설에 자주 나타나신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젊은 나도 버티기 어려운 더위를 견디시는 그 분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지만 또 그걸 불편하게 여기는 시선들도 있었다.
모든 사람의 경우를 일반화 할 수는 없지만 두 여성분의 대화를 듣고 내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강원도에 사시는 시골 외할머니께 전화를 거는 거였다.
"할머니! 응 저에요~ 거기 많이 덥죠?"
할머니, 몸은 더운데 마음이 춥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