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Harmony Aug 20. 2018

45. 부정적인 나라도 괜찮아

네가 있어서

고등학교 동창과 여행을 다녀왔다. 각자의 생활이 바빠 자주 연락하거나 만나지는 않지만 약 10년간 끊임없이 인연을 이어가고 있던 친구와의 여행.


차도 없고 운전도 할 줄 모르는 장롱면허.. 아무것도 없는 학생인 나와

운전도 할 줄 알고 차도 있지만 타지에서의 운전은 아직 걱정스럽다며 이번 여행중에는 운전대를 잡지 않기로 한 친구.

"그래도 아직 우린 20대잖아!"를 외치며 호기롭게 출발한 뚜벅이 여행이었다.


#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무더운 날씨가 날씨인지라 여행 하루이틀 계속 될수록 쉽게 지쳤고 사진을 찍기위해 미소 짓는 것 조차 버거울 때가 있었다.

여행 이틀째는, 지하철을 눈 앞에서 놓치는 일상적인 일에도 짜증이 나서 나도 모르게 "아, 정말 너무하네.."하면서 혼잣말로 볼멘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때마다 옆 친구가 연신 작은 감탄사로 맞받아쳤다.

"아깝... 엇, 그런데 다음 열차 금방 오는것 같은데? 오오 다행이다야"


"와, 야 저 하늘봐. 구름 봐. 어떻게 저럴수가 있지?"

"이야~ 이거 실제로 보니까 엄청 크다"

"어머 저 강아지 정말 귀엽다, 그치?"

"야.. 바다 보니깐 너무 좋다, 그리고 밤 되니까 그래도 시원하네"

"어쩜! 이 음식 진짜 맛있다, 거기다가 식당 안에 들어오니까 시원하고 너무 좋아"

진심으로 기뻐하는 친구 옆에서 나는 결국 피식 웃어버렸고 스멀스멀 올라오던 불평불만은 그 크기를 더 키워보기도 전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 친구와 방문한 경북산림연구원에는 사진이 잘 나오는 핫플레이스가 있었다. 일명 외나무다리.친구는 많은 이들이 그곳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그곳을 방문하고 기꺼이 줄을 선다고 했다.

오전 중에 부지런히 움직인 덕에 우리는 줄이 길지 않을 때 해당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고, 과연 잠시 뒤 우리 뒤로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사진이 잘 나오는 외나무다리 밑에는 얕은 개울이 흐르고 있었는데, 얕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들어갔을 때 발목이 잠길정도의 수심이었다.

외나무다리 정면에서 제대로 된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개울의 중간쯤 들어가 발에 물을 적셔야 하는 일이 불가피했다. 


도착했을 당시 그 곳에서 어떤 사진 전문가스러운 중년 남성 한 분이 양말에 슬리퍼 차림으로 물 속에 들어가 사진을 찍고 계셨다. 그의 두 발은 이미 물속에 잠겨있었다.

처음에는 사진 포즈를 취하는 분들과 일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음, 또 그 다음 사진을 찍는 분들의 휴대폰이나 카메라를 받아 계속 사진을 찍어주시는 것을 보고 일행이 아니라 잠깐 사진을 찍어주시는 봉사(?)를 해주시는 분이시라는걸 깨달았다.

"남자분이 여자 분 옆에 좀 더 가까이~ 아니 손은 좀 더 높이! 그렇지~"

귀동냥으로 들어보니 한 때 사진작가활동을 하신적이 있어서 직접 사진을 찍어주겠다 하셨댄다.

'그럼 곧 우리 차례니까 우리 사진도 찍어주시겠구나! 얼씨구!'

평소 사진 구도의 '구'자도 몰라서 친구 사진을 보기좋게 찍어주지 못해 미안함이 마음 한켠에 있던 나는 안도감과 동시에 기대를 하게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와 친구의 차례가 되었다. 친구가 두 손으로 공손하게 사진을 찍어주시는 분께 휴대폰을 전해드리려던 순간, 그 분은 갑자기 손을 절래절래 흔들며 물에서 나오셨다. 우리를 찍어주시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현하신 것이다.


예상치 못한 그 분의 반응에 나와 친구는 당황했다. 어쩔수없이 내가 직접 폰을 들고 친구 사진을 먼저 찍어주기 위해 물 속으로 발을 담그려던 그 순간,  "내가 찍어주는 사진 원하시는분? 한 팀만 찍어드리겠습니다. 원하시는 분 손들어보세요."

등 뒤에서 우리 뒤에 줄을 선 사람들을 향해 말씀하시는 그 분의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한팀의 예외도 없이 모든 이들이 손을 들고 있었다. 모두들 줄 서서 지켜보던 나와 같은 마음이었던 것이다.

다시 친구를 찍어주기 위해 정면을 응시한 나는 곧 내 마음속에서 불만시작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 왜 갑자기 우리 차례부터 사진을 안 찍어주신다는거지? 혹시 우리 앞에는 전부 남녀 커플이었는데, 우린 아니라서? 커플만 찍어주시려던건가? 그리고 저 아저씨 우리에게는 손 들 기회조차 안주시네? 너무하신거 아니야? 사람 차별하시나?'

이렇게 딴 생각을 하던 내가 친구 사진을 잘 찍어줬을리 만무했다. 사진은 생각보다 더 이상하게 나와버렸다.

마지막으로 친구와 함께 나오는 사진을 찍기 위해 우리 뒷차례 사람들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하고 포즈를 취하려는데 갑자기 사진작가 아저씨께서 나타나시더니 "이리 줘봐. 내가 찍어볼테니." 하시며 우리의 휴대폰을 가져가셨다.

얼떨결에 아저씨께서 찍어주시는 사진에 찍힌 후 다시 휴대전화를 돌려받으며 친구와 나는 "감사합니다." 인사를 했다. 그런데 큰 소리로 인사한 친구와 달리 내 목소리는 개미만큼 작았다. 아저씨께 들릴지도 않았을만큼.

아저씨는 자연스럽게 우리 뒤의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휴대폰이나 카메라를 전달 받으시며 사진을 찍어주기 시작하셨다.


더운 날씨 탓을하며 서둘러 외나무다리를 빠져나와 그 곳에서 멀어지면서,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부끄러웠다.

나는 왜 그 사람에게 화가 났던걸까? 그 분이 우리의 사진을 찍어주시는건 당연한 일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할 일이었다. 찍어주시지 않는것이 되려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는데. 나는 부탁을 해야하는 입장이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그 짧은 순간 그 분의 사진을 당연시하고 말도 안되는 심술을 부렸던걸까?


# 아무래도 나는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것에 더 포커스를 두는 사람인가보다.

친한친구와의 오붓한 시간, 오랜만에 직접 보는 바다와 가보고싶었던 많은 장소들, 그곳에서 만난 친절한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들, 학창시절 때처럼 재미있게 찍었던 사진들.  

이렇게나 긍정적인 기억할 거리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행의 마지막날 밤, 결국 가장 먼저 떠오르는건 내가 부족했던 부분들, 부정적이었던 나의 모습들이었으니 말이다.


마지막 날 밤, 친구와 맥주 한 캔씩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둘다 더위를 너무 잘타고 땀도 많이 흘리는 편이어서 진짜 힘들었지? 중간에 숙소에 들러서 샤워도 2번이나 하고 예상에 없던 지출까지하면서 여벌옷도 사고.. 여름 여행은 힘들긴 한거같아."

"맞어. 근데 이것도 다 추억이지 뭐~ 난 너가 땀이 그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어ㅎㅎ 물론 나도 이렇게 땀 많이 흘린건 이번 여름들어 처음이고.

그런데 신기하게 우리 둘 다 땀이 많아서 오히려 다행이지 않았어? 씻으러 다시 숙소에 가는것도, 옷을 새로 사는 것도, 쉽게 결정하고 같이 행동했잖아. 우리 둘이 진짜 비슷한게 많은 것 같아.

그리고 우리 이번에 산 옷 각자한테 진짜 잘 어울리지 않냐? 난 솔직히 옷 산거 진짜 잘한듯!"


"나 사실 아까 산림원에서 사진 찍어주던 아저씨가 우리 차례때 딱 그만하시길래 화가 났다? 진짜 웃기지."

"아 그때~ 나도 갑자기 당황스럽기는 했어. 근데 결국 찍어주셨잖아~ 안 찍어주려다가 찍어주신게 오히려 운이 좋았던것 같지 않아? 우리 그때 찍힌 사진 대박 잘 나왔어!!"


"근데, 나 너랑 같이 있어서 이번 여행 즐길 수 있었던 것 같아. 솔직히 날이 너무 더워서 순간순간 힘 빠지고 짜증이 확 올라올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는데 니가 너무 즐거워하고 기뻐하니까 내가 짜증을 못내겠던데? ㅋㅋㅋ 너 덕분이다."

"야 아니야. 난 요새 계속 일에 찌들어서 그런지 진짜 다 너무 좋더라. 하늘도 바다도 다. 게다가 같이 있는 사람이 너라서 더 좋았구. 여행하는 동안 니가 나를 얼마나 배려해줬는지 나 다 안다." 


순간적으로 이런 남자 어디없나... 남자친구 삼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사랑스러워보이던 친구.

쉽게 회의적이 되어버리는 다소 부정적인 나의 감정에 상처주지 않고

오히려 공감해주면서 결국 내 감정까지 긍정적이고 따뜻하게 만들어주던 친구.

교복을 입고 긴 머리를 흔들며 푸훗 하고 웃던,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한꺼번에 5개씩 먹고 배 나왔다며 기분좋게 내 앞에서 배를 퉁퉁 쳐대던, 야구장 얘기만 나오면 눈이 반짝반짝하던, 남자아이들의 짖궃은 장난에 쉽게 눈물이 고이곤 하던...  그 작고 어린 여자애가 언제 이렇게 멋있고 사랑스러운 어른이 되었을까? 내가 키운 것도 아닌데 그의 성장과 변화에 내가 다 고맙고 뭉클해졌다.


# 모나고 부끄러운 나의 한 부분을 감싸주는 고마운 사람.

내가 완벽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사람.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나 자신을 미워하지 않게 해주는 사람.

나 역시 그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는 욕구를 생기게 하는 사람.


좋은 사람이 내 곁에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래서 이상하게도 아직은 나, 좀 부정적인 사람이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이전글 44. 버스 대합실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