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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armony Dec 30. 2018

46. 대학수업에 대한 짧은 단상(3)

지금 행복한 사람은 손을 들어보세요.


2018-2학기를 마무리 짓고 성적을 확인하면서

한 학기동안 들었던 수업들을 천천히 되새겨보았다.


총 7개의 수업을 들었던 이번학기. 

수업시간 중 많은 시간을 졸았어도 시험 며칠전에 책을 정독하고 달달 외우면 됐었던 과목도 있었고

수업에 아무리 집중해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이과 학생들의 능력에 허탈함을 느꼈던 컴퓨터 과목도 있었고

이전까지는 잘 몰랐던 전공지식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관심을 갖게 만들어준 전공과목도 있었고

말을 잘 하진 못하더라도 듣는것만이라도 잘해보겠다는 도전정신을 고취시켜준 외국인과의 영어 수업도 있었고

현 교육의 모순점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어준 교직 과목도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은 '학교폭력예방'이라는 교직수업과 '웰에이징(well-aging)'과 관련된 교양수업.


# 학교폭력예방

학교폭력과 관련된 수업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정의와 이들의 심리상태, 교사의 학교폭력 예방 및 대처 방법과 그 과정, 현재 학교폭력예방및대처방법관련 법률의 내용 등을 중심으로 배웠다.


1.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해 배우면서 추가적으로 '동조자', '방관자'라는 유형에 대해서도 배웠다.

피해자들은 가해자로부터 받은 고통보다 방관자들로부터 느낀 배신감과 수치스러움에 더 오래 아파할 수 있다고 한다.

'아, 이런 유형도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직접적인 가해자인적은 없어도 방관자이었던 적은 꽤나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불이익이 돌아올까 무서워 그저 바라만 볼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적.

가해자의 행위에 맞서지 않고 오히려 '쟤는 저런 대우를 받을만 해.'라고 생각하면서 속으로 은근히 가해자의 편을 들었던 적.

피해자로서 힘들어하는 친구가 내게 위로를 받으러 오면 나도 모르게 슬금슬금 피했던 적.  

피해 친구들이 느꼈을 두려움과 모멸감을 알면서도 외면했던,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어리석고 비겁할 수 있었을까 싶은 내 모습. 그리고 나와 같은 태도를 취한 많은 친구들.

그땐 단지 어려서 그랬을까? 잘 몰라서? 용기가 없어서?

아니 비단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회사에서도, 그 모든 인간관계 안에서 나는 누군가에게 간접적인 정신적 폭력의 가해자인 적이 없었을까?

용기내어 그 상황을 고쳐보지 못한 것은 내 잘못이었을까? 아니면 감히 나서지 못하게 만든 가해자나 주변 학생들의 잘못일까? 교실(조직) 내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조정하지 못한 교사(리더)의 잘못이었을까?

이제서야, 다시 학교에 와서야, 그러한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나의 존재가 어떤 변화를 줄 수 있을지에 대해 반성하고 고민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2. 어떠한 사건이 학교폭력사안이란 결론이 난 뒤 그 갈등이 해결되어지는 절차들을 보자면.. 복잡하다.

학교에서는 사건이 일어나면 '학교폭력대책위원회', 소위 '학폭위'를 여는데 이는 학생과 학부모 교사 그리고 경찰 및 검사 등의 수사기관이 맞물려 돌아가는 일인만큼 다양한 입장들과 예민한 내용들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학교에서 학폭위를 통해 당사자들에게 제대로 된 솔루션을 제공하는지, 학폭위의 역할이 뭔지에 대해 의구심을 지울수가 없었다.

진정으로 학교폭력예방과 대책을 위한 전문가들이 모인 것인가? 학폭위에서 내린 결정이 적절하다는 것은 누가 입증할 수 있나?

학폭위가 열리기 전, 상황에 대해 파악하는 과정과 책임은 단지 책임교사나 교감으로 충분한가? 학폭위 이전의 절차에서 문제가 해결 될 수 있는 여지는 없나?

잠시나마 학교에서 일해 본 경험에 의하면(물론 작은 초등학교이긴 했지만) 심각한 학교폭력 사안을 제외하고는 교사와 학생들 간의 관계 내에서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무엇보다도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그들끼리 해결하기 어려울만큼 서로에 대해 알고 이해할 시간이 부족한 학교의 환경 자체였다.

물론 사건의 해결도 중요하지만 끊이지 않는 학교폭력 '대처방법'에 집중하기 이전에 그 '예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더욱 우선이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을 살펴보면 예방법에 대한 내용보다 대처법에 대한 내용이 현저히 많고 예방법조차 '학기당 최소 1회의 예방교육, 실태조사, 전문상담교사 배치' 등 형식적으로 인식되어지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법의 내용이 이러할진대 이에 대해 세심하게 신경쓰면서 세세한 시행방안까지 고민할 수 있는 교사는 과연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학교에서 보았던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수업진행과 아이들, 그 외의 행정업무들만로도 벅차보였기 때문이다.


각종 폭력과 혐오가 난무하는 지금

폭력이 줄어드는 학교,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작은 다툼이 커다란 폭력으로 번지지 않도록 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것도 폭력, 저것도 폭력이라고 말하기 이전에 폭력 발생의 원인을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먼저임을 인식하는 것이 가장 먼저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구성원들이 서로에 대해 인지하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주는 것이 제일 시급한 일이지 않을까. 폭력을 당하는 것보다 행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러울 수 있는 교육이 우선이지 않을까.



# 웰에이징

누군가에게는 웃기는 소리일수도 있지만 20대를 떠나보내고 서른을 앞둔 내게 '나이'란 이제 조금은 신경이 쓰이는 대상이다.

'잘 나이듦'에 대한 해답을 대학교양수업에서 얻을 수 없음을 예감하면서도, 딱히 해결책 같은 것이 없음을 알면서도

"언니, 너무 언니스러운 수업 들으시는거 아니에요?'하는 동기들의 농담이 기분나쁘게 들리지 않을 만큼 나이들어버린 내게 이 수업은 처음엔 그저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수업내용의 대부분은 사실 재미없는 이론이었다.

나이 듦에 따라 변하는 신체의 변화. 근육과 호흡기관이 어떻게 운동을 하는지, 왜 젊을 때 건강관리를 해야하는지, 할머니들은 왜 골다공증에 잘 걸리시는지, 할아버지들은 왜 그렇게 쉽게 넘어지시는지.

결국 이론 자료의 결론은 골고루 먹고 잘 자고 햇빛을 받고 운동을 꾸준히 하며 스트레스에 취약해지지 않게 노력하라는 뻔한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이 수업의 여운이 오래 남은 것은 수업 중간중간 교수님께서 하신 몇 가지 말씀과 보여주신 영상들 때문이다.

영상을 통해 접한 '오래 살기 위해 냉동인간이 되고 유전자를 조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백발 노인들의 절절한 사랑이야기, 죽음을 신성시하면서도 당연한 삶의 절차라고도 여기는 어느 나라의 이야기,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권리를 주장하는 존엄사에 대한 이야기'까지 어느 하나 쉬이 넘어갈 수 없는, 모두에게 해당될 수 있는 주제들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강의날 교수님께서 학생들에게 물어보셨다.

"여러분은 지금 행복한가요?"

수업을 듣던 약 80여명의 학생들이 조금 술렁댔다.

"지금 행복하다고, 아니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어보세요."

대부분의 학생이 손을 들었다.

"그럼 이번에는 지금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 들어보세요."

번쩍!은 아니지만 스르르 살살 손을 들어보았다.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건강하게 가만히 앉아 다른사람이 전달해주는 정보를 얻을 수 있고 그로인해 뭔가를 생각할 수 있고 그 날 점심 지하 카페에서 맛있는 샌드위치를 먹고난 뒤 커피를 사와 수업 중에 홀짝홀짝 마실 수 있는 그 시간에.

그리고 놀랐다.

정말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단 말이야? 아니지, 행복하지 않은게 곧 불행한건 아니니까. 하지만 행복하지 않을 이유를 가진 사람이 이렇게나 많을리 없잖아!

그냥 그 시간 유별나게 내 기분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평소에 쓸데없는 걱정과 근심이 많고 과거,현재,미래가 몹시 불안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 때 그 순간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행복하지 않다며 손을 들었던 이들에게 물어보고싶었다.

"지금 어떤 일 때문에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세요?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나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그 다음 교수님께서 어떻게 다른 주제로 넘어가셨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수업내용을 바탕으로 생각해보았을 때 그 때 교수님께서 학생들에게 전달하고싶으셨던 말씀은 이런것이 아니었을까.

"웰에이징이란건 결국 잘 사는 겁니다. 그것은 곧 잘 죽는 겁니다. 우리는 누구나 늙고 죽습니다.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았을 때, 삶을 마무리할 때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할까요? 어떤 것을 후회할까요? 무엇을 하고 싶어할까요? 지금 여러분이 행복하지 않다고 여기는 그 생각의 원인이 정말 여러분의 삶을 행복하지 않게 할 만큼 중요한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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