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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armony Feb 17. 2019

47. 리더의 자질

'너는 리더가 체질이야 아주'

1.오랜만에 대학동기를 만났다. 서로 방학 중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공유하면서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덧 해가 졌다.

동생은 그냥 헤어지기 아쉬웠던지 '지난번에 이곳에서 사주를 봤는데 아주 용했다.'며 사주 한 번 보고 가자고 내게 제안을 했다.

평소 사주나 점을 100퍼센트 믿지는 않지만 흥미는 가지고 있던지라 흔쾌히 사주집에 들어갔다.

2평 남짓한 공간에서 머리가 반쯤 벗겨진 아저씨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태어난 시간은 알지 못해서 생년월일만 알려드렸더니 그분은 내용을 알 수 없는 작은 책을 들고 책장을 휘리릭 넘기시며 내 눈앞에 놓인 종이에 한자로 뭐라뭐라 적으셨다.


"오 세다. 불이 많은 사주야. 태양이 비추네. 에이 남자로 태어났어야 할 사준데. 여자라 아깝다. 강하고 리더십이 있네. 뭐든 혼자서도 잘해낼 스타일이야."


그 외에도 내가 제대로 기억하지도 못할만큼 우수수수 나에 대한 분석(?)을 쏟아내시더니 갑자기 내 손을 보시며


"보자, 손금은 서비스로 봐줄게. 이야 오래 살겠다. 억수로 오래살겠어.

그리고 이것 봐. 둘째 손가락이 이렇게 긴거봐. 역시 누가 오더 내리는건 못 참아. 앞서서 이끌어야 직성이 풀리네. 리더십 최고야."


재미있게 말씀하시는 아저씨 덕분에 웃기는 웃었지만 사실 절반은 '에이 난 그렇지 않은데?'하며 의아했던 순간이 더 많았다.

욕심이 많고 고집이 센 건 맞지만 나서서 나의 주장을 관철시키기보다 내가 조금 손해보더라도 뒤로 물러나 상대에게 양보하는 것이 더 마음 편한 나였고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은 맞지만 그들을 리드하거나 무언가를 이끄는 것이 적성에 맞다고 여긴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2. 지난 한 달간 해외 교육봉사를 다녀왔다.

현지에 가서 갑작스럽게 나뉜 팀을 이끌 팀장이 필요했다. 팀장 지원자를 구하는 자리에서 모두들 쭈뼛쭈뼛 쉽사리 나서지 않았다. 나 역시 팀장 역할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 중 가장 나이가 많다는 사실 때문에 괜시리 부담감이 생겨서 슬며시 손을 들었다.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네요... 제가 한번 해볼게요! 부족한 부분이 많고 잘해내지 못할 때도 있겠지만 최선을 다할테니 잘 부탁해요."


그렇게 자의반 타의반으로 시작된 팀장으로서의 한 달.

사실 팀장이라고 해서 특별히 엄청난 것을 하는 것은 없었다.

상시 진행되는 교육봉사에 대한 피드백과 내일 진행될 봉사 프로그램에 대한 계획을 위해 매일 회의를 준비, 소집하고 진행하고 정리하는 것.

팀원들간에 결정해야 할 사항이 생기면 의견을 조율하고 합의를 도출해서 결정짓는 것.

하지만 한 달간 10명 남짓한 팀원들과 함께하는 동안 나 스스로 조여오는 스트레스는 상당했다.

모든 활동을 할 때 마다 긴장했다.


'이번 회의 안건은 뭘로 하지? 지난 회의때 어떤 이야기를 했지? 이 시간에 회의를 하자고 하면 팀원들이 힘들어할까? 갑자기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겼을 때 내가 해결하지 못하면 어쩌지? 실수한게 있거나 잘 못 말한게 있으려나? 나보다 훨씬 말도 잘하고 아이디어도, 실력도 좋은 팀원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내가 팀장을 하는게 맞나' 등등.


남들에겐 보이지 않았겠지만 매 순간이 긴장과 걱정의 연속이었다.

봉사활동이 끝나고 폐회식을 하자마자 긴장이 풀려 곧장 몸이 아파오기까지 했었다.

가장 힘들었던 때는 팀원들간, 혹은 우리 팀원이 다른 팀원과의 의견 충돌이 생겼을 때 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원래 감정이 서로 좋지 않던 사람들끼리의 충돌이긴했지만 어쨋든 한가지 사안에 대해 서로 생각하는 것이 달라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진 상황이었다.

거기엔 팀장인 내가 나서서 의견을 빠르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사건의 원인으로 볼 수 있었다.

일단 내 앞에서 눈물로 그동안 자신이 힘들었던 점을 이야기하는 팀원을 보며 나는 나도 모르게 그만 같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직접적으로 내게 화살을 돌리는 하소연은 아니었지만 내게는 그 모든 이야기가 화살이 되어 꽂혀버렸다.


"ㅇㅇ야, 미안해. 내가 좀 더 제대로 역할을 해냈더라면, 너가 힘들어하기 전에 미리 행동했더라면 이런일이 벌어지지 않았을텐데. 다 내가 잘못해서 생긴 일이야."


'내가 조금만 더 빨리 그 마음을 알아채고 옆에서 중재했더라면 이 친구가 이렇게 속상해하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역시 나는 많이 부족한 팀장이었구나.'


평소 속으로 가지고 있던 불안감이 표면 위로 올라와 속상함과 미안함으로 변해 눈물로 폭발해버렸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생각했다.

 '같이 울어버리다니. 아이고 창피해.'


결국 서로 좋은 의미로 혹은 별것 아닌 감정으로 건넨 사소한 대화와 행동들이 상처가 되었음을 서로가 서로에게 고백하고나서야 그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3. 24살 대학을 막 졸업한 초년생 시절, 하나의 큰 단위사업을 맡았던 나는 사업 담당자로서 팀원들과 사업에 대해 회의하고 준비하고 진행하고 평가해야하는 경우가 잦았다.

하지만 그 당시 팀원들은 당연히 모두 나보다 나이도 많고 연차가 쌓인 분들.


'내가 뭐라고 이걸 다 할 수 있지? 방금 입사한 나보다 내 사업에 대해 잘 알고있는 이분들 앞에서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우습지는 않을까'


자신감이 많지 않았던 나는 선배들에게 지시하고 협의하고 결정하는 역할에 부담을 느꼈었다.

하면서도 '잘하고 있나'싶어 항상 눈치보고 불안해했다.

사람들 앞에서 혼자 말하는 것 자체가 무언가 잘못 된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나보다 나이와 경험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적은 사람들 앞에서도 나는 늘 불안함이 앞섰다.

그 불안함은 나이나 경험의 문제라기보다는 '나 자신을 믿는 정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또 너무나 '잘' 해내고 싶기에 더욱 불안한 것이었다. 모두의 마음에 들 완벽한 정답같은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그런게 있을 수도, 그럴수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마지막으로 팀원들 여러가지 의견을 취합하여 내가 결정해야 한다는 잘못된 부담감을 안고 있었다.  

조금이나마 더 나이를 먹고

잠깐이나마 다시 리더가 되어보고나서야 '정답'같은 건 없고 결정은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내가 느낀 리더의 역할은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고

그룹 구성원 한명한명의 의견을 존중하며 듣고

그들의 동의를 바탕으로 결론을 이끌어내며

갈등이 최소한이 될 수 있게끔 중간조율을 유연하게 하는 것이지 

혼자서 사안을 결정하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명령하는 것이 아니었다.

리더 역시 의견을 내고 동의를 구하는 팀원중의 한 명이었다.

진정한 리더가 가져야 하는 것은 부담감이 아니라 책임감이었다.

진정한 리더가 팀원들로부터 얻어야 최우선의 것은 '권위'가 아니라 '신뢰'였다.  


굳이 어떠한 가시적엔 그룹에 속한 명명백백한 '리더'가 아니더라도

사람들과 함께 할 때 그러한 역할을 해주는 사람을 '리더'라고 한다면

나는 멋있게 앞장서서 팀원들을 이끄는 돌진형 리더보다는

소외되는 팀원들이 없도록 세심하게 팀을 살피고 능력있는 팀원들의 역량이 최대한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조금 다른 모양의 리더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교사 역시 한 교실의 리더라고 할 수 있을텐데..

난 좋은 리더, 좋은 교사가 될 수 있을까?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되고싶다.


ps. 손금을 보면 결혼은 가능한한 늦게 해야 좋다고 하셨는데.. 일단 결혼을 할수는 있고^^?

늦게 할수밖에 없는 것 같은데 늦게 하는게 좋다니 사주아저씨 말씀을 믿어볼까 싶었....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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