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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금금 Oct 14. 2023

사위, 탕후루 다시 한번 만들어 봐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과일은 단연 샤인머스켓이다. 얇은 초록 껍질을 앙 하고 깨물면 달큼한 과즙이 입안으로 퍼져 나온다. 씨까지 없는 샤인머스켓은 아이들이 편하게 먹기 좋은 과일이다. 커다란 포도 알이 송이송이 달려있는 샤인머스켓을 곱게 포장하여 한 박스에 담으면 고급스러운 선물이 된다. 자주 먹지는 않지만 과일 선물로 들어온 샤인머스켓을 명절동안에도 빠짐없이 먹었다. 시댁에서도 친정에서도 식후에 올라오는 샤인머스켓을 먹으며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하는 행동은 젓가락으로 탕후루를 만드는 일이었다.


최근 탕후루와 마라탕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매운 것을 좋아하는 어른인 나는 마라탕을 아이들은 사탕의 탈을 쓴 과일꼬치인 탕후루에 빠져있다. 외출할 때마다 탕후루 가게를 지나치지 못하고 하나만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들에게 남편은 항상 으름장을 놨다. 너무 달고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집에서도 만들 수 있는 음식에 왜 지갑을 열어야 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속내가 있었다.


무엇보다 내 돈으로 사 먹고 싶지 않았던 이유가 더 컸던 것은 아닐지. 손주들이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사주고 싶으셨던 시어머니와 집 근처 탕후루 가게에서 처음으로 탕후루를 먹었던 날이었다. 생각보다 맛있던 탕후루의 맛에 남편은 사뭇 놀란 느낌이었다. 얇지도 두껍지도 않게 설탕물로 코팅된 탕후루를 맛본 남편은 더욱 자신의 입장을 확고히 했다.


'이 정도면 만들 수 있겠는데?'


남편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탕후루 만들기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심한 듯 샤인머스켓과 꼬치 그리고 설탕을 미리 준비해 줄 것을 부탁했다.


설탕은 건강에 해로우니 꿀이나 조청 같은 것을 이용해서 맛탕처럼 만들면 되지 않을까 고민도 했지만 검색 결과 설탕으로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단 것을 많이 먹이기에는 아이들의 건강이 염려되기도 하였거니와 버려지는 설탕물이 아까워 최대한 작은 양의 설탕을 이용해 첫! 탕후루 만들기에 들어갔다.


1대 2의 비율로 설탕과 물을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이때 젓지 않고 보글보글 끓이는 것이 중요하다. 얼마나 끓었을까. 하얗던 설탕이 캐러멜향을 풍기며 조금씩 갈색을 띠고 있을 때였다. 


"아뿔싸! 너무 오래 끓인 것 같은데?" 조용히 푸념하듯 남편은 말했다.


버리기 아까우니 어쨌든 이어 나가야 했다. 뜨거운 냄비에 갈색 빛이 도는 설탕물 속에 줄줄이 꽂은 샤인머스켓 꼬치를 넣고 코팅이 균일하게 발리기를 바라며 조심스럽게 빙글빙글 돌렸다. 탁탁 설탕물을 잠시 털고 빠른 냉각을 위해 샤인머스켓 꼬치를 얼음물에 담갔다. 이러면 반질반질하게 코팅된 설탕이 투명하게 굳어 탕후루가 완성되어야 하는데... 뚝... 뚝... 뚝... 굳지 않은 설탕물이 덜 잠근 수도꼭지의 물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차게 하면 되지 않을까?" 확신이 없는 말투로 남편은 냉장고에 탕후루를 넣었다.


10분이 지나 기대감을 안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할 만큼 굳지 않은 설탕물을 뒤집어쓴 샤인머스켓 꼬치가 있었다. 감히 탕후루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과일 꼬치에 실소가 나왔다. 색은 또 왜 이렇게 갈색인 건지. 혹시나 먹고 탈이 날까 봐 갈색빛이 맴도는 과일꼬치는 남편이 먹기로 했다.



달큼한 샤인머스켓에 단맛의 원조인 설탕물을 부었으니 아이들이 더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설탕이 굳지는 않았지만 설탕물을 뒤집어썼으니 아이들이 사족을 못쓰고 먹을 줄 알았으나 그들의 입맛은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와그작하는 느낌이 없어"

 "가게에서 먹던 그 맛이 아니야"

"맛은 있는데 그냥 샤인머스켓이 더 맛있는 거 같아"


남편은 깊은 상념에 잠긴 채 다시 한번 제대로 된 탕후루를 만들 계획을 세웠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고 실패 없이 성공은 없는 법이다. 실패했던 이유를 돌아보고 재정비한 남편은 다음날 퇴근 후 또 주방 앞에 섰다. 그러나 유튜브와 블로그에서 누구나 쉽게 만들던 탕후루가 우리 집에는 찾아오지 않았다. 두 번이나 실패하고 나자 에잇! 하는 성난 푸념을 뒤로한 채 남편은 더 이상 탕후루에 대한 생각은 접기로 했다.




추석이 되어 시아버지 밭에 갔을 때 남편은 불현듯 아이들에게 또 탕후루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불 조절을 잘 못한 것 같다는 나름의 냉철한 판단이었다. 시어머니의 권유로 이번에는 샤인머스켓 대신 귤을 이용했다. 설탕물을 끓여 묻히고 얼음물에 퐁당 담그면 되는 쉬운 작업이었는데 집과 다른 환경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밭이라는 트인 공간에서 얼음물이 너무 쉽게 녹아 버린 것이다. 빠른 냉각이 필요했는데 이번에도 설탕물을 바른 귤맛탕을 먹게 됐다.



이쯤 되면 포기라는 것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처가댁에서 아침을 먹고 과일을 먹으려고 앉으려던 나에게 남편은 "탕후루 다시 한번 해볼까?" 달콤한 목소리로 제안했다. 이제 그만하라고 말리고 싶었으나 그의 열정을 꺾고 싶지는 않았다. 판매하는 샤인머스켓 탕후루가 한 알에 천 원이던데, 집에서 만든다면 훨씬 이득 아닐까? 무엇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아빠가 직접 만들어 준다는 빛 좋은 핑계가 있었다.


야심 찬 남편은 재료 손질에 신중을 가했다. 친정집에는 얼음도 커서 얼음물 준비에도 문제가 없었다. 이제 설탕물 농도 조절만 ''하면 될 것이다. 남편은 어디서 봤는지 설탕물에 젓가락을 넣고 콕! 찍어 얼음물에 떨어뜨리는 잔재주를 발휘했다.


"끓인 설탕물이 얼음물에 들어가서 굳으면 될 거야" 확신에 찬 목소리를 들으니, 번의 도전 만에 집에서 만든 탕후루를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남편은 설탕물 농도가 진하니 코팅하면 잘 될 것 같다며, 샤인머스켓 꼬치에 두 번의 코팅을 했다. 설탕물이 과일을 단단하게 감싸기를 기대하며 과일 꼬치를 냉장고에 넣었다. 냉장고에서 기다리기를 10분,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왜지?" 설탕물이 물엿처럼 늘어져 샤인머스캣 끝에 고드름처럼 매달려 있었다. 아직 채 단단하게 굳지 않은 채로 말이다.

 


남편은 아쉬웠다. 왠지 될 것 같았단 말이다.


"에이 아쉽네, 그냥 먹자. 탕후루는 무슨"


이 정도 해봤는데 안 될 일이라면 그만해야지 싶었다. 그 순간이었다.


사위, 탕후루 다시 한번 만들어 봐


친정엄마가 남편에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갈팡질팡 하던 남편은 미소를 지으며 "그럴까요?" 하더니 바닥에서 엉덩이를 가볍게 떼어냈다. 요지부동 앉아있던 나에게 엄마는 바짝 옷을 잡아다니며 말했다.


"뭐 해~가서 어서 보조해 줘"


탕후루를 위해 3명이 달려들었다. 어느새 옆으로 온 엄마도 알고 계신 지식을 공유하며 남편의 탕후루를 돕고 있었다.


"설탕물 농도가 중요해.. 조금 더.. 조금 더.."


이제 됐다며 샤인머스켓을 뜨겁게 달궈진 설탕물에 넣고 뺀 순간이었다. 얼음물에 담그지 않았는데도 설탕물이 굳어 판매하는 탕후루처럼 굳은 것이다! "와, 이게 진짜 가능해?". 매번 설탕물이 뚝뚝 흐르는 것 만 보다가 굳어버린 형태를 보니 매우 신선했다. 단단하게 하기 위해 얼음물 샤워를 마치고 탕후루 시식을 시작했다.



두근두근. 아이들이 샤인머스켓 한 알을 입에 가져갔다. "아?" 탁.. 탁.. 탁.. 이에 탕후루를 가져가 두드리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아빠, 이거 너무 딱딱해"


처음 탕후루를 맛보신 엄마는 벌어진 입 사이로 두 손가락을 가져가 이 사이에 껴서 떨어지지 않는 탕후루 조각과 사투를 벌이고 계셨다. 겨우 떼어낸 탕후루 조각을 보니 무서웠다. 흔들리는 이에 붙었더라면 치과에 가지 않고 발치가 가능했을 것이다. 


남편도 맛을 보았다. 그리고 다짐하듯 던진 한마디는


"이제 탕후루는 그만 만들래"


설탕물이 두껍게 발라져 굳어버린 탕후루는 위협에 가까운 무기라는 것을 느낀 것이다.


괜히 가게에서 돈 받고 파는 게 아니구나 싶기도 하다. 얇고 딱딱하지 않게 설탕물을 과일에 코팅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너무 달아서 굳이 사서 먹이고 싶지는 않지만 가끔 아이가 먹고 싶을 때는 돈 주고 사 먹는 걸 택하기로 했다.


엄마가 사위에게 한 번 더 해보라고 하지 않았다면 끝을 모르고 아쉬워했을 텐데 탕후루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언제나 보아오던 엄마의 모습이다.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묵묵히 지켜봐 주는 것, 내가 너의 뒤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지지해 주는 모습을 다시 한번 느꼈다. 제풀에 꺾여 안 되는 일에 미련을 두지 않고 포기할 줄 알게 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아쉬움이 없도록 항상 도와주는 엄마가 고맙다.


별거 아닌 탕후루 만들기였는데 남편을 대하는 장모님의 모습에서 내가 받아오던 사랑을 재확인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생각해 본다. 나도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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