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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금금 Oct 19. 2023

시누에게 은혜 갚은 까치가 되고 싶어

초보운전도 마음 먹기 나름

결혼하기 전 남편은 누나를 소개하고 싶다며 근처에 있는 시누집에 나를 데려갔다. 형제가 없는 나에게 혈육이 있는 남편의 모습은 낯설었다. 평소 누나와 살갑게 연락을 하고 지내는 것 같지 않았기에 나를 소개하러 가는 상황이 상견례에 앞서 당연하거쳐야 하는 순서처럼 여겨졌다.


처음 시누를 보는 자리였다. 핑크와 화이트가 적절히 조합된 가정집에 작은 아이를 안고 나를 맞이한 시누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인사했지만 시누는 나의 존재를 진작에 알고 있었다는 듯 편하게 인사를 건내 받았다. 190cm에 가까운 남편의 키만큼 여자치고 꽤 큰 시누였다. 이목구비도 연예인처럼 또렷해서인지 애를 둘 낳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미모라고 여겨졌다. 부산 말투에 입담이 좋았던 시누는 식사자리에서 이런 날이 곧 올 거라고 생각했단다.


지하철로 한 정거장 거리에 살고 있는 남동생의 집에 일주일에 한 번씩 들러 빨래거리를 가져오고 세탁한 것들을 정리해 왔다고 했다. 여느날과 다름없이 빨래를 정리하기 위해 방문한 동생 집 신발장 앞에 여자의 신발이 있는 것을 보고 조심스럽게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 기쁜 소식을 어찌할지 모르고 있던 터에 남동생이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있다며 나를 소개한 것이다.


시누와 인사를 나눈 뒤로 사사로이 만날 일이 늘어났다. 유자차를 직접 담갔다며 회사 앞으로 와서 건네주는 시누였다. 결혼 준비를 할 때도 시누의 역할이 컸다. 신혼집 마련을 고민할 때 시누와 같은 아파트에 좋은 자리가 났다고 소개를 해줬다. 별생각이 없었던 나는 두 곳의 매물을 보고 단숨에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문을 열었을 때 나에게 다가오는 훈기가 '이곳이 네가 살 곳이야'라고 말해줬기 때문이다. 계약이 끝나고 시누와는 이웃주민으로 지내게 되었다. 자취하던 곳에서 1504호에 살던 내가 1004호 남자를 만나 이웃주민에서 부부가 되었는데, 이제 같은 아파트시누의 이웃주민으로 살게 된 것이다.


가족을 빙자한 이웃주민은 멀리 있는 시댁에서 보는 일이 더 많았다. 평소 시누와 마주칠 일도 없거니와 일부러 전화해서 불러내는 일이 없었다. 김장을 위해 혹은 여름휴가를 위해 시댁을 방문해서 만날 경우에 "어째 동네에서보다 시댁에서 뵙는 일이 많네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결혼하고 10년이 지나 나에게 아이 둘이 생겼다. 세 명의 자녀를 키우는 시누는 그야말로 육아 대 선배였다. 같은 어린이집과 초등학교를 보내다 보니 시누에게 들을 수 있는 정보들이 넘쳐났다. 성별이 같은 자녀들이 있으니 받는 옷은 물론이거니와 보물 같은 그림책들을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받을 수 있었다. 책을 받아도 놓을 곳이 없어서 어쩔 줄 몰라하는 나에게 대뜸 연락이 와서는 "동네 중고나라에 책 수납장이 올라왔는데 가질래?"라고 연락이 왔다. 바로 옆에 옆 동이었는데 2m가 넘는 서랍장을 시누와 낑낑대고 들고 오면서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모른다. 나보다 더 힘겨웠을 시누다. 시댁은 대부분 일머리가 좋다. 손쉽고 요령 있게 일하는 시누와 수납장을 옮기면서 나보다 체력적으로 더 많은 힘이 들었을 걸 생각하니 미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덕분에 넘쳐나는 책들을 정리했다.




술을 좋아하는 남편과 나는 저녁에 반주를 즐겨한다. 아이들은 눈을 뗄 수 없다고 하지만 그런 상황을 대비해서 누구는 술을 먹고 안 먹을 수도 없지 않은가. 그날도 남편과 주거니 받거니 가볍게 맥주 한 잔 하고 있을 때였다. "아!!!" 갑자기 큰 애가 다리를 부여잡고 움직일 수 없다는 듯 울기 시작했다. 도저히 차를 타고 병원을 갈 수 없다는 것을 감지하고 구급차를 불렀다. 나는 아이와 함께 응급실로 향했다. 곧 이어서 남편이 이웃주민 시누의 차를 타고 함께 대학병원 응급실로 왔다. 불과 6개월 전의이야기다.


그리고 2주 전 같은 일이 또 벌어졌다. 책상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딸이 갑자기 귀에 뭔가 들어간 것 같다며 울기 시작했다. 연필은 공부할 때 쓰는 것 아닌가? 언제부터 연필의 용도가 귓속으로 들어가서 그 안에 듣고 싶은 내용을 적는 것인지 모르겠다. 귀 안에 연필을 넣은 아이는 연필심이 없다며 불안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남편은 급하게 근처에 있는 2차 병원 응급실로 갔다. 하지만 귀 안을 볼 수 있는 장치가 없어서 근처에 있는 3차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결국 또 이웃주민의 도움을 받은 것이다. 시누는 늦은 저녁에도 싫은 내색 없이 걱정되는 조카와 동생내외를 달래며 대학병원 응급실로 우리를 데려갔다.


염치가 없어서 쥐구멍에 숨고 싶은 지경이었다. 사사로이는 얻어먹는 반찬이며 책과 옷들 외에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 시누에게 이런 민폐까지 끼쳐서 될 일인가 싶었다. 조만간 밥이라도 크게 대접해야지 마음먹고 있을 때였다.


"이 책이 필요한데 혹시 도서관에서 대여해 줄 수 있을까?"


일을 다니는 시누가 오전에 갈 수가 없어서 나에게 부탁을 한 것이다. 나는 망설일 것도 없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했다. 어떤 방법으로든 시누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는 초. 보. 운. 전이라는 사실이다. 요 며칠 집에서 꽤 떨어져 있는 박물관이나 볼 일을 보러 갈 때도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준 후 집에 차를 대고 지하철을 타고 갔었던 나였다. 새로운 곳에 가는 것을 싫어할뿐더러 주차가 가장 힘든 초보운전이기에 웬만한 새로운 길을 가지 않으려고 한 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시누를 도울 수 있는 길이 없다고 여겼다. 호언장담 후 인터넷으로 도서관의 주차장에 대해 살펴봤다. 우리나라 도서관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주차를 할 수 있는 차량의 수가 굉장히 적고 협소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차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하는 그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가야 하는 나는 밤새 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근처 공원에도 주차장이 있다고 했고 갓길 주차도 가능하다고 했으니 여러 가지 대안을 세운 후 차를 움직였다.


네비를 켜고 운전한 게 얼마만인지 안내해 주는 친절한 목소리에 맞춰 차를 움직이며 기도했다.


'제발 주차 자리여 있어라'


간절한 나의 기도가 들린 것일까! 세상에... 도서관을 올라가는 언덕 바로 에 주차자리가 있었다. 오히려 평지에 좁은 주차 장소에 주차를 하라고 했으면 울면서 핸들을 백번은 돌려 겨우 주차했을 것이다. 그런데 올라가는 입구 언덕 한편에 주차하는 자리가 있었다. 마치 나를 위해 비워두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주차를 마치고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면서 평지에 주차자리를 보니 6자리 정도 주차를 할 수 있는데 이마저도 한 자리의 여유도 없는 상태였다. 정말이지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시누에게 은혜를 갚으려는 까치 같은 나에게 한줄기 빛이 든 기분이었다. 책은 시누의 큰 딸에게 필요한 책이었다. 다급하게 과제로 필요한 것이었는데 경쟁이 치열할 수도 있어서 도서관이 문 여는 시간에 맞춰 최대한 빨리 가서 한 권 있는 그 책을 선점했다. 그리고 사진을 찍어 시누에게 보냈다.



'뿌듯함'이라는 감정이 솟구쳐 올랐다. 누군가를 도와서 기분이 좋았던 건 일차적인 것이었다. 그 대상이 내가 그동안 감사해하고 있는 시누였기 때문에 미션을 해결한 뒤 올라오는 벅찬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새로운 곳을 가기 무서워하는 내가 이뤄낸 성과에도 나 홀로 박수를 쳤다. 남들이 들으면 코웃음 칠 일이지만 나에게만큼은 로또 3등만큼 기분 좋은 일이었다.


의지에 달려있다는 말이 딱 맞았다. 어떤 일이든 마음먹기에 따라 할 수 있는 범위가 달라지는 것이다. 나는 시누에게 어떻게든 감사한 마음을 표하고 싶어 두려워했던 일도 해낼 수 있었다. 이런 마음이면 못할 것이 없을 것 같지만 매사가 그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아마 나는 다시, 아이들 등하원 만을 위해 가던 길만을 갈 것 같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수많은 시누의 도움에 비하면 눈곱에 티도 안 날 일이지만 뭔가  시누가 기뻐할 만한 일을 했다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이 들었던 날이었다. 그리고 정말 큰 마음이 들면 두려움은 극복 할 수 있다는 것도 몸소 배운 소중한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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