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닌 우리의 첫 전시회

by 친절한금금

속절없이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 최소한의 동선으로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본다. 그날은 내 생에 첫 전시회가 서울시 송파구에서 열리는 날이었다. 인천에서 서울까지 뚜벅이로 전시장을 가는 나의 발걸음은 종종걸음을 치고 있었다. 9시 이전에 두 아이를 모두 등원시키고 겨우 올라탄 지하철에서 앱을 켜고 도착 시간을 확인한다. 11시 30분 도착. 부지런 떤다고 아침부터 야단법석을 부렸어도 전시장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2시간 남짓이었다.


주말을 제외하고 월요일부터 그다음 주 수요일까지 열리는 전시지만 내 작품이 전시된 전시장에 내가 서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고작 2시간뿐이라니. 이마저도 일하고 있는 남편에게 아이들의 픽업을 부탁해서 귀하게 얻을 수 있는 자리였다.


송파 여성문화회관 꼭대기에 위치한 실벗뜨락에는 카페 한 편에 전시를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노인회관에서 수업을 들으시는 분들, 카페를 이용하시는 분들이 주로 전시회의 관람객들이 되었다. 6층에 위치한 전시회장에 들어서니 따뜻한 조명 아래 사진으로만 보던 전시 작품들이 펼쳐져 있었다. 직접 와보지도 못하고 메시지로만 접했던 전시회 장소에 드디어 발을 들인 것이다.


전시작품을 보니 가슴 한쪽이 뭉클해졌다. 2년 동안 해오던 엄마의 취미 생활에 느낌표를 찍은 날! 디지털 드로잉을 배우기로 마음먹었던 예전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동그란 선을 그리고 빈 곳에 색을 채우는 것부터 시작된 디지털 드로잉. 레이어라는 스케치북을 쌓아가며 표현되는 디지털 드로잉의 기술들을 배우면서 햄버거부터 꽃 그림까지 다양한 소재들을 그려왔다.


그림에 일가견이 없는 초보자가 원하는 그림 한 장을 그리기까지, 잘록한 허리를 통과하여 흘러들어 간 모래들이 쌓인 결과물이 전시장에 펼쳐져 있던 것이었다.


매일 같이 그림을 그리던 어느 날, 온라인 커뮤니티 킨더줄리에서 전시회를 기획한다는 공지를 봤다. 주저함 없이 공지 댓글에 가장 먼저 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했다. 인생을 살면서 전시회를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였다. 전문가도 아닌 내가 취미로 그림을 그리면서 사람들 앞에 나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다니, 상상만으로 뿌듯한 일이었다.


하지만 전시회 날이 다가오면서 기대감은 불안감에 잠식되고 말았다. 호기롭게 전시회를 하겠다고 던졌던 말을 주어 담고 싶을 정도로 전시 그림을 그려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창작자의 고통이라는 말을 체험하게 될 줄이야. 하고 싶어서 신청했지만 마음처럼 떠오르지 않는 콘셉트 때문에 갤럭시 패드 앞에서 매일 도망가기 일쑤였다. 쌓여있는 집안일을 핑계로, 아이들의 급한 일이 먼저라는 이유들을 둘러대면서 섣불리 손에 펜을 들 수 없었다.


그러나 마감 일자는 없던 능력도 끌어올리는 도르래였다. 전시를 함께 하기로 한 분들과 정해 놓았던 일자가 다가오자 오만가지로 펼쳐졌던 퍼즐의 조각들이 하나로 모아졌다. 생각에 그치면 마감일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아 졸작이라도 일단 선을 그어보자는 마음으로 전시작품을 완성했다.


남의 그림을 따라 그려왔던 그간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모든 것들에 관대한 나는 내 작품을 바라보면서도 뿌듯함을 감추지 못하는 팔불출이었다. '이 정도면 멋진데?' 처음 그림을 시작했을 때를 알았기에 스스로의 성장에 감탄했다. 어찌나 만족스러웠던지 디지털 드로잉을 하는 지인에게 슬쩍 자랑을 했다.


"나 전시회 해"


지인은 눈을 휘동그랗게 뜨며 궁금함을 표했다. 상대의 관심이 수면 위로 올라섰을 때, 슬쩍 전시회에 제출할 그림을 보여줬다.


"아, 귀엽네"


지인은 한마디로 내 그림을 평가하더니, 언제 전시회 이야기를 꺼냈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화제를 전환했다.


"나 이 반지하고 싶은데 어때?"

"어... 좋아 보이네..."


가면뒤에 숨어 화들짝 놀란 얼굴을 가리고 싶었다. '전시'라는 말에 큰 기대를 품고 내 그림을 궁금해했을 텐데 '겨우 이 정도?''이런 것도 전시해?'라는 느낌을 받았다.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우리만의 파티가 될 테니 많은 기대는 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했었다. 지인의 태도는 전시장에서 누구 하나 관심 가지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않을 예방접종이 되었다. 그리고 타인의 평가보다 새로운 도전을 했다는 사실에 나 자신을 칭찬하기로 했다.


전시 첫날, 거리상으로 방문하지 못했던 전시장에서 뜻밖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금금님 일기장을 사고 싶데요"


어떤 할아버지 한분이 일기장을 사고 싶다고 관심을 나타내 주셨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이번 전시는 온라인 커뮤니티 킨더줄리 내 그림일기와 디지털 드로잉 모임, 그림산책의 콜라보로 이뤄졌다.



그림산책에서 2년 동안 그림을 그렸던 이전부터 그림일기를 써왔다. 아이가 그린 것 같은 과거의 그림일기부터 모으고 모아 한 권으로 만든 <딸에게 주는 일기장>은 말 그대로 아이들에게 선물하는 유일무이한 엄마의 선물이었다.



삐뚤빼뚤 그림이지만 그 안에는 코로나동안 아이들과 북적거리던 일상이 있다. 지치고 힘들었지만 아이들과 놀았던 기억과 힘들었음을 토로하는 일기장이 있었기에 마음을 비우고 가볍게 다음날을 맞이할 수 있었다.



전시회를 계기로 일기를 모아 책자를 만들면서 지난날을 돌아보니 당시에는 힘들다고 생각했던 순간도 미소 지을 수 있는 지금이 되었다. 일기를 적지 않았다면,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나의 고충은 어디에 토로할 수 있었을까?


사적인 이야기일 테고 수려한 그림이 아닌 나의 그림일기에 관심을 가지고 보신 분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엄마들의 취미로 이뤄진 그림일기에 대한 반응은 생각보다 놀라웠다. 베스트셀러는 아니지만 진심이 담긴 엄마들의 열정에 화답하듯 궁금증을 표하고 배워보고 싶다고 말씀하신 분들이 많았다. 기대 이상의 반응으로 함께 전시회를 준비한 분들과의 대화창에는 훈훈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신데렐라가 유리구두를 신고 무도회에 가듯 작품 앞에 서서 오랜만에 신은 구두를 신고 작가처럼 수줍게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오후 2시 종이 울리기도 전에 서둘러 전시장을 빠져나왔다. 핑크빛으로 빛나던 그 순간을 간직하며 집으로 돌아가다 문득, 제한된 엄마의 시간에 마음이 파랗게 물들었다.


휴가를 낼 수도 없는 엄마의 시간 속에서 생각보다 많은 일들을 해왔다. 아이들이 잠든 시간 액정 화면에 두 눈을 고정시키고 하루를 돌아보며 일기를 썼다. 그럴싸한 작품은 아니어도 한 장 한 장 나만의 손길로 그림을 그려왔다. 육아 퇴근 후에 오롯이 나로 있을 수 있는 시간들을 쌓아 오늘의 전시회가 있었다.


하지만 나 혼자였다면 이번 전시는 꿈도 못 꾸었을 일이었다. 엄마들의 도전이 제자리에서 머물지 않고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할 수 있게 지지대가 되어준 고마운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함께 전시회 하지 않으실래요?"


물어봐주지 않았다면, 기획되지 않았다면 나 홀로 고이 간직했을 그림과 일기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전시장 한편에서 조용히 비치될 수 있는 것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 그곳에 있어 주신 분들 덕분에 모르는 이들에게 소개될 수 있었다.


내 작품들이 있는 전시회에 나는 없었지만 함께하는 엄마들의 시간과 정성으로 전시는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나보다 더 바쁜 일상을 살아가고 계시는 분들이 어렵게 이끌어 갔던 것을 알기에 멀리서 바라보는 마음이 무거웠다. 그리고 뜨겁게 감사했다.


전시회는 끝났다.


하지만 일기 쓰기와 그림에 대한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잡고 시작하게 되었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일기를 손에서 놓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번 브런치에 적고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하루를 돌아보던 일기를 쓰지 못했던 게 당연하게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일기의 매력에 다시 한 번 반한 걸지도 모른다.


11월, 일기 쓰기를 다시 시작한다. 딸들에게 엄마로 살았던 여자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사라져 가는 오늘이 종이에 새겨져 잊히지 않도록. 오늘도 일기를 생각하고 그리고 써내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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