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자의 열성 종교부 활동기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by 친절한금금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미션스쿨이었다. 다른 기독교는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는데 내가 다녔던 학교는 금요일 해가 지는 순간부터 안식을 취하기 시작해 토요일에 예배를 드리곤 했다. 슨 연유인지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나는 친구와 함께 종교부에 가입을 했다. 특별히 믿고 따르는 종교가 없는 내가 왜 종교부에 들어간 것일까.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봐도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나에게 고등학교 시절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종교부는 이색적이지만 다양한 활동을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서클 활동이었다.

종교부에서 주로 하는 일은 예배를 진행하는 도우미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강당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층계에 5명의 종교 부원들이 일렬로 서서 올라오는 학생들을 향해 "즐거운 안식일입니다." 반갑게 인사한다. 나는 자진하여 가운데 서서 목소리를 내는 일에 나섰다. 밝고 명랑한 톤을 지녔던 나는 사람들 앞에서 인사하는 행위를 하며 묘한 쾌감을 느꼈다. 내가 선창 하면 옆에 있는 동기 혹은 후배들이 한 목소리로 인사를 한다. 마음속으로는 반장도 하고 싶고 나서는 일을 하고 싶지만 한 편으로 겁이 나서 못했던 내가 의무감을 가지고 당차게 했던 일이었다.


예배 날을 준비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것은 연극이었다. 성경을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지는 연극은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이주 정도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 회의를 했다. 연극을 준비하면서 매번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부원들끼리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투는 일도 있었지만, 조율하면서 그룹 안에서의 사회생활을 배워갔던 것 같다. 전교생 중에서 해당 종교를 가진 학생은 1% 밖에 안 될 테지만, 친구들이 준비한 기독교 배경의 연극을 보는 것은 대학로 연극을 보는 것보다 이색적인 즐거움이었을 것이다. 특히 촛불을 이용해서 특정 모양을 만드는 것으로 연극을 마쳤을 때 우레와 같은 박수가 나와서, 그동안 준비에 대한 보상을 받는 기분마저 느낄 수 있었다. 금도 절친하게 지내는 종교부 친구들과 마귀에 관련된 연극을 준비하면서 있었던 해프닝은 빠지지 않는 우리의 술안주 거리다. 무스를 한 통 다 써서 머리카락으로 뿔을 만들고 악마 탈을 써서 연극에 재미와 집중 포인트를 만들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우리의 지난날을 회상하곤 한다.


매번 같은 루틴 속에서 이따금 새롭게 진행하는 일도 있었다. <사랑의 오렌지 나누기> 행사는 야심 차게 준비한 종교부 프로젝트였다. 평소에 전하지 못했던 마음을 오렌지와 간단한 편지를 통해서 전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종교부에 나눠준 메모지에 오렌지를 주고 싶은 친구의 이름과 반 그리고 간단한 메모를 적는다. 하루 동안 취합된 메모지를 반에 있는 종교부장이 모아서 종교부에 전달을 한다. 종교부에서는 미리 준비된 오렌지를 닦고 테이프로 메모지를 붙인다. 다음 날 택배를 배달하듯 사랑의 오렌지를 각 반에 전달한다.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주문한 오렌지가 부족해서 몇 번을 재주문했는지 모른다. 우유 박스에 한가득 담긴 무거운 오렌지를 들고 다니면서 힘들기보다는 친구에게 받는 기쁨과 선물을 주는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었다. 하루 종일 배달하고 돌아왔을 때 내 책상 한가득 쌓여있는 오렌지와 편지를 보는 것은 더 큰 기쁨이라. 2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메모를 간직하고 있다.


고등학생스러운 내용의 편지들, 이런 것들이 있었구나 새삼 놀랍다.


한 두 차례 우리 학교는 같은 종교를 가진 서울에 있는 학교에 가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기독교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워십을 연습한 뒤에 타 학교 학생들 앞에서 보여주는 일이었다. 기성 가요에 맞춰 춤을 준비하고 축제에 나가 기량을 뽐내는 일은 자신이 없었지만, 일말의 수줍음을 가지고 있었던 내가 워십만큼은 자신 있게 할 수 있었다. 종교 음악이 주는 편안함과 마음을 다독여주는 가사에 맞춰서 몸을 움직이는 일은 무신론자였지만 경건한 마음이 들게 하는 행위였다. 게 물들어가는 노을이 강당을 비출 때 저녁을 먹고 강당에 모여서 친구들과 연습에 몰두하는 일은 입시 공부에 지쳐있던 나에게 활력소를 주기도 했다.


일부 학생들은 미션 스쿨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보냈다. 돼지고기를 먹을 수 없어서 급식에서 나오는 콩으로 만든 고기는 맛이 없었고 토요일마다 강당으로 올라가서 들어야 하는 설교는 꾸벅꾸벅 졸게 만드는 수면제였다. 일주일에 한 번 정규 수업과정에 포함된 종교 수업도 학생들에게는 불편한 수업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 학교를 다니게 된 이상 피할 수 없는 일들이다. 전학을 갈 것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이 토요일마다 예배를 드려야 했고 돼지고기 대신에 콩고기를 먹어야 했다.


무신론자였지만 종교부 생활을 하면서 점심시간마다 종교부에서 선생님의 손을 붙잡고 하루를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다. 말 주변이 없었지만 기도를 드리면서 오늘 하루 나에게 감사한 일은 무엇이었는지 되새기면서 긍정의 마음이 싹트는 것을 느꼈다. 토요일에 드리는 예배는 내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신나는 하루였고, 장기자랑에 나갈 자신은 없었지만 워십을 하면서 남들 앞에서 당당하게 춤 추는 행위를 할 수 있게했다. 왜냐하면 나는 당연하게 워십과 안내 인사를 해야 하는 종교부였기 때문이다.


종교부라는 탈을 쓰고 내가 하고 싶었던 모든 활동들을 할 수 있어서 고등학교 시절 나는 최고의 서클 활동을 했다. 나에게 주어진 환경을 바꿀 수 없다면 좀 더 공격적으로 이 삶을 즐기는 것이 어떠할까. 시간이 흘러 지난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니 알게 모르게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를 나는 실천했었다. 현재도 나는 피하고 싶은 여러 환경에 놓여 있다. 과거에 경험을 살려 지금 처한 현실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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