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어린이날
가슴 뛰는 내일을 기대하는 우리가 되길
어린이날이 뭐 대수인가. 일상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날이 나에게는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였다. 아이들을 위한 특별한 날이 나에게는 남들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내가 화목하지 않은 집에서 자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아이를 위한 특별한 이벤트가 없었던 것뿐이었다.
생일도 마찬가지였다. 무남독녀 외동딸이지만 케이크에 초를 불면 그걸로 나의 생일은 끝이었다. 그래서일까? 친구를 초대해서 파티를 열었던 초등학교 3학년 때 생일을 잊을 수가 없다. 처음으로 친구들에게 선물을 받았고 나를 위해 차려진 진수성찬들이 집안 거실에 있었다. 아직도 생생한 엄마의 떡볶이와 탕수육이 입에 침을 고이게 할 만큼 뇌리에 남는 생일파티였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은 생일선물이라며 워크맨을 사주셨다. 고명딸인 게 무색할 만큼 딸을 위해 준비한 첫 깜짝 선물이었다. 공부를 할 때나 여행을 갈 때 언제든 워크맨은 나와 함께했다. 비싸고 가지고 싶었던 물건이라서 좋은 것보다 나를 위해 몰래 준비해주신 부모님의 마음이 계속 떠올라 나의 보물 1호가 되었던 것 같다.
무뚝뚝한 부산 남자인 남편은 사랑의 언어 중 선물이라는 것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남자다. 태어나서 이렇게 이벤트를 꼼꼼히 챙기는 사람을 처음 만나봤다. 탁구공 안에 팔찌를 숨겨서 화이트데이에 선물을 하거나 과자 봉지 안에 감쪽같이 상품권을 넣어서 깜짝 놀라게 하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하물며 딸들에게는 더 했다. 태어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딸에게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등 한 달 전부터 선물 공세가 잇따랐다. 우리 딸은 아빠를 생각하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많이 사주는 좋은 사람이라는 인식을 하기도 한다.
선물 받는 행위 자체만 좋아하던 딸이 어느덧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를 기대하는 7세 어린이가 되었다. 이런 사실을 깨닫게 한 것은 오늘의 에피소드 때문이다.
요새 딸은 아침에 일어나면 자고 일어난 침대를 정리하고 화장대에 가서 머리를 빗는다. 화장실에 가서 물을 묻혀 앞머리를 정돈하고 토끼 슬리퍼를 신고 유치원에 갈 준비를 한다. 매일 늦게까지 티브이를 보며 잠들던 아이가 어제는 일찍 자야 한다며 10시가 되기 전에 침대로 갔다.
"내일 유치원에서 재밌는 놀이한데, 나 일찍 자고 일찍 유치원에 갈 거야"
새벽 6시 30분, 아이가 눈을 뜨며 엄마를 부른다.
"오늘 신나는 하루가 될 거야"
아이는 아침도 먹지 않고 유치원을 가겠다고 서두른다. 아직 자고 있는 동생을 6시 50분에 깨우더니 옷 입고 같이 버스 타러 가자한다. 새벽 6시에 당장이라도 유치원을 가야 한다는 딸을 어르고 달래서 평소보다 30분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다. 대화 없이 등원하던 평소와 달리 작년에 유치원에서 에어바운스를 했을 때 친구와 즐거웠던 기억을 수다스럽게 쉬지도 않고 조잘대는 딸을 어안이 벙벙하게 쳐다봤다. 점프를 하고 슬라이드를 미끄러지면 너무 신날 것 같다는 아이의 모습은 세상을 모두 가진 것처럼 들떠있었다.
나에게도 이런 동심이 있었나? 다음 날을 기대하며 잠이 들고 오늘은 어떤 일들이 나를 기다릴지 부푼 희망으로 눈을 뜬 날이 언제였나. 새삼 딸이 너무 부러웠다. 아빠에게 받는 무수한 선물이 아니라 내일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하루를 시작하는 에너지가 탐이 났다.
나에게도 요새 그런 일들이 있다. 갤럭시 탭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리는 일이 나의 가슴을 뛰게 했다. 그림일기로 시작해서 온라인 모임을 통해 매일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활동은 비에 젖어 솜뭉치 같던 나의 기분을 두둥실 들뜨게 했다. 못 그려도 괜찮았다. 취미란 것이 최고가 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즐거워서 하는 자발적인 행동이기 때문이다. 완성된 그림을 보면 더없이 뿌듯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취미 활동이 나를 아이처럼 웃게 했다. 내일은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될까? 나의 그림이 어떤 식으로 나올까? 어떻게 하면 나만의 느낌으로 그릴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설레었고 그리는 순간에 완성될 나의 작품을 기대하며 어느덧 아이 같은 나의 모습을 발견하곤 했다.
어린이 날을 기대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남편도 나도 같은 생각을 했다. "이제 좀 애 같네", 7년 동안 아이를 키웠지만 순수하게 동심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오늘 아이가 보여준 기대와 설렘을 보면서 나도 아이도 내일이 궁금하고 기대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특별한 이벤트를 통해서든 좋아하는 취미 활동이든 내일은 어떤 일들이 나를 찾아올까 꿈꾸며 살 수 있는 어린아이의 특권을 오래도록 누리고 싶다.